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자유한국당에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추진하는 정부안에 맞서 법인세 인하법안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중견 이하 기업에 연간 420여만원을 지원해주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경제성장도 할 수 있다는 취지다. 정부 측은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은 12일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법인세 최저한세율과 명목세율을 현행에서 각각 2~3%p씩 내리는 조세특례제한법·법인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최저한세율은 각종 공제를 통해 절세혜택에도 불구 최저한도로 유지해야 하는 적용세율을 말한다.
법안엔 정우택 원내대표, 김광림 정책위의장 등 한국당의 굵직한 주요 당직자 등 40여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석했다. 사실상 당론에 가까운 법안인 셈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중소기업은 4%, 100억원 이하 법인은 7%의 최저한세율을 적용하고, 과세표준 2억 이하 법인은 현행보다 3%p 감소한 7%, 과세표준 2~200억 이하 법인은 2%p 줄인 18%를 적용하는 것이다.
명목상 취지는 64만4000개 중견 이하 기업에 연간 2.7조원의 감세혜택을 주는 것이 목적이지만, 또 다른 취지로는 대기업 증세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추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3%p나 인상하려는 것은, 국제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경제를 위축시키고 국민들의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것”이라며 “법인세 부담을 줄여 경제 활력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정부 증세안을 비판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 중에서도 과표가 2000억원을 초과하는 초대형기업에 대해서만 명목세율을 3%p 올리는 개정법안을 추진 중이다. 적용대상은 129개 기업으로 증세효과는 연간 2.6조원이다.
두 정책 모두 목표는 경제활성화지만, 방향성은 정반대다.
두 정책을 단순계산해보면, 정부 증세안은 대기업 하나 당 201억6000만원의 세금을 더 거둬, 이를 정부가 일자리 창출 및 가계소득상을을 목적으로 집행해 내수시장을 성장시키겠다는 것인 반면, 추 의원안은 중견 이하 기업 하나 당 419만원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추 의원은 법개정을 통해 고용창출효과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추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법인세 부담여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중견 기업들이 법인세 인하 혜택을 받게 되면, 활발한 투자에 나서게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고용창출 효과도 발생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관련 세수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정부 내부에선 부정적인 견해가 나온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미 중견·중소기업에 다수의 세제혜택을 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고용을 늘린다는 전제조건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연 420만원씩 지원해준다고 해서 중견 이하 기업들이 일자리창출에 나선다는 것은 검증된 바 없다”라고 반박했다.
돌지 않는 초대형 기업의 부
현 단계에서 조세형평성,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할 때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간 법인세 부담은 계속 줄어왔다. 그러나 법인의 투자는 활성화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법인세 최고명목세율을 25%에서 22%로 내렸으며, 박근혜 정부도 이를 유지했다.
국민의당 박주현 의원실이 지난 7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 법인세 실효세율은 2008년 20.5%에서 2010년 16.6%로 떨어졌고, 2016년에도 16.6%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실효세율이란 명목세율에서 각종 공제를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적용받는 세율을 말한다.
여기에 이월결손제도 등 법인세제가 적용되기 전 법인소득 기준으로 법인세 실효세율을 살펴보면, 2008년 18.3%에서 2010년 14.5%로 급감했으며, 2016년엔 14.4% 수준을 유지했다.
정부 법인세 증세안이 거부되고 추 의원안이 통과되면, 대형기업들의 이익은 더 커질 수 있다.
대형기업들이 내는 법인세수 비중이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이중에서도 초대형 기업들이 내는 세금은 전체의 20%를 넘는다. 세금은 기업이 본 이익에만 붙이는 만큼, 대기업들이 막대한 세금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대기업들이 막대한 부를 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전체 법인세수 39조7700억원 중 중견, 중소기업이 부담한 세액은 각각 2조8400억원, 7조8200억원으로 둘을 합쳐도 전체 법인세수에 26.9%에 불과하다.
반면 재벌계열사 및 준재벌급 중대규모 법인이 부담한 세수는 29조1100억원으로 전체의 73.1%에 달했다. 과표 200억원 이상 대기업들이 속해있는 집단들이다.
이중에서 초대형 법인이 차지하는 법인세 비중은 매우 크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2013~2015년 법인세액 상위 10대 기업의 법인세’ 자료에 따르면, 이중 초대형 법인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2015년 부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액은 4조6200억원으로 전체의 10.2%를 차지했다. 법인세 상위 10위 대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3.4%까지 솟구친다.
간접적으로 비교하자면, 상위 10대 기업들이 낸 이익이 전체 중소, 중견기업들이 낸 이익과 거의 맞먹는 셈이다.
이 이익은 일부 배당에 사용되기는 하지만, 상당수는 금융자산, 부동산 등 자산형태로 축적되고 있다. 재벌닷컴이 지난 3월 기준 밝힌 30대 그룹 사내유보금은 700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초대형기업들의 투자 없는 부의 축적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기업이 임금이나 투자에 돈을 쓰지 않으면, 일자리창출도, 임금상승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고용률은 2008년 63.8%에서 2016년 66.1%로 늘었으나, 장년층 이상 노년층을 중심으로 저임금 일자리가 다수 늘었으며, 실업자 수는 2008년 76만9000명에서 2016년 101만2000명으로 늘었다.
이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미래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며 매년 몇십조원씩 투자를 안 하고 돈을 쌓아 놓으면, 기업이 부자가 되고 국민은 잘 살게 되지 않는 모순이 생긴다”며 “상위 초대기업들의 과도한 내부유보는 그런 모순을 국가 경제에 가져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 8일 청와대 자체 제작 인터뷰 ‘친절한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 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장 정책실장은 “2008년 이후 우리나라 총기업저축이 총투자보다 훨씬 많고, 기업이 임금이나 하청대금, 물품대금, 또는 세금으로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며 “대기업의 성공이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의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한 정책적 변화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