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지난해 퇴직연금을 당겨 인출한 근로소득자 10명 중 8명이 주택 구입과 주거 임차를 위해 해당 자산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론 30대 남성의 퇴직연금 중도인출 비율이 가장 높았는데 이들은 부동산 폭등기 부동산을 새 투자처로 선택, 영끌을 시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하반기부터 지방은 물론 서울 및 수도권에서도 집값 하락 현상이 두드러진 가운데 이와 같은 영끌족들의 부담이 더욱 커졌을 것이란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통계청은 19일 ‘2021 퇴직연금 통계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퇴직연금 중도인출 인원은 전년 대비 20.9% 줄어든 5만4716명이었고, 중도 인출금액 역시 25.9% 감소한 1조9000억원이었다.
눈에 띄는 점은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중도인출 사유가 ‘주택구입>주거임차>장기요양>파산선고>회생절차’ 순서라는 점이다.
다만 비율상 차이가 있다. 2020년에는 전체 퇴직연금 인출사유 중 주택구입과 주거임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42.3%, 23.1%였고 장기요양을 위해 퇴직연금을 중도 인출하는 경우가 23.7%에 달했다. 반면 1년 뒤인 2021년에는 주택구입을 위해 퇴직연금을 중도에 찾는 비율이 12.3%p 증가한 54.4%였고, 주거임차는 4.1%p 늘어난 27.2%였다. 장기요양은 오히려 19.5%p 줄어든 4.2%에 그쳤다.
2020년에는 집을 사거나 전셋값을 내기 위해 10명 중 6명(65.4%) 정도가 퇴직연금을 중도에 인출했다면 2021년엔 같은 이유로 10명 중 8명(81.6%)이 중간에 퇴직연금을 빼서 사용했다.
오롯이 집을 매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경우는 2020년 전체 중도인출 인원인 6만9139명 중 2만9231명(42.3%), 2021년에는 5만4716명 중 2만9765명(54.4%)였다.
또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인원을 연령대와 성별 기준으로 살펴보면 2020년과 2021년 모두 30대 남성의 비율이 가장 많았다.
◇ 5년간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 1.94%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이처럼 중도 인출을 선택하고 돈을 인출하는 이유 중 하나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서 기인한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 최근 보고한 퇴직연금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퇴직연금의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고작 1.94% 수준이었다.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은 다른 주요 연금과 비교할 때 더욱 눈에 띈다. 최근 5년간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7.63%, 공무원연금은 7.02%, 사학연금은 8.28%였다.
급속한 고령화와 수명 연장으로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지만, 수익률이 낮아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사회문제에 적절한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번지고 있다.
이처럼 낮은 퇴직연금 수익률에 대한 실망감이 큰 상황에 향후 노후안정 자금 역할 마저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란 인식이 커지면서 퇴직연금 중도 인출을 쉽게 결정하는 가입자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거주 30대 직장인 A씨는 취재진에 “전세자금을 위해 작년에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했다”고 밝히며 “당시 이사를 해야 하는데 높은 전셋값을 대출만으로는 전부 감당하기 힘들더라. 퇴직연금 수익률이 1%라는걸 알고 나서는 고민도 안 되더라. 중도인출 후 전세자금을 위해 사용했다”고 말했다.
◇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부동산 황금기
또 한 가지 2018년에서 2021년까지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상승한 점도 퇴직연금 중도 인출 부추긴 원인으로 지목된다.
통계청이 지난 13일 발표한 ‘2022년 사회동향통계’를 살펴보면 2018년 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주택 매매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지역별로는 세종(40.1%)이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서울(26.1%), 대전(21.3%), 경기(17.8%) 순이었다.
이같은 흐름에 퇴직연금까지 당겨 영끌로 내집 마련을 시도한 실수요자나 실수요자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투자처로 부동산을 선택한 인원이 크게 증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부동산 시장의 기류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우려 속에 부동산 시장의 역대급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1월 기준 아파트값이 한국부동산원 시세 조사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사실상 외환위기(1998년) 이후 가장 극심한 부동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 아파트값이 평균 4.79%하락했다. 서울에선 초급매 또는 급매가 아닐 경우 거래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지난해 대비 수억원씩 매매가가 하락한 단지도 수두룩하다.
문제는 이같은 부동산 한파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부동산 시장 전망이 올해 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내년에도 집값 하락세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이고 3고 현상에 따른 경제 침체 우려도 클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에 퇴직연금을 꺼내 주택 구입에 사용한 30대 영끌족의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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