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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BNK금융, 주요 계열사 CEO 1차후보 압축…안감찬‧이두호 용퇴

각 자회사별 3명씩 추려져
PT평가와 평판조회 결과 반영해 2차 압축 예정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BNK금융그룹이 부산은행, 경남은행, BNK캐피탈의 차기 최고경영자(CEO) 1차 후보군을 확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날 BNK금융은 각 주요 자회사에서 임원후보푸펀위원회(임추위)를 개최하고 각각 CEO 1차 후보군을 선정했다.

 

서류심사 평가 결과 1차 후보군은 3명씩으로 구성됐다.

 

당초 BNK금융 차기 회장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안감찬 부산은행장과 이두호 BNK캐피탈 대표는 1차 후보군 선정 전 용퇴를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엔 회사의 변화와 미래를 위해 유능한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각 자회사는 최고경영자 1차 후보군 대상 프리젠테이션(PT)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며, 이후 외부 평판조회 결과까지 반영해 2차 후보군을 압출할 계획이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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