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필주 기자) 최근 AI(인공지능)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AI 산업 발전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데이터센터의 중요성도 날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AI의 경우 수많은 학습‧추론 과정을 거치기 위해선 방대한 연산량이 필요한데 이러한 연산을 수행하려면 수천~수만대의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 카드)가 필요하다. 이같은 GPU를 다량으로 병렬 연결해 복잡한 연산 과정을 수행하기 위한 고밀도 IT 공간이 바로 데이터센터다.
AI 산업 육성을 위해선 데이터센터의 건설이 반드시 선행되야 한다. 하지만 일부 주요 선진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쉽사리 데이터센터 건설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데이터센터 건설시 초고밀도 전력, 냉각 시스템, 초저지연(ultra-low latency) 네트워크 등 주춧돌에 속하는 인프라가 반드시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국가들이 AI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초고압변압기(EHV Transformer) 등 핵심 전력 기술을 보유한 효성중공업이 올해들어 북미 등 해외 지역에서 연달아 전력 설비 사업을 수주하면서 재계‧업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 초고압변압기,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시 제1인프라에 해당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첫 단계는 다량의 GPU 확보가 아닌 초고압변압기 및 변전설비 등과 같은 전력 인프라 확보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 수요가 발생하기에 154kV·345kV급 초고압 송전선로에서 직접 전기를 공급받는다. 이때 데이터센터 내부에 설치된 초고압변압기가 송전선로에서 받은 초고압 전력을 단계별 변압 과정을 거쳐 데이터센터 내에서 사용 가능한 수준의 전력으로 전환한다.
또 변압 과정에서 효율성이 높고 전력 손실률이 낮다면 연간 수억~수십억원 전기요금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에 안정성‧내구성을 갖춘 초고압변압기의 경우 빅테크 기업들이 선호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효성중공업은 현재 765kV(kilovolt, 킬로볼트) 초고압변압기, 800kV 초고압차단기 등 전력기기 풀 패키지를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회사는 현재 미국 내 765kV 초고압 송전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실제 효성중공업은 올 8~9월 동안 미국 최대 송전망 운영사로부터 765kV 초고압변압기 및 리액터 29대, 800kV 초고압차단기 24대 등 총 2000억원 이상 초고압 전력기기를 수주했다.
여기에 최근 미국은 AI 산업 성장에 따른 데이터센터 증가, 전기차 확산 등으로 향후 10년간 전력 수요가 25% 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할 효과적인 전력망 확충 해법으로 765kV 송전망이 부각되고 있다.
효성중공업에 따르면 765kV 송전망은 기존 365kV 및 500kV 대비 송전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고 한 번에 대용량 전력을 장거리 송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 빅테크 밀집 북미 시장 공략 가속화 위해 美 테네시주 멤피스 공장 추가 투자
효성중공업은 미국 테네시주에 위치한 멤피스 공장을 교두보로 삼아 빅테크 기업들이 몰려 있는 북미 지역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선다는 전략이다.
지난 11월 18일 효성중공업은 멤피스 공장에 1억 5700만달러(한화 약 2300억원)를 추가 투자해 오는 2028년까지 초고압변압기 생산 능력을 기존 대비 50% 이상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추가 투자로 인해 효성중공업의 멤피스 공장은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초고압변압기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효성중공업은 멤피스 공장 인수 이후 이번 추가 투자까지 포함해 모두 3차례에 걸쳐 총 3억달러(한화 약 4400억원)를 멤피스 공장에 투입하게 됐다.
지난 2019년 일본 미쓰비시로부터 효성중공업이 약 4650만달러(약 500억원)에 인수한 멤피스 공장은 미국 내에서 유일하게 765kV 초고압변압기 설계·생산이 가능한 곳이다.
효성중공업은 2010년대초부터 미국 현지 765kV 초고압변압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 1위를 유지하며 미국 송전망에 설치된 765kV 초고압변압기의 절반 가량을 공급해 왔다. 더불어 미국 시장에서 765kV 초고압 송전에 필요한 초고압변압기, 리액터, 차단기 등 송전망 내 주요 전력기기를 토털 솔루션으로 미국 시장에 제공할 수 있는 한국 기업은 효성중공업이 유일하다.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북미 시장은 AI 데이터센터 건설로 인한 전력망 확충 수요와 노후 전력기기 교체 수요 등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며 “당사는 멤피스 공장을 중심으로 북미지역 수주 비중이 높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글로벌 마켓 인사이츠(Global Market Insights)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변압기 시장이 연평균 약 7.7%씩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사이츠는 지난 2024년 약 122억달러(약 17조 8000억원) 수준이었던 시장 규모가 2034년엔 약 257억달러(약 37조원)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우드 멕킨지(Wood Mackenzie)는 미국 전력사업자들이 전체 전력수요(약 750GW)의 약 15.5%에 해당하는 116GW(기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 전력 신규 공급을 확정하고 오는 2040년까지 추가로 309GW 규모의 전력공급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예측했다.
◇ 자체 개발 HVDC 시스템, 정부 주도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에 기여
이와함께 효성중공업은 미래 전력망의 핵심 기술인 전압형 HVDC(초고압직류송전) 변압기 생산에 집중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정부가 추진 중인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등 AI 산업 육성 정책에 힘을 보탬과 동시에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나선다는 전략이다.
효성중공업은 국내 최초 독자기술로 전압형 HVDC 기술을 개발한 뒤 지난해 한전 양주변전소에 200MW HVDC 시스템을 설치한 바 있다. 이어 지난 7월 30일에는 총 3300억원을 투자해 오는 2027년 완공을 목표로 경남 창원에 HVDC 전용 변압기 전용 공장을 건설 중이다.
효성중공업에 의하면 HVDC는 HVAC(초고압교류송전)와 비교해 먼 거리까지 전력손실을 최소화해 송전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특히 효성중공업이 보유한 전압형 HVDC 기술은 재생에너지 발전과 연계가 가능해 더욱 각광 받고 있다.
현재 HVDC 기술은 소수 해외 전력기기 업체만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효성중공업은 2017년 HVDC 개발에 착수한 후 총 1000억원을 투자해 지난해 ‘독자기술’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효성중공업은 앞으로 2GW(2000MW)급 대용량 전압형 HVDC 개발을 추진해 소수 해외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HVDC 시장에서 기술 국산화를 꾸준히 이어갈 예정이다.
아울러 효성중공업은 자사의 HVDC가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구축 사업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국가 전력망 혁신사업으로 호남·서해안권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태양광·해상풍력 등)를 수도권·산업집중지대로 대용량 송전하기 위한 HVDC망 구축사업이다.
해당 사업은 총 연장 약 620km, 해저·지중 케이블 및 변환소 설치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전체 사업비는 약 11조원에서 11조5000억원대 수준으로 추산됐다.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전압형 HVDC는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사업에 필수적인 기술”이라며 “이는 실시간 양방향 전력 제어가 가능하고 전력계통 안정화에도 유리해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불규칙한 재생에너지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내 기술이 적용된 당사의 전압형 HVDC를 사용할 경우 원활한 전력망 유지보수, 고장시 빠른 대처 등이 가능해 정부가 추진 중인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구축 사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 관계자는 “글로벌 전력시장에서도 HVDC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면서 “실제 재생에너지 발전과 국가간 송전망 연결(슈퍼 그리드)이 활발한 유럽과 AI 산업 성장으로 전력소모가 급상승하는 미국 중심으로 글로벌 HVDC 시장이 점점 커지는 추세”라고 밝혔다.
뒤이어 “글로벌 HVDC 시장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8.1%씩 성장해 2034년 약 264억달러(한화 약 37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당사는 HVDC 변압기 공장 신축을 발판으로 현재 협의 중인 해외 프로젝트를 포함해 글로벌 시장으로 점차 보폭을 넓혀갈 계획이다”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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