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황성필 변리사) 인공지능(AI)이 기술 개발과 디자인, 브랜드 기획 전반에 깊숙이 관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AI는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표현을 생성하며, 결과물의 완성도까지 끌어올리는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재산권(IP)을 둘러싼 담론은 여전히 과거의 질문에 머물러 있다. “누가 만들었는가?” “AI가 만든 결과물의 권리는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그러나 이러한 물음은 이미 핵심을 비껴갔다. AI는 의도를 가지지 않으며, 결과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없다. 반면 결과물은 끊임없이 생성된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본질적인 문제는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창작자 논쟁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는가"라는 책임의 귀속 문제다.
AI 시대의 지식재산권은 창작의 신비주의를 벗어나 책임의 구조를 중심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IP 제도는 애초부터 결과 그 자체만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특허는 기술적 선택과 투자에 따르는 리스크 감수를 전제로 하고, 상표는 출처 표시와 영업상 신용에 대한 책임을 보호한다.
저작권은 개성 있는 표현을 창작하고 선택한 주체의 책임을, 디자인은 심미적 가치를 구현하고 제품화한 주체의 책임을 전제로 작동한다. 즉, IP는 언제나 인간의 판단과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수반되는 책임을 엔진 삼아 구동되어 왔다.
오늘날 흔히 제기되는 “AI가 만들었다면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는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분쟁의 당사자가 될 수도 없다. AI는 결과를 출력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를 사회에 내놓을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지도, 책임을 부담하지도 않는다. 이 지점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바로 "지브리 스타일"이다. AI는 이제 몇 줄의 프롬프트만으로 스튜디오 지브리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무수히 찍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 공개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될 때 발생하는 법적·윤리적 책임을 AI가 질 수는 없다.
어떤 표현을 요청할지, 그 결과물을 실제 시장에 유통할지, 그에 따른 분쟁 가능성을 감수할 것인지는 오직 인간의 선택이다. 지브리라는 스타일이 가치를 갖는 이유 역시, 결국 그 표현의 경계선을 확정하고 통제하며 책임져온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이제 "창작(Creation)"에서 "기여와 책임(Contribution & Responsibility)"으로 이동해야 한다. 인간이 어떤 목적을 설정했고, AI에게 어떤 조건과 제약사항을 부여했으며, 쏟아지는 결과물 중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구조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임 구조는 IP의 유형별로 구체화된다. 특허에서 인간의 기여는 단순한 계산이나 자동 생성이 아니다. 어떤 기술적 과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로 정의할 것인지, 그리고 그 해결 방향에 막대한 자본과 자원을 투입할 리스크를 짊어질 것인지에 그 본질이 있다.
AI가 최적의 기술적 해답을 도출할 수는 있어도, 그 해답을 자본과 결합해 현실의 산업으로 구현해내는 ‘집행’은 오직 인간의 의지로만 가능하다. 저작권과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다. AI는 스타일을 모방하고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지만,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고 공개와 상업화 여부를 결정하는 ‘사후적 통제’는 인간의 영역이다.
법적 리스크를 감수하며 그 결과물을 자신의 이름으로 선언하는 주체 역시 인간이다. 책임은 통제가 이루어진 지점에 귀속되며, 그 통제의 키(Key)는 여전히 인간이 쥐고 있다.
상표는 이 책임 구조가 가장 명징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상표는 본래 창작물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의 산물이다. 어떤 표장을 채택할 것인지, 그 표장이 소비자에게 어떤 출처 인식을 형성하게 할 것인지, 그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책임을 다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혼동 위험을 줄여주는 유능한 참모가 될 수 있지만, 표장에 영업상 신용을 실어 시장에 내놓는 결단은 오직 인간만이 내릴 수 있다. AI 협업 시대의 IP 보호는 AI 사용 여부를 숨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판단과 책임이 어디에서 행사되었는지를 명확히 기록하고 설계하는 데 있다. 목적 설정, 조건 부여, 선택과 배제, 최종 승인의 과정은 모두 ‘인간 책임의 흔적’이다. 이러한 기록은 사후 분쟁을 대비한 증거를 넘어, 권리를 설계하는 과정 그 자체가 된다.
결국 지식재산권은 단순히 AI가 출력한 데이터에 국가가 독점권이라는 도장을 찍어주는 제도가 아니어야 한다. 오히려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골라 실패의 위험을 짊어지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인간의 결단'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야 할 것이다.
AI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계가 얼마나 똑똑한지 법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닌, 누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인지, 즉 '인간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법적 인식의 전환이 본질이지 않을까 한다.

[프로필] 황성필 만성국제특허법률사무소 파트너 변리사
•(현)이엠컨설팅 대표
•(현)디자이노블, 임펙트에이아이, 피터팬랩, 온누리아이코리아, 딥다이브, 로맨시브, 종로학원 자문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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