(조세금융신문=박완규 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의 복심으로 그의 비서실장이 된 강훈식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이 대통령 취임 76일을 맞아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그는 이 자리에서 기자들과 한미관세협상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다가 참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강 실장은 대통령실의 1차 대국민 접촉 채널인 언론사 기자들에게 “한미관세협상을 잘했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하면 미국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협상을 잘못했다고 하면 국민들이 싫어할 것 아니냐”고 난감을 토로했다.
그는 “이제부터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불확실성이 새로운 표준(new normal)이 되는 새로운 통상 환경 속에 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 미국밖에 모르는데, 미국을 잘 모르는 한국
강 실장은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미국 시장에 무관세로 진출해온 한국산 제품이 상호 관세 15% 또는 그것보다도 더 높은 품목관세가 부과돼 우리 수출이 직접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강조했다. 간담회 내내 그는 “경제가 정말, 정말 어렵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최근 한국 언론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심심찮게 나온다. 바이든 전 대통령 집권기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한국 지식인들이 공개적으로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다니. 역설적으로 전 세계 공무원들과 결탁해 미국을 망쳐 놓은 전 미국 정권들의 공적이다. 일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관세 협상을 앞둔 대한민국에 ‘트럼프 2기 집권기에 대미 의존적 외교로부터 일정한 원심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취지로 ‘트럼프 호기(chance)’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의 소프트파워 정책의 최고 성공사례(Best Practice)는 단연 한국이다. 전 세계에서 오로지 미국밖에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을 가장 모르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 때문에 미국을 가장 신봉하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국민이 한국이다. 이스라엘의 우익보다 한국의 좌파가 미국을 더 신뢰하고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는 한국인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 보수·진보 상관없이 무조건적 미국 선호
한국 외교노선의 정치적, 사회심리적 토대를 짐작하게 해주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눈길을 끈다. 미국의 저명한 조사연구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지난 6월 7일 발표한 조사 결과다.
우선 한국인들은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해 58%가 “미국식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좋다”고 응답했다. 41%가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대통령 후보에 대한 총기 테러 등 한국 못지않은 여야 간 극한 정쟁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매우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스웨덴과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과 크게 대조적이다.
미국 싱크탱크의 기준으로 분류한 한국의 좌우파(실존하지는 않음)별 응답률을 보면 한국의 속칭 진보가 얼마나 미국을 신뢰하고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한국 좌파의 44%, 한국 우파의 71%가 각각 미국식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 중이라고 응답했다. 스웨덴(10%)과 호주(13%), 캐나다(15%), 독일(21%)의 좌파들에 견주면 현격히 높은 비율이다.
한국 좌파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 70% 가까운 미국 선호도를 보여준 바 있다. 한국의 이른바 좌파들은 미국을 너무너무 좋아하지만 한국과 비슷하게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미국의 양당제 정치 시스템에 대해선 그다지 좋게 평가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수 정치학자들은 한국인의 미국에 대한 과도한 호감도가 아프리카 수준의 후진국형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 쌍둥이 적자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시대정신인 이유
문제는 한국인들이 미국을 진짜 어떤 존재로 여기는가를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심리학적으로 호감의 종류는 여럿 있다. 심지어 인질범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호감이 공포, 경외, 의존의 심리와 밀접하다는 방증이다. 한국의 586세대 이전, 그러니까 베이비부머 세대까지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호감은 신생아가 엄마에게 느끼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거의 절대적이고 자발적이며 총체적인 호감이다.
그런데 586세대를 지나면서 공포나 의존과 결부된 것으로 호감의 성격이 바뀌었다. 선진국에서 태어난 밀레니엄 Z세대(MZ)의 미국 호감은 더 다를 것이다.
물론 ‘좋고 나쁨’으로만 상대를 봐선 안 된다. 미국과 한국이 공유한 역사 속에 종속성만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완벽했던 미국이 왜 저렇게 변했을까를 심사숙고하는 것이 지식인들의 몫이다.
미국 내부 정치의 측면을 행동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답이 나온다. 지구촌 패권이라는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물론 하드파워 역시 바닥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대국가의 예측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현격히 낮추는 언행은 외교적 결례를 넘어 상대국에 대한 모욕적 도발에 가깝다.
하지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게 있다. 미국이 어쩌다가 저 지경이 됐을까. 트럼프 방식이 아니라면 과거의 단일패권은 고사하고 정상적인 민주주의 선진국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기도 어려운 미래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온전히 자유무역과 품격을 갖춘 외교통상정책을 펼쳐왔다고 보기 어렵지만, 오로지 달러의 힘만 믿고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방치해온 결과가 오늘날의 현상 아닌가.
◇ 미국의 침몰을 막으려면 트럼프식 외에 방법이 없다
한국인들, 특히 지식인들 중에도 “달러의 기축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하면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미국=단일패권국’이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다. 미국에 대한 절대적이고 자발적이며 총체적인 신뢰와 호감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미국이 구사하는 야만적인 폭력과 위협을 절대상수(an absolute constant)로 여긴다. 미국 이외의 모든 나라에 대해서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지만 미국에게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노예가 주인에게 갖는 경외심과 비슷한 호감이다.
그러나 미국의 상태는 트럼프가 잘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다. 미국인들이 그가 미국의 불치병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를 정치지도자로 다시 소환했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지식인들 상당수는 이 결정, 곧 공화당과 트럼프 지지자들의 결정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그저 꼴통보수가 장악해 미쳐서 돌아가는 미국이라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러다가 민주당이 집권을 하면 다시 미국은 무조건적인 존경의 대상이 된다.
굳이 사실을 추가로 나열할 필요도 없다. 트럼프의 언행은 미국의 침몰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다. 저런 방법 이외에는 미국호 침몰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모든 미국 지식인들도 사실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속으로는 ‘그래, 트럼프 잘한다.
그동안 꿀만 빨고 박수만 쳤지, 돈 되는 일에서 도움이 안 됐던 영악한 동맹국들을 몰아부쳐! 중국과 러시아를 이간질시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해! 전쟁? 필요하면 왜 마다해?’라고 응원하고 있다. 겉으로는 트럼프를 부박하고 반민주적이며 괴짜인 권위주의 정치인으로 형상화한다. 그래야 다음 라운드에서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 지구촌 모든 나라가 인정한 친미국가가 돼야 한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 하지만 비록 일시적일 수 있지만, 지구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인류의 모범을 창출했던 미국이 망하면 안 된다. 그 힘과 명성, 매력에 깃든 인류의 지혜와 유산을 미래에도 샘솟게 격려해야 한다.
모든 나라가 친미국가가 돼야 한다. 미국의 기승전결을 바라보며, 더 나은 미래를 북돋우며 응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응원이 절대적이고 자발적이며 총체적인 ‘친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태도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상극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앵글로색슨’만이 오롯이 위대한 인류의 적자라는 식의 ‘인종주의’를 버리고, 경쟁자들과 상생을 모색해야 한다. ‘내로남불’, ‘아전인수’ 식으로 유지된 패권은 끝이 비참하다. 진정한 리더국가라면 공존과 상생,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존중하고 구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모든 지구촌 나라들이 진정한 ‘친미국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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