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그곳에 가면 늘, 곰탕이 있다 – 송정역 앞 나주곰탕

2025.11.28 10:27:37

엄동설한 이겨낼 곰탕 이야기(1)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익숙한 습관처럼 광주송정역에 내리면 들르는 곳이 있다. 마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십여 년 전의 일이다. 하던 사업이 원활하지 않아 아르바이트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던 시절, 이삿짐센터를 하는 후배에게 더부살이를 한 적이 있었다.

 

마침 서울에서 광주까지 이삿짐을 옮기는 일이 생겼고, 일을 무사히 마친 뒤 광주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해 얼굴도 볼 겸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친구가 만나자고 한 장소는 송정역 앞 곰탕집. 허둥지둥 곰탕 한 그릇을 먹고는 곧장 헤어졌지만, 그 곰탕 맛은 여태 먹었던 어떤 곰탕보다도 내게 강렬한 뒷맛을 남겼다.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데도 그에 못지않은 감칠맛이 났고, 무엇보다 깊고 구수한 국물 맛에 거기에 제대로 된 남도식 김치까지 어우러지니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워냈다.

 

 

 

 


그리고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광주에 지사를 설립하고 ‘광주 사람’이 되기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갈 때마다 거의 거르지 않고 그 곰탕집을 찾는다.

 

이젠 얼굴이 익숙해져서일까. 세 분의 할머니는 십여 년 전보다 주름은 늘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씩씩하고, 계산을 마치고 나면 “잘 댕겨오셔”라며 뒷인사를 늘 빠뜨리지 않는다.

 

곰탕의 어원은 이렇다.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이라는 간판을 보고 외국인들이 화들짝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듯, 곰탕 역시 한국어가 낯선 외국인들에게는 동물 ‘곰’을 넣어 끓이는 탕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곰’은 ‘고-다(오래 끓이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즉 오랫동안 푹 끓인 국물요리를 가리켜 ‘곰탕’이라 한다. 사골곰탕, 설렁탕, 꼬리곰탕, 도가니탕, 갈비탕, 닭곰탕, 돼지국밥 등이 대표적인 곰탕 음식이다.

 

나주곰탕은 나주 지역에서 도축한 소의 부산물을 이용해 푹 끓여 장날에 팔던 국밥에서 유래되었다. 시작은 구한말,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 나주목 관아 인근 장터에서 원판례 할머니가 ‘류문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곰탕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나주곰탕의 시초다. 지금은 ‘하얀집’이라는 상호로 4대째 대를 이어오며, 나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곰탕집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주곰탕의 특징은 머릿고기 비중이 많아 걸쭉한 느낌을 주는 소머리국밥과 달리, 뼈보다는 머리‧양지‧사태 같은 살코기 비중이 높아 국물이 탁하지 않고 깔끔하며 담백하다는 점이다. 맑고 깔끔한 맛을 먹는 내내 유지하기 위해서는 토렴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주곰탕을 전문으로 하는 집들은 대부분 토렴을 해 밥이 퍼지지 않도록 말아서 내놓는다.

 

 

 

어느덧 12월이다. 한 해가 저무는 시기, 우리나라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다. 자칫 몸과 마음이 함께 위축되기 쉬운 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은 어떤 이에게는 곡기를 채워주고, 또 다른 이에게는 추위를 잊게 해 주며, 또 누군가에게는 생을 다시 깨우는 한 숟가락이 되기도 한다.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서로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송정역 앞 곰탕집 할머니들의 한결같은 인사말처럼.

“잘 댕겨오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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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송정역 앞에서 곰탕으로 몸을 데웠다면, 이제 광주의 산소통 무등산으로 향해 본다. 시내에서 버스로 30분 남짓만 가면 원효사나 증심사 입구에 닿고, 완등이 부담스럽다면 중머리재까지 올라 가볍게 능선만 걸어도 좋다.

 

날씨가 맑은 날엔 서석대‧입석대 너머로 광주 시내와 영산강 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곰탕 국물처럼 묵직하게 하루가 정리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 현대예술과 공연, 미디어 전시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문화 저장고다.

 

지상은 잔디광장과 유리 구조물이 어우러져 도심 속 공원처럼 여유롭고, 지하로 내려가면 전시관‧라이브러리파크가 이어진다. 밤이 되면 건물 곳곳에 불이 켜져, 호사스러운 산책 코스가 된다.

 

금남로 노포거리

광주를 상징하는 거리가 금남로다. 5‧18의 기억이 서린 이 길에는 세월을 견뎌온 극장, 분식집, 기사식당, 오래된 다방과 양복점 같은 노포들이 여전히 간판을 지키고 있다.

 

반듯한 프랜차이즈 간판 대신 빛이 바랜 메뉴판과 삐걱거리는 의자가 반겨주는데, 한때 민주화 집회가 물결치던 거리에서 삶을 이어온 가게들의 숨결이 곰탕 국물처럼 깊게 배어 있다.

 

 

김대중컨벤션센터

상무지구 끝자락에 자리한 김대중컨벤션센터는 광주의 오늘과 내일을 함께 보여주는 공간이다. 국내외 박람회와 전시, 콘퍼런스가 연중 열려 주말이면 가족 단위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한쪽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과 업적을 조명하는 기념공간이 있어, 현대사를 차분히 되짚어볼 수 있다. 인근 상무지구 카페거리까지 이어 걸으면, 한 도시의 정치‧경제‧일상이 한 번에 이어지는 산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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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황준호(필명: 黃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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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여행작가 ceo@anitou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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