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봉의 좋은 稅上]나도 팔불출이다

2020.02.21 06:00:00

(조세금융신문=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지금부터는 산만하고 무료한 이야기지만, Title을 핑계로 삼아 30여 년간 지켜본 누군가에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에 대한 오마주다.

 

J는 여자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고 생각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중시한다. 과하게 치장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돈을 과시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계층’(베블런의 유한계급론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과는 거리가 멀다. 긍정적인 J의 사유습성은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J는 아이들이 어릴 때 주말 등산을 자주 갔다. 등산을 하다 보면 등산로 주변에 누군가가 쌓아 높은 돌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날도 여염집 아이들처럼 두 아이는 경쟁이나 하듯 누군가가 쌓아 놓은 돌탑 위에 더 높은 돌탑을 쌓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던 J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아, 다른 사람들이 돌탑을 쌓을 수 있도록 제일 밑에다 돌을 놓아두렴!”

 

20년 전쯤이다.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과 함께 설악산을 갔다. J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자주 가는 산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만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오색약수터에서 대청봉까지 가는 코스는 등산 경험이 많지 않은 어른들에게도 그리 만만치 않은 길이였다.

 


약수터에서 도로를 건너자마자 초입부터 가파른 산길과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기가 질렸는지 30여 미터쯤 올라갔을 때부터 숨을 헐떡이며 울면서 떼를 썼다. J와 아이들 간의 대화 소리는 나무에 가리고 이파리의 흔들림에 묻혔다. 어떤 말이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대청봉을 찍고 하산까지 무사히 마쳤다.

 

내려올 때는 어스름한 햇살마저 등을 돌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 떼를 썼던 그 어린아이는 J가 행여나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봐 내려오는 내내 소방울만한 눈에 근심이 서려 있었고 때로는 길라잡이처럼 앞서나갔다. J는 언제부턴가 믿음직하게 성장한 아들을 보며,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J는 한때, 아이들 아빠가 직장생활 내내 힘들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고 했다. 늦은 퇴근에 지친 모습, 짜증 섞인 말투며 주말에는 피곤하다며 잠만 자기 일쑤다. J가 한마디 더 얹으면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어느 날 J는 어렵게 한소리 했다. “왜 매일 집에 늦게 들어오면서, 집에만 오면 힘들다고 하느냐? 본인이 좋아서 그렇게 살면서, 말만 하면 ‘나 혼자 좋으려고 이러는 줄 아느냐? 가족을 위해서 그런다’는데 가족 위해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는 “직장 그만둬도 괜찮다. 대신 힘들다는 소리는 안 듣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J는 “그때 한 말은 나도 힘이 드니 그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고생 많이 하는 것 알고 있다”라며 위로를 건넨다.

 

어느덧 애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모처럼 J는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된다.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 아빠와 함께한 추억이 없다는 말에 J는 안타까웠으나, 늘 아빠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자기들도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는 말에 다시금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그중 한 아이는 보스턴으로 유학을 떠났다.

 

최근에 어떤 모임에서 연배가 비슷한, 남편이 의사인 배우자의 이야기다. “남편이 병원 일을 그만두고 이제는 쉬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아직 아이들도 어리고 최근에야 아파트에 당첨되어 앞으로 들어갈 돈도 많은데….”

 

J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J도 언제쯤 현업에서 은퇴하면 되겠냐는 남편의 물음에 언제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둬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서 한 일주일 지난 뒤에 “아직 공부도 마치지 않은 아들이 둘이나 있고 결혼도 안 했는데, 그냥 쉬고 있으면 당신 혼자 편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J는 새벽 1시쯤 보스턴에 있는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점심은 어떻게 먹고 있니?” 아들의 답은 “엄마, 늦었으니 주무세요!”였단다. 아들이 엄마 걱정해서 한 말임에도 섭섭해하는 눈치다. 점점 더 진정한 팔불출이 되어가고 있다. “아들! 아빠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선택과 결정은 엄마를 만나 결혼한 것이란다.”

필자와 미우나 고우나 평생 함께할, 세금 그리고 J.

 

 

[프로필]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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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jbkim@oktheta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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