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2025년 9월부터 수입통관 시스템에 중대한 변화가 찾아온다. 관세청이 시행하는 ‘과세가격 신고자료 일괄제출제도’ 때문이다.
이 제도는 수입업체가 기존의 사후 관세조사 방식에서 벗어나 ▲수입신고 단계부터 권리사용료 ▲생산지원 수수료 ▲운임·보험료 ▲용기·포장비용 ▲사후귀속이익 ▲간접지급금액 ▲특수관계자 거래 등 과세가격 결정에 필요한 8대 항목의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다만 납세협력 프로그램 기업(AEO업체, ACVA)과 전년도 납세실적이 5억 원 미만인 소규모 수입 기업은 과세자료 제출이 생략 가능하다.
관세청은 5억 원이 넘는 수입 기업에 대한 ‘과세가격 신고자료 제출’을 통해 과세의 투명성을 높이고 행정 효율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기업 현장과 관세사 업계는 여전히 혼란과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 관세청, ‘납세자 부담 완화’와 ‘효율적 세정’ 두 마리 토끼 잡아
관세청은 이번에 개정된 관세법 제27조 제2항의 시행령에 따라 해당 개정 내용을 ‘납세자 행정 부담 완화’와 ‘효율적인 세정 관리’로 설명한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아닌, 현실적으로 잘 운영되지 않았던 부분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이번 개정이 마련됐다는 입장이다.
손성수 관세청 심사국장은 지난 5월 ‘과세가격 신고자료 일괄제출 제도 설명회’를 통해 “이번 제도 개편은 납세자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조기 오류 시정을 통해 예기치 않은 고액 추징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기존에는 모든 수입 건마다 동일한 자료를 반복적으로 제출해야 했지만, 이제는 ‘꼭 필요한 기업, 꼭 필요한 자료, 일 년에 단 한 번 제출’하면 된다는 것이 관세청의 설명이다. 또한, 동일 판매자와 같은 조건으로 반복 수입할 경우 최초 신고 시에만 자료를 제출하면 되고, 미제출 사유서를 통해 통관 지연도 방지할 수 있다.
관세청은 이러한 조치들이 납세자의 편의를 높이고, 기업 스스로가 신고 오류를 미리 바로잡아 고액 추징 리스크를 해소할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세자료 미제출 사유서’의 경우, 사유 작성 부분을 기존의 서술형 방식에서 선택형과 서술형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변경해 기업의 작성 편의를 높였다. 또한 사유서를 전자통관시스템(UNI-PASS)에서 직접 작성해 제출할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12월 1일 시행)도 추진한다.
아울러 영업비밀이 포함된 과세자료가 외부에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기업의 경우 수입 기업이 과세자료를 관세사와 공유하지 않고 세관에 직접 제출할 수 있는 전산 경로를 새롭게 마련할 계획이다.
◇ 다국적기업, ‘비상’...오히려 ‘자충수’ 우려도
이 제도의 가장 큰 파장을 겪는 곳은 다국적기업이다. 이들은 본사-지사 간의 복잡한 이전가격(Transfer Pricing) 설정, 로열티, 기술사용료 등 다양한 항목으로 거래가 이루어져 왔다. 과거에는 관세조사가 시작되어야만 자료를 제출했기에 준비 기간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수입신고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모든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한 다국적기업 관계자는 “본사 승인이 필요한 이전가격 자료나 로열티 계약서를 한 달 안에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더욱 큰 문제는 불완전하게 제출된 자료가 오히려 ‘자충수(自充手)’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제출된 자료는 세관의 과세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고,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면 세액 추징은 물론 관세조사의 빌미까지 제공할 수 있다. 또 다른 다국적기업 임원은 “이전가격 정책은 본사의 글로벌 전략과 직결된 민감한 정보”라며 “단순히 과세 목적으로 공개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각국의 조세 제도가 다른 상황에서 한국의 까다로운 제출 요구가 향후 글로벌 무역 장벽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손성수 심사국장은 “해당 법 개정은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원래 법에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잘 운영되지 않았던 것을 보완하는 차원”이라며 “시범 운영 중인 50개 업체 대부분이 자료를 잘 제출하고 있다”고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 관세사 업계 딜레마, ‘과세’와 ‘통관’ 사이의 격차
이번 제도 개편은 관세사 업계에도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대형 관세법인들은 이번 제도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인식하고,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과세가격 결정자료 검토, 리스크 진단, 제출 대행 등 전문 컨설팅 시장을 확장할 계획이다.
신민호 대문관세법인 대표(서울지방관세사회 회장)는 지난 7월부터 두 차례 수입통관 과세자료 일괄제출 제도 준비를 위해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신 대표는 설명회를 통해 “이번 제도를 시행하면서 과세자료제출 대상기업의 입장에서 충분한 검토 후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면서 제출된 자료는 세관의 과세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특히 글로벌 기업의 경우 본사 협조 없이 제출된 이전가격 자료는 오히려 관세조사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특수관계자 조건 등 미세한 누락이 추징 사유가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이에 신 대표는 “전문 관세사의 사전 검토와 의견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세 관세사나 관세사무소는 상황이 다르다. 기존 통관 업무에 더해 과세자료 제출 업무까지 떠안게 되었지만, 이에 대한 추가 비용을 받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 기업들은 관세사의 업무 범주에 ‘통관’과 ‘과세’가 포함된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추가 서비스 비용 지불을 꺼린다.
이로 인해 소규모 관세사들은 수익 증대 없이 업무 부담과 책임만 가중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입장이다.
A 관세사는 이와 관련 “컨설팅 비용이라는 게 화주에게서 추가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추가 비용을 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추후 컨설팅 비용 경쟁도 심화돼 기업 이탈 우려도 존재한다”라고 설명했다.
◇ “관세청, 유연한 운영과 가이드라인 필요”
법무법인 린의 김용태 전문위원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심층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관세청이 ‘정당한 과세권 확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제도를 개편한 취지는 공감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전문위원은 “특히 다국적기업의 경우, 이전가격 정책과 로열티 계약 등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어 자료 제출이 곧 과세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관세청은 기업들이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소명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과세 전 통지 의무를 강화하는 등 절차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관세사 업계의 어려움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영세 관세사들이 추가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관세청이 기업 규모별 맞춤형 제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전문가 조력 비용에 대한 인센티브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민호 대문관세법인 대표도 기업들의 입장을 반영한 결과 관세청의 “정확한 가격신고 문화”를 위한 방향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수년간 성실 제출기업에 대한 명문화된 인센티브”를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사유 있는 제출기한의 경우 30일 이상 연장 허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이전기업의 경우 본사 회신이 느려서 기한을 맞추는 게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 추가 설명이다.
관세청은 현재 해당 행정 고시 예고에 따라 각 지역별 업체, 관세사들을 위한 설명회를 진행, 업체와 관세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 개선 등을 마련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지난 7월 1일 고시가 개정됐고, 9월부터 본격 시행함에 따라 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시스템 효율화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면서 “가령 운임의 경우 자료 제출의 어려움을 반영,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 등도 마련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관세청의 이번 제도 개편이 과세당국의 효율성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그 성공은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와 정부의 유연한 행정, 그리고 전문가의 역할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합리적인 시스템 구축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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