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함광진 행정사) 사람이 욕을 먹는 구조
“직원들 요구가 점점 많아집니다.”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다. 최근 상담 사례도 비슷했다. 직원이 30명 정도인 의료법인이었다. 행정팀 직원이 배우자의 해외 발령을 이유로 1년 무급휴직 후 복직 보장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법에 회사가 그 요구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거절하자니 매정해 보일 것 같고, 받아들이자니 다른 직원들과의 형평성이 걱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였다. “관련 사규는 없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되묻는다. “결정을 사람이 하도록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기준이 하도록 되어 있습니까?” 기준이 없으면, 사람이 평가받는다. 휴직 문제는 법이 일부만 정해 두었다. 법은 최소 기준만 규정할 뿐, 개인 사정에 따른 장기 무급휴직까지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즉, 나머지는 회사의 판단 영역이다.
모든 요구가 협상이 되는 순간
문제는 그 판단을 떠받치는 내부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기준이 없으면 모든 요청은 협상이 된다. 협상이 되면 결국 사람의 판단이 중심이 된다. 허용하면 ‘특혜’가 되고, 거절하면 ‘냉정한 회사’가 된다. ‘’
결정의 내용이 아니라, 결정한 사람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 물론 모든 갈등이 구조 문제만은 아니다. 사람의 태도 문제도 존재한다. 그러나 기준이 없으면 같은 갈등은 반복된다. 그리고 같은 문제가 반복될수록 모든 책임이 경영진에게 집중되고, 그 부담은 점점 커진다.
“규정상 어렵습니다”의 힘
예를 들어 사규에 이렇게 정해 두었다고 가정해 보자. 배우자 돌봄 휴직은 3개월 이내, 6개월 이상 장기 휴직은 불가라고 정해 두었다면, 경영진은 감정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 회사 인사규정상 장기 휴직은 어렵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된다.
거절이 아니라 규정 집행이 된다. 경영진이 매정한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 정한 기준이 적용된 것이다. 사규가 있다고 해서 갈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판단의 기준이 명확해지고, 결정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그것만으로도 조직의 신뢰 수준은 달라진다.
한 번의 예외가 남기는 것
직원 30명 내외 조직은 아직 관계 중심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서로 얼굴 보며 일하는 회사니까.’ 그러나 이 규모부터는 이미 구조가 필요하다. 한 번의 예외는 선례가 되고, 선례는 또 다른 요구의 근거가 된다. 사규가 없으면 매번 새롭게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경영진은 설명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직원이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판단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사람 대신 구조가 말하게 하기
모든 사규를 한 번에 완성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다음은 정해 두어야 한다. 휴직의 종류와 기간 한도, 승인 절차와 권한, 복직 보장 여부 및 조건, 이 세 가지가 정리되어 있으면 대부분의 분쟁은 구조 안에서 해결된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휴직이 아니다. 사람도 아니다. 구조다.
사규가 없으면 경영진이 모든 판단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판단은 언제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문제로 바뀐다. 회사가 성장하려면 사람을 바꾸기 전에 구조를 세워야 한다. 그 구조의 출발점이 바로 사규다. 사규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다. 경영진이 개인의 판단으로 평가받지 않도록 만드는 조직의 기준이다.
복붙 사규의 한계
많은 실무자들이 사규를 인터넷 양식으로 그대로 가져와 사용한다. 그러나 회사마다 인력 구조, 직무 특성, 조직 문화가 다르다. 의료기관, 제조업, 스타트업의 휴직 설계는 동일할 수 없다. 사규는 복사해서 붙여넣는 문서가 아니라, 회사의 운영 구조를 설계하는 작업이다.
현재 회사에 휴직, 징계, 평가, 보상과 관련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이미 경영진이 매번 방패가 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을 바꾸기 전에 구조를 점검해야 한다. 그 점검이 필요하다면, 전문가와 함께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프로필] 함광진 행정사
•CS H&L 행정사 사무소 대표
•인천광역시청 재정계획심의위원
•사회적기업진흥원 전문컨설턴트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