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양학섭 편집국장) 한국 행정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과거 정부들이 법·제도 설계와 간접 신호에 의존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훨씬 직설적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곧바로 시장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국무회의 발언 하나가 가격표를 바꾸고, 기업 이사회 안건을 흔든다. ‘정책은 문서로 나오고, 시장은 천천히 반응한다’는 오래된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 행정은 비교적 정제돼 있었다. 물가 문제는 공정위와 기재부가 맡았고, 기업 지배구조는 금융당국과 거래소의 영역이었다. 대통령 메시지는 원론적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이재명 정부 들어 대통령 발언은 훨씬 구체적이다. 생필품 가격, 고용 구조, 주주환원까지 직접 언급한다. 메시지는 빠르고 강하다. 그 결과 기업들은 정책 발표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통령 발언 직후 내부 회의가 열리고, 실무 라인이 즉각 움직인다.
유통업계는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물가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이후 대형마트와 식품기업들은 할인 행사 확대와 가격 조정에 나섰다. 이는 업계 내부에서도 “정책 시그널에 대한 선제 대응”으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대기업들이 정부 기조를 ‘참고 변수’ 정도로 취급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수출 비중이 큰 현대자동차는 미국 관세 리스크와 정부 산업 전략을 동시에 고려하며 해외 생산과 공급망 전략을 재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투자와 주주환원 정책을 둘러싸고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정부 메시지를 분석하는 분위기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주주 가치’다. 이재명 정부는 기업 가치 제고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이에 따라 상장사들은 배당 확대, 자사주 정책 재검토 등 IR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과거처럼 '중장기 검토'로 넘길 수 없는 환경이 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제는 법이 바뀌기 전에 먼저 움직인다”며 “대통령 발언 자체가 리스크 관리 항목”이라고 말한다.
고용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이전 정부들이 노사정 테이블 중심의 조율을 중시했다면, 현 정부는 고용 유연성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강조하며 기업에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그 결과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들까지 인력 구조 점검에 들어갔다. 정규직·비정규직 운용, 성과급 체계, 신규 채용 방식이 다시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이는 단순한 인사 정책 변화가 아니다. 대통령의 언어가 기업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행정의 핵심은 속도와 직진성이다. 정책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물가 대응도, 기업 가치 제고도 이전보다 즉각적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기업들은 단기 대응에 몰리고, 중장기 투자 판단은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 가격 인하 압박이 커질수록 수익성은 흔들리고, 고용 유연성 논의가 빨라질수록 현장의 불확실성은 커진다. ‘관치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다.
과거 행정이 느렸다면, 지금 행정은 빠르다. 문제는 균형이다.
대통령의 말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곧 기업 행동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분명 새로운 시대다.
다만 이 속도가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단기 처방의 반복으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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