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정부가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으며 초유의 ‘전면 규제 체제’에 돌입했다. 대출·청약·세제·정비사업을 동시에 잠그는 초고강도 조치지만, 이번 대책의 본질은 단순한 집값 안정이 아니다. 급등보다 ‘불안’을 막겠다는 의지, 즉 부동산을 통한 자산 이동을 차단하려는 ‘경제 방어 정책’으로 읽힌다.
◇ ‘집값 안정’이 아니라 ‘경제 방어’
이번 대책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더 이상 ‘가격’의 문제가 아닌 ‘경제 체력’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 국면과 뚜렷이 다르다.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가격 급등이 단순한 투기 과열이나 특정 지역 쏠림을 넘어, 근로의욕 저하·소비 위축·자원배분 왜곡으로 번지며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부동산으로 몰리는 자금을 생산적 투자로 돌리고, 시장 심리를 ‘투자’가 아닌 ‘거주’ 중심으로 되돌리겠다는 신호가 이번 대책의 출발점이다.
국토부·기재부·금융위가 공동으로 마련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은 규제의 강도보다 정책 기조의 전환에 방점이 찍혔다. 대책은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의 규제지역·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15억 원 초과 주택 대출 한도 축소 및 DSR 강화 ▲부동산 불법행위 감독기구 신설 ▲과도한 투자이익 방지를 위한 세제·제도 합리화 검토 등으로 구성됐다.
이른바 ‘핀셋’에서 ‘패키지 통제’로의 전환이다. 하나의 행위를 단속하기보다, 대출·청약·세제·정비사업이 동시에 작동해 투기성 수요의 순환 고리를 끊는 구조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여신한도 차등화, LTV·DSR 강화, 전세대출 이자 DSR 반영 등 전방위 금융규제가 투기 수요를 빠르게 차단할 것”이라며 “과열 국면을 진정시키고 정부의 시장 관리 신호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강남과 한강 벨트의 포모(FOMO) 심리는 일정 부분 진정되겠지만, 4천조 원을 넘는 유동성과 금리 인하 기대가 맞물려 심리 회복 속도는 생각보다 빠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규제가 단기적으로 거래를 묶을 수는 있어도, 대체투자처가 부재한 환경에서는 자금이 다시 부동산으로 회귀하는 순환을 막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2~3개월 거래량 감소와 단기 숨 고르기는 있겠지만 근본 안정으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주식·금·부동산이 동시에 오르는 가운데 ‘현금가치 하락’ 불안이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며 “이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면 수요억제 정책은 일시적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빚 내서 집 사기’ 회로 차단
이번 대책의 실질적 무게중심은 금융 규제에 있다. 정부는 ‘빚 내서 집 사기’ 회로를 전면 차단하는 것을 정책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6·27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연장선에서 여신총량 규제를 강화하되, 이번에는 이를 주택가격 구간별로 세분화했다.
25억 원 초과 주택은 최대 2억, 15억~25억원은 최대 4억, 1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으로 대출 한도를 조정했다. 수도권 규제지역의 LTV는 70%에서 40%로 낮아지고, 차주별 DSR 산정 시 가산하는 스트레스 금리도 1.5%에서 3%로 상향됐다.
전세대출 이자상환액까지 DSR에 포함돼, 전세와 매매를 잇는 간접 투기 루프가 끊겼다. 사실상 대출을 통한 갭투자나 갈아타기 매수는 구조적으로 봉쇄된 셈이다.
김 수석위원은 “여신한도 차등화와 스트레스 금리 상향이 동시에 시행되면 대출 레버리지에 의존한 투기수요가 빠르게 차단될 것”이라며 “전세대출 이자 DSR 반영은 전세가격 상승→매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투기 연쇄를 예방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함 랩장은 “고가주택 수요는 일시 진정되겠지만, 무주택 실수요자나 1주택 갈아타기 수요는 자금 마련이 막혀 거래절벽이 불가피하다”며 “중도금·이주비 대출이 막히면 정비사업 자금 흐름이 멈춰 건설경기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규제지역 지정으로 LTV와 청약 경쟁력이 동시에 떨어지면 매수세가 급감할 수밖에 없다”며 “전면 규제가 아닌 만큼 일시적 풍선효과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강도 높은 금융 통제가 거래를 위축시키는 동시에, 일부 지역에서는 자금 이동이 재편되는 흐름이 감지된다.
거래와 심리가 동시에 멈추는 현상 속에서 실수요자의 자금 압박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 ‘감시’에서 ‘관리’로
정부는 시장 통제의 틀을 ‘사후 단속’에서 ‘상시 관리’로 전환했다. 핵심은 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국세청·경찰청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부동산 불법거래·시장교란행위 감독기구’ 신설이다. 거래신고, 대출, 세금, 청약, 자금흐름 등 시장의 모든 데이터를 하나로 묶어 거래 전 과정을 실시간 감시하는 체계다.
이전에는 의심 거래가 발생한 뒤 조사하는 구조였다면, 이번에는 거래 단계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곧바로 세무조사나 수사로 연계된다. 정부는 “이상 거래를 사전에 걸러내겠다”며 시장 전반을 ‘실시간 통제’ 영역으로 편입했다.
김 수석위원은 이 같은 데이터 통합 관리가 단기 투기자금의 순환을 끊는 효과가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거래·대출·세금 정보를 한 시스템에서 관리하면 단기 투기성 자금이 들어올 여지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함 랩장은 “감시망이 과도해지면 실수요자까지 위축될 수 있다”며 거래 절차가 복잡해질 경우 정상적인 매수까지 지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일각에선 이번 기구를 두고 ‘부동산판 금융감독원’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송 대표는 “감시 강화의 핵심은 물리적 단속보다 심리 억제에 있다”며 “거래 위축이 단기 안정으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시장 참여자 입장에선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정부가 부동산을 투자자산이 아닌 관리대상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단기 급등은 막을 수 있지만 거래 기준점이 사라지면 시장이 ‘가격 블랙아웃’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김 소장은 “감독조직 상시화가 투명성엔 의미가 있으나, 신뢰 회복이 병행되지 않으면 감시 강화만으로 시장 안정은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감독기구 신설은 단순한 단속 수단이 아니라, 시장 심리를 직접 관리하는 거시정책적 장치로 해석된다.
◇ 도심 정비사업 ‘병목’ 우려
강한 수요 억제는 역설적으로 공급정책과 충돌한다. 9·7 대책의 ‘도심 내 신규공급 확대’와 ‘정비사업 속도전’ 기조는 이번 규제 강화로 제동이 걸렸다.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 확대 지정에 따라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전매 제한, 분양가상한제, 이주비 대출 제한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정비사업 자금 흐름이 막히고 추진 일정도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함 랩장은 “중도금·이주비 대출 제한은 자금 조달 구조를 흔드는 요인”이라고 했고, 김 수석위원은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 건설사·조합의 리스크가 커져 공정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양 전문위원은 “정부가 한쪽에선 공급 확대를 강조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금융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정책의 구조적 모순”이라며 “정비사업이 지연되면 공급 부족이 다시 가격 불안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송 대표는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거래는 핵심 입지 중심으로 재편된다”며 “강남·용산·성동 등 고급지 위주로 거래가 몰리고 외곽 지역은 거래 절벽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정비사업이 늦어지면 ‘공급 지연→가격 불안→추가 규제’의 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심 재개발의 병목은 단순 공정 차질을 넘어 건설경기 둔화와 민간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 시장 안정보다 신뢰 회복이 관건
이번 대책은 규제의 강도로만 보면 역대급이지만, 정부가 진정으로 겨냥한 것은 집값 자체보다 시장 심리와 신뢰에 가깝다. ‘거래 억제→심리 진정→자산 이동 차단’의 계산이 깔려 있다.
다만 시장이 움직이는 속도와 정책이 반응하는 속도는 다르다. 금리 인하 기대와 유동성 확대 속에서 규제의 실효성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단기 안정과 중장기 불안이 공존하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함 랩장은 “단기적으로 거래는 숨을 고르겠지만, 기준금리 인하나 전세가 상승세가 이어지면 다시 수요가 붙을 수 있다”고 했다. 양 전문위원은 “지금 시장은 상승보다 신뢰의 문제”라며 “정책이 일관성을 잃으면 오히려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근본 안정은 거래 제한이 아니라 심리 회복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시장은 규제의 강도보다 정책 방향의 일관성을 더 예민하게 감지한다.
결국 이번 조치는 정부가 시장에 던진 일종의 ‘심리전’이다. 단기적으로는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가격 상승 속도를 늦출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책 신뢰와 시장 예측 가능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또 다른 불안을 낳을 수 있다. 시장은 규제의 강도보다 정책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더 예민하게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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