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한상곤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1. 일방주의의 재림: 경제적 역설에서 ‘세금 전쟁’으로
지난 칼럼에서 ‘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의 초고율 관세 정책이 무역 위축과 물가 상승이라는 경제적 역설을 낳을 것이라 진단했다. 그러나 그 영향은 단순한 통상 마찰을 넘어, 기업의 재무 구조와 법적 생존을 위협하는 ‘세금 전쟁’으로 그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세계는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이후 30여 년간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고관세, 기술인력 비자 제한, 강제적 현지 투자 요구는 기업이 본국에서 이룬 이익에 대해 ‘숨겨진 세금(Hidden Tax)’을 부과하는 것과 같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수출 대기업은 미국 관세 정책이 한·미 양국 기업 모두에 부정적이며, 관세 분쟁이 최소 6개월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합법적 예측 가능성을 파괴하고 글로벌 기업의 운영 비용을 비선형적으로 증폭시키는 반(反)규범적 행위다.
2. 숨겨진 세금: 기업을 압박하는 세무·법무 리스크 3대 경로
미국의 일방주의는 한국 기업에 세 가지 주요 경로로 위험을 확장한다.
① 관세 리스크의 세무적 전이와 이전가격 : 고율 관세는 단순히 제품 원가를 높이는 것을 넘어, 기업의 세무 전략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관세로 인해 미국 현지 법인의 순이익이 감소하면, 국세청은 자회사 간의 이전가격(Transfer Pricing) 적정성 심사를 더욱 엄격히 진행한다. 한국은행 분석처럼 금속·기계·자동차 등 주요 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며, 이는 관세와 세금이 하나의 '글로벌 비용(Global Cost)'으로 통합 관리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OECD는 최근 고관세 조치로 미국의 유효 관세율이 19.5%까지 상승하여 생산 비용을 높였고, 이로 인해 기업의 세무 및 재무 리스크가 동시에 증폭된다고 경고했다.
② 인력 및 비자 제한, 준법 비용 급증 : 미국이 핵심 기술 인력에 대한 비자 제한을 강화하면서, 현지 공장 설립이나 R&D 센터 운영에 필요한 한국인 전문 인력을 파견하는 비용과 시간이 증가한다. 반도체, 바이오 등 전략 산업에서 핵심 엔지니어 파견이 지연·거부되는 사례가 늘면서 프로젝트 마비 리스크가 현실화한다. 이는 직접적인 관세 납부액은 아니지만, 준법 비용(Compliance Cost) 급증이라는 비가시적인 징벌적 세금이다.
③ 강제 투자와 핵심 세원 잠식 위험 :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등 자국 중심 정책에 따른 대규모 현지 투자 강제는 한국의 핵심 세원을 잠식할 위험이 있다. 현지 생산과정에서 창출되는 지적재산권(IP)과 고부가가치 기술이 해외 법인으로 이전되면, 한국에 귀속되어야 할 법인세 기반이 약화된다.
3. 생존을 위한 헷지 전략
기업은 글로벌 통상과 세무·법무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정교한 전략적 헷지(Hedge)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① IP·이전가격 통합 관리 : 기업은 IP를 관세·세무 리스크와 통합 관리해야 한다. IP 등록, 소재지, 거래 가격(이전가격) 설정을 세심하게 조율하여 관세 방어막과 세무 방패를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이는 세무 조사 리스크 완화뿐 아니라 장기 경쟁력 확보에도 직결된다.
② 통상 법률의 방패 : WTO 분쟁 해결 절차와 FTA(자유무역협정) 협의 채널은 단순한 대응책이 아니라, 기업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법률 리스크 헷지의 핵심이다. 기업은 통상 법률 대응팀을 강화하고, 주요 시장별 규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내부 프로세스를 갖춰야 한다.
③ GMT 대응과 전략적 리쇼어링 : 2024년부터 시행된 글로벌 최저한세(GMT; Global Minimum Tax) 15% 제도는 헝가리(9.0%), 아일랜드(12.5%) 등 저세율 국가의 매력을 사실상 제거했다. 이제 기업은 세금 외 요인(물류, 인프라, 인력 질)을 기준으로 투자지역을 재평가해야 하며, 특히 자동화된 국내 제조환경이 주목받고 있다.
| 데이터 기반 Reshoring 논리 : 과거 국내 복귀의 걸림돌이었던 ‘고임금 구조’는 이제 AI·자동화로 극복할 수 있다. 국제로봇연맹(IFR, 2024)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1,012대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또한 보스턴컨설팅그룹(BCG, 2025)은 AI가 기업 업무의 80% 이상을 자동화하여 20~28% 비용 절감 효과를 낸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이 흐름을 포착해 리쇼어링 기업에 공장 부지 제공, 세제 인센티브를 확대하여 ‘고기술+고효율’ 제조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
4. AI 디지털 전환: 국가 방패
정부는 2025년 ‘글로벌 AI 3대 강국 도약’ 비전을 제시하며, AI 분야에 100조 원 규모의 민관 공동 투자를 추진 중이다. 이는 ▲AI 혁신 생태계 조성 ▲범국가 AI 기반 대전환 ▲글로벌 AI 기본사회 기여라는 3대 축으로 구체화된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공급망 최적화, 세무·법무 리스크 예측, 규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 방패다. AI 디지털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5. 역사에서 배우는 전략: 일본 사례
1971년 12월 주요 선진국 10개국 재무장관 회담에서 미달러당 360엔이던 일본 엔화는 1972년 308엔, 1973년 266엔으로 무려 26% 절상되었다. 수출가격 상승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뼈를 깎는 원가절감과 기술혁신을 통한 경영 합리화로 위기를 극복했다. 그 결과 일본의 대미 흑자는 1971년 78억 달러에서 1972년 90억 달러로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내부 혁신이 외부 충격을 극복하는 핵심 전략임을 보여준다.
6. 맺음말: 최종 방어선은 혁신 역량
“America First 시대, 한국 기업의 최후의 방어선은 바로 ‘혁신 역량’이다.”
국제통상 대전환기의 파고를 넘어설 마지막 해법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비롯된다.
WIPO(세계지식재산권기구)의 2025년 글로벌 혁신지수에서 한국은 세계 4위를 기록하며 혁신 국가로서의 저력을 증명했다. 그러나 제도적 환경 부문은 여전히 20위권에 머물러 취약성을 드러냈다. 이는 정부가 정책 일관성 강화, 규제 혁신, 기업 환경 개선, 노동·교육 개혁 등을 통해 보완해야 할 과제다.
궁극적으로 한국 기업은 AI 디지털 전환과 정교한 헷지 전략으로 스스로 방패를 세우고, 전략적 Reshoring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최종 승패는 미국의 변덕스러운 정책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 다져온 혁신 역량이라는 방패와 칼날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프로필] 한상곤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현)한국중소기업수출협동조합 이사장
•현)사단법인 글로벌비즈니스컨설팅협회 명예회장
•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정책사업 심사평가위원
•현)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경기도 심사평가위원
•현)한국해외자원산업협회(산자부)자원안보 분과위원회자문위원
•전)KOTRA 31년 근무(해외무역관 5개국) / KOTRA 아카데미 원장
•전)아주대학교 국제학부 전임교수 / 한국통상정보학회 부회장
<수상>대통령표창, 기재부장관상, 산자부장관상, 아주대 교육우수 교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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