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구두_김선근
어머니 구두 한 켤레 꺼내시네
닳고 닳아버린
간간이 오버 깃 세우고 툴툴 눈 털어내는 소리
헛것처럼 들리신다는데
지천 들꽃 흐드러지고
우렁우렁 기차 지축 흔들며 지나가던 날
하얀 저고리 무명치마 끝도 없는 철길 걸으며
민들레꽃 노랗게 내통하던 날
못내 꽃무늬 상자에 모셔놓았던
알토란 전답 막사발에 마셔버리고
아버지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 오롯이 보듬었을
작두 날 같은 생 아등바등 버텼을
까치 새댁, 구두코 초 칠한 것처럼 반들거렸던
눈치꾸러기 구순(九旬) 어머니 땀으로 닦으시네
어그러진 발걸음 곧게 펴시네
내년 이맘때면 패 풀릴 거라고
누런 들녘 바라보며 기차 바퀴 동동 구르던
헛기침소리 들으셨는지
눈으로만 환한 길 걸어가시네
[詩 감상]
아버지, 이름만 들어도 먹먹해지는 단어이다.
평생을 짊어지던 무거운 지게와
새로 장만한 구두며,
좋아하던 막걸리 사발마저 내려놓고
헛기침만 남긴 채 먼 길 떠나가신 아버지,
풀빛 짙어지는 6월이면
못물 가득한 윗배미 무논자락에서
배꽃처럼 환하게 웃으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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