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정부가 온누리상품권 유통 질서를 교란하는 이른바 ‘상품권 깡(불법 환전)’ 근절을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앞으로 부정 유통이 적발될 경우 부당이득의 최대 3배에 달하는 징벌적 과징금을 물어야 하며 위반 가맹점은 온누리상품권 가맹·지원에서 최장 5년간 배제되는 등 제재 수위가 대폭 강화된다.
정부는 9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공포 후 6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 중반부터 본격 시행된다.
◆ 잇따른 '조직적 깡'…"벌금보다 이득 큰 구조 깬다"
이번 법 개정의 배경에는 온누리상품권 발행 규모 확대와 비례해 급증한 부정 유통 실태가 자리 잡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와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 부정 유통 적발 건수는 2022년 121건, 2023년 85건, 2024년 143건으로 늘었고 올해도 9월까지 이미 80건이 적발될 정도로 증가 추세다.
특히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대구의 이른바 ‘마늘가게 온누리깡’ 사건은 제도적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당시 일가족이 운영하는 채소·마늘가게 3곳(실제 운영은 1곳)이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월평균 192억 원을 환전하며 매달 약 10억 원의 차익을 챙겼음에도, 현행법상 처벌은 미미해 ‘벌금보다 범죄 수익이 월등히 큰 기형적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개정안은 단순 행정 처분인 과태료를 넘어 ‘부당이득 환수’에 초점을 맞춘 징벌적 과징금 제도를 도입했다. 앞으로 ▲물품 판매 없는 허위 환전 ▲매출액 부풀리기 ▲제3자 공모를 통한 불법 유통 등 중대 위반 행위 적발 시 부당이득의 최대 3배까지 과징금이 부과된다. 단순한 질서 위반을 넘어 공공 재정을 편취하는 행위에 대해 경제적 유인을 원천 박탈하겠다는 취지다.
◆ 진입 장벽 높이고 퇴출은 빠르게…가맹점 관리 체계 ‘대수술’
가맹점의 진입 및 유지 조건도 한층 엄격해진다. 정부는 온누리상품권 제도가 본연의 취지인 ‘영세 소상공인 보호’로 회귀할 수 있도록 가맹점 등록 기준을 재설계했다.
우선 ‘매출 상한제’가 도입된다. 연 매출액이나 온누리상품권 환전액이 일정 기준(시행령 30억 원 검토)을 초과하는 대형 가맹점은 등록이 제한되거나 자격이 박탈된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제도권 내에서 혜택을 누려온 일부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대형 병원 등은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또한 유령 점포(페이퍼컴퍼니) 난립을 막기 위해 신규 가맹점은 임시 등록 후 30일 내에 영업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조건부 등록제’가 시행된다. 부정 유통으로 적발돼 등록이 취소된 가맹점의 재등록 제한 기간은 기존 1년에서 최대 5년으로 대폭 연장돼 시장 재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 사용자·브로커 처벌 조항 신설
이번 개정안의 또 다른 특징은 규제의 대상을 공급자(가맹점)에서 수요자(사용자)까지 확장했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사용자가 온누리상품권을 재판매하거나 가맹점에 환전을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깡’을 위해 상품권을 조직적으로 모아 넘기는 브로커나 소비자도 처벌하겠다는 의도다.
정부는 이번 개정으로 온누리상품권이 ‘유통질서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기부 장관에게 가맹점 및 금융기관에 대한 현장조사권과 자료제출 요구권이 부여되고, 신고 포상금 제도도 법적 근거를 갖게 되어 감시망은 한층 촘촘해질 전망이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이번 개정은 온누리상품권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제기된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개선한 조치로, 부정유통에 대한 대응을 촘촘하고 강력하게 보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본래 의도했던 대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상인의 매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관리 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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