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건설공사비지수가 2020년 대비 33% 오른 지금, 정작 건자재 가격이 '얼마가 정상인지' 설명할 수 있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다. 가격은 오르고 있지만 이를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데이터 체계는 마련돼 있지 않다. 중동발 공급망 충격이 이 구조적 공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 누적된 압력, 전쟁이 터뜨리다
건자재 가격 상승은 최근 전쟁으로 촉발된 단기 현상이 아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공사비지수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100)으로 2026년 초 약 133 수준까지 상승했다. 6년 사이 30% 이상 오른 것으로, 코로나19 이후 원자재 가격과 환율, 인건비 상승이 누적된 결과다.
인테리어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시점부터 인건비·자재비가 지속 상승해왔고, 전쟁 이전에도 2020년 대비 30~50% 오른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근 상황은 단순 가격 상승을 넘어 공급 자체가 흔들리는 단계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동산 나프타 의존도가 70%를 넘는 국내 시장은 공급 병목에 걸리며 주요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이 60~65%대로 떨어졌다. 나프타는 PVC의 핵심 원료로, 창호·바닥재·단열재 등 건축 마감재 가격에 직접 영향을 준다.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PVC 창호, 단열재, 방수재, 접착제 등 사실상 대부분의 마감 자재가 인상 대상에 포함됐다. 서울 을지로 인테리어·건자재 거리와 방산시장 등 유통 현장에서는 납품 자체가 지연되거나 주문이 막히는 상황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으며, 금속 부자재 가격도 20~30%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영세 업체들은 원재료 가격 급등과 물량 축소가 동시에 닥칠 경우 생존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기준 가격도, 통합 데이터도 없는 시장
건자재 가격 문제의 본질은 가격 수준이 아니라 가격이 형성되는 방식에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건자재 항목별로 수급 현황이나 가격 추세를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며 "수급 예측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건의하고 있지만, 어떻게 구축할지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설자재는 입주 지연 같은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거래에서 가격은 제조사·유통업체·시공사 간 계약을 통해 결정된다. 물량과 조건, 협상력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며 이 가격 정보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인테리어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정찰제는 있을 수 없고 자재와 조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며 "내부 데이터는 있겠지만 외부로 공개하는 형태의 통계는 없다"고 말했다.
건자재는 철강·시멘트·화학·설비·마감재 등 품목이 다양하고 공급망이 복잡해 통합 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 하나에 들어가는 자재만 수백 가지인데, 이를 한 기관이 총괄 관리한다는 건 사실상 대한민국의 모든 물동량을 관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정부 대응, 선언과 현실 사이
정부도 기존 대응 방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김이탁 제1차관은 4월 20일 5개 지방국토관리청장과 화상회의를 통해 "자재 생산부터 건설공사 준공까지의 일련의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관리로의 전환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국토부는 '건설현장 비상경제 TF'를 운영하며 레미콘 혼화제, 아스팔트, 배관·창호·단열재 등 플라스틱 제품, 페인트, 도료, 실란트, 접착제 등 석유화학 기반 건설자재를 중심으로 수급 상황을 일일 단위로 점검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국토부 본부와 지방청, 자재 생산업계 간 실시간 연락망 구축과 주기적 대외 브리핑 방안도 논의됐다.
다만 대응의 실효성을 둘러싼 의문은 남는다. 정부는 러시아산 나프타 2만7000톤을 긴급 도입했지만, 이는 약 3~4일치 분량에 불과해 근본적 해결책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산업 전반의 복잡한 공급망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모니터링 체계를 단기간에 구축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현재 건자재 시장은 가격 자체보다 불확실성이 더 큰 문제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제외하면 건축 자재 상당수가 석유화학 제품과 연결돼 있는 만큼, 원재료 공급 차질이 누적되면 자재 생산 중단과 납기 지연이 현실화할 수 있다. 나프타 수급 불안이 PVC·접착제·도료 원료 부족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건설 현장 납기 차질로 귀결되는 흐름이 이미 시작됐다.
결국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가격을 설명할 수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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