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함광진 행정사) 직원이 10명 이내일 때는 문제가 그나마 적다. 대표가 직접 판단하면 된다. 누가 휴직을 요청하면 들어보고 결정하고, 누가 급여 인상을 요구하면 상황을 설명하면 된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이런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그런데 직원이 20명 정도가 되는 순간 같은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시작한다. 직원 수가 늘어나면 대표가 모든 상황을 직접 보고 판단하는 구조가 점점 부담이 커진다. 서로 얼굴을 알고 일하던 관계 중심 운영도 한계가 생긴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이 예전 방식 그대로 회사를 운영하려 한다. 관계 중심 운영이 가능했던 시기의 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같은 문제, 다른 결정
예를 들어 보자. 한 직원이 개인 사정으로 장기 휴직을 요청한다. 대표는 상황을 고려해 휴직을 허용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몇 달 뒤 다른 직원도 비슷한 요청을 한다. 그러나 회사 사정상 이번에는 허용하기 어렵다.
그러면 직원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왜 저 사람은 되고 나는 안 되지?” 대표 입장에서는 상황이 달랐을 뿐이다. 그러나 직원 입장에서는 기준 없는 차별처럼 보일 수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조직 내부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결국 대표 마음대로 아닌가?” 이때부터 문제는 결정의 내용이 아니라 결정의 방식이 된다.
조직이 커질수록 필요한 것
직원 20명 내외인 조직은 하나의 전환점이다. 이 규모부터는 직원들이 서로의 처우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회사의 의사결정이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는지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규정이다. 규정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다. 회사가 어떤 기준으로 운영되는지를 정리하는 것이다. 휴직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징계는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지, 인사평가는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는지 같은 문제들이 사전에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사람 대신 기준이 말하게 하기
대표가 모든 판단을 직접 하는 구조에서는 대표가 항상 평가의 대상이 된다. 휴직을 허용하면 “특혜”라는 말이 나오고, 거절하면 “냉정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규정이 있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사규에 ‘장기 휴직은 3개월 이내’로 정해져 있다면, 직원들도 그 기준을 사전에 알게 된다. 이 경우 대표가 별도로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직원은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 회사 규정상 장기 휴직은 3개월까지 가능합니다.” 이 한 문장으로 많은 갈등이 정리된다. 대표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라 회사가 미리 정해 둔 기준이 적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규정을 알고 있는 조직에서는 대표가 매번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도 줄어든다. 조직이 성장할수록 사람의 판단보다 기준이 말하는 구조가 중요해진다.
대표가 모든 문제의 중심에 서지 않으려면
회사가 성장하고 직원이 늘어나면 대표의 고민도 달라진다. 매출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사람 문제다. 급여 인상, 휴직 요청, 직원 간 갈등까지 다양한 문제가 대표에게 모인다. 이 과정에서 대표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문제의 조정자이자 방패가 된다.
이 구조를 바꾸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람이 판단하는 구조를 기준이 판단하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우선 다음 세 가지 기준부터 정리해 두면 된다.
첫째, 근무 기준이다. 휴직의 종류와 기간 한도, 승인 절차, 복직 조건을 정해 두면 개인 사정에 대한 판단을 매번 대표가 하지 않아도 된다.
둘째, 징계와 문제 발생 시 처리 기준이다. 근태 문제나 조직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어떤 절차로 처리할 것인지 정해 두어야 한다.
셋째, 평가와 보상 기준이다. 급여 인상과 성과 평가의 기준이 있어야 직원들도 회사의 의사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기준만 정리되어 있어도 조직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갈등은 구조 안에서 해결된다.
회사가 성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직원 수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표의 판단으로 운영되던 조직이, 기준으로 운영되는 조직으로 바뀌는 과정이기도 하다.
대표가 모든 문제의 중심에 서지 않으려면 사람을 바꾸기 전에 구조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구조는 거창한 전략이 아니라 회사 운영 기준을 정리하는 일, 즉 사규를 만드는 일에서 시작된다.

[프로필] 함광진 행정사
•CS H&L 행정사 사무소 대표
•인천광역시청 재정계획심의위원
•사회적기업진흥원 전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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