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황성필 변리사의 지식재산권 이야기 - AI 시대의 변리사, ‘법률 대리인’을 넘어 ‘권리 설계자’로 진화한다

2026.03.20 07:13:38

 

(조세금융신문=황성필 변리사) AI는 도구, 판단은 인간의 몫

 

인류의 역사는 곧 도구의 역사였다. 바퀴가 인간의 이동 능력을 확장했고, 컴퓨터가 계산 능력을 확장했다면, 이제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인지(Cognition) 능력을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인도 아메다바드에서 개최된 「제19회 국제 지식재산권 콘클레이브(19th Annual International Intellectual Property Conclave)」에 연사로 참석해 다양한 IP 전문가들과 변화의 물결을 논의했다. ‘국경 없는 혁신’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 필자는 강연 도중 청중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였다.

 

“만약 AI가 특허 명세서의 90%를 작성했다면, 여러분은 그 특허권의 90%를 AI에게 넘겨주고 본인은 단 10%의 지분만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청중석의 웃음 섞인 긴장감 속에서 필자는 곧바로 질문을 이어갔다. “여러분이 수행한 그 10%의 판단이야말로 기술을 단순한 데이터가 아닌, 시장에서 통용되는 강력한 자산으로 전환한 결정적 요소였습니까?”

 

실제로 다양한 AI가 이미 법률업계에서 빈번히 사용된다. 대부분의 고객들도 변리사로부터 받은 법률의견을 AI를 이용하여 검수하고 추가적인 질문도 AI로 정리하는 마당에 변리사가 AI를 쓰지 못하는 것은 이미 말이 되지 않는다.

 

명세서 초안 작성, 선행기술 조사, 기본 검색과 같은 정형화된 업무도 상당 부분 AI를 통하여 수행하고 있다. 인간이 며칠을 밤새워 하던 작업을 AI는 단 몇 분 만에 결과물로 내놓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오히려 변리사의 본질적 역할은 더욱 선명해짐을 느낀다.

 

즉, 도구가 최첨단으로 진화할수록, 그 도구를 활용해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간의 판단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제 특허 등록 자체가 성공을 의미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우수하고 권리화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산업화와 상업화(Commercialization)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권리는 기업의 재무 구조나 시장 지배력에 실질적 기여를 하지 못하는 ‘박제된 서류’에 불과하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기술적 가능성을 조합해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어떤 시장에서 파괴력을 가질지, 자본과 결합해 어떤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장기적으로 기업의 핵심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는지는 판단하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변리사의 역할은 단순한 법률 대리인을 넘어선다. 이제 변리사는 기술을 ‘권리’로 전환하는 단계를 넘어, 그 권리를 ‘비즈니스 구조’ 안에 최적으로 배치하는 설계자(Business Architect)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설계자'가 무엇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권리에서 자산으로, 변리사의 역할 확장

 

특히 스타트업과 기술 기반 기업에 있어 특허는 단순한 방어 수단이 아니라 기업 가치의 핵심이다. 벤처캐피털(VC)은 특허의 존재 여부만 보지 않는다.

 

해당 권리가 진입 장벽을 충분히 형성하는지,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확장 가능한 구조인지, 그리고 경쟁 우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사업화는 또 다른 문제이다.

 

따라서 이제 변리사는 VC와 같은 투자자의 시각도 필요하다. AI가 분석한 데이터를 근거로 삼되, 그 너머에 있는 사업화의 성공 가능성을 포착하고 기술의 ‘몸값’을 설계하는 감각이 필수적이다. 어떤 기술을 보호 대상으로 설정할지, 어느 범위까지 독점권을 확보해 투자 유치에 유리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지 설계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필자는 강연에서 AI를 '최첨단 튜브 물감'에 비유했다. 과거 화가들이 광석을 직접 갈아 물감을 만들었다면, 오늘날 화가는 튜브를 짜서 쓴다. 물감을 직접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작품의 저자가 달라지지 않듯, AI라는 도구를 활용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할지 결정하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다.

 

AI가 수만 가지 기술적 조합을 제시하더라도, 그 가운데 무엇을 골라 자본을 투입하고 시장에 내놓을지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여’를 설계하는 시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변리사의 실무 영역은 변화했고 변화해야 하며, 역할의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이제 변리사의 업무는 단순한 출원 전략에 머물 수 없다.

 

기획 단계에서 어떤 문제를 정의할 것인지, AI에게 어떤 조건과 방향을 제시할 것인지, 생성된 결과물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수정할 것인지, 그리고 그 창작 과정을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지까지 설계해야 하는 시대다. 단순히 결과물을 권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에 대한 인간의 기여 자체를 설계하는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AI를 활용한 창작 환경에서는 결과물의 양이 급격히 늘어난다. 그러나 그 가운데 무엇을 채택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며, 어디까지 인간이 개입했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권리의 정당성은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창작에 대한 인간의 기여 이력(Human Contribution Log)’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하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 기록은 단순한 행정적 절차가 아니다. 사후 분쟁에서 권리를 방어하는 법적 근거가 되는 동시에, 기술과 아이디어가 어떻게 비즈니스 자산으로 전환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전략적 설명서 역할을 한다. 창작의 방향을 정하고, AI의 활용 범위를 설정하며, 최종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 또한 AI 시대에 변리사가 수행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전문 영역이다.

 

인도 컨퍼런스에서 만난 글로벌 전문가들 역시 변리사가 단순한 서류 대행 업무에서 벗어나 기술, 자본, 시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설계자로 진화해야 한다는 데 깊이 공감했다. AI 시대, 우리가 진정으로 보호해야 할 것은 기계가 만들어낸 데이터 뭉치가 아니다.

 

그 결과물 위에 어떤 비즈니스 전략을 세우고, 어떤 위험을 감수하며, 어떤 상업적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 결정한 ‘인간의 결단’이다. 변리사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높은 차원의 판단과 책임, 그리고 사업적 통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법률 대리인을 넘어, 기술과 시장을 연결하는 비즈니스 설계자로의 진화는 이미 시작됐다.

 

 

[프로필] 황성필  만성국제특허법률사무소 파트너 변리사

•(현)이엠컨설팅 대표

•(현)디자이노블, 임펙트에이아이, 피터팬랩, 온누리아이코리아, 딥다이브, 로맨시브, 종로학원 자문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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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필 변리사 hwangpa-hsp@hwangp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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