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썹의 서(書) _조경희 골짜기에 잠들었던 전설 같은 바람이 개울로 내려오면 생각에 잠겼던 늙은 왕버들이 붓을 드네 투명한 물에 흘림체로 쓰면 눈 맑은 송사리며 피라미가 읽기도 하고 조무래기 참새들 시끄럽게 지저귀다 가기도 하네 뿌리로부터 길어 올린 웅숭깊은 숨결이 가지마다 흐르네 넓은 품에 기대어 잠자는 영혼을 가만, 가만히 흔들어 깨우는 푸른 눈썹의 서(書) 천 개의 바람이 필사하네 별들도 푸르게 읽다 바람마저 잦아드는 미명 고요히 어둠을 씻어내며 안 개 속을 거니네 [시인] 조 경 희 충북 음성 출생 2007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등단 시마을동인 시집 『푸른 눈썹의 서(書)』 [시감상] 양 현 근 봄이 되면 강가를 파랗게 수놓는 수양버들의 찬란한 희망가를 들을 수 있다. 바람따라 흘림체도 되었다가 때로 필기체로 갈겨대는 그 푸른 연서를 어찌 다 읽을 수 있을까 겨우내 움추렸던 실가지며 연두색 이파리들이 바람따라 이리저리 출렁거리는 모습이 환희의 춤을 추는 듯 하다 그 푸른 눈썹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연서를 눈보다 마음이 먼저 필사하고 있다. [낭송가] 향 일 화 시마을 낭송협회 고문 《시와표현》 시부문 등단 빛고을 전국시낭송대회
쉘부르의 우산_조경희 미아삼거리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어디서 비를 피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 쉘부르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차창 너무 주유소 앞 우산 하나가 몸을 웅크린 채 비를 맞고 있다 한쪽 다리를 저는 청년이 다가가 우산이 되어준다 강물같이 흐르는 시간의 버스를 타고 기억 너머 흑백의 시간으로 거슬러 흐르다 보면 쉘부르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서 있고 젖은 내 어깨를 감싸며 우산을 받쳐주던, 사랑을 노래하던 쉘부르의 우산은 언제부턴가 슬픈 이별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쉘부르의 우산은 비를 맞으며 어둡고 차가운 시간 속으로 멀어져간다 버스는 정체되어 교차로에 멈춰서고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 한 켠 젖은 추억의 영상을 떠올리듯 차창 밖 내리는 비의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신호등이 바뀌면서 차는 다시 속력을 내고 빗길을 달려간다 비 내리는 쉘부르의 통기타 가수는 목소리를 잃은 지 이미 오래이고 늙은 디제이도 세상을 떠나버렸다 팔아야 할 추억의 한 페이지조차 남아 있지 않은 우산장수 마저 골목에서 사라져버린 쉘부르엔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는다 잃어버린 우산을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다 내리는 비를 향해 버스가 달리면 달릴수록 쉘부르는 점점 멀어져 가고 한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