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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APTA와 품목별 인증수출자, 그리고 제도의 빈틈

(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우리나라의 수출 기업들은 FTA(자유무역협정)를 비롯한 다양한 특혜 무역 협정을 통해 관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특혜를 실제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수출물품이 해당 협정에서 규정하는 원산지기준1)을 충족하고, 이를 증명하는 원산지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1) 수출 물품에 FTA라는 ‘특혜 통행증’을 발급해주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 요건

 

그런데 이 원산지증명서 발급 절차를 획기적으로 간소화하는 제도가 바로 ‘원산지인증수출자 제도’다. 이 제도는 수출기업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무역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으나, 아직도 보완이 필요한 제도적 공백이 존재한다.

 

특히 APTA(아시아·태평양 무역협정)와 품목별 원산지인증수출자 제도 간의 간극은 조속히 해소되어야 할 과제다.

 

인증수출자 제도의 탄생과 법적 근거

 

원산지인증수출자 제도는 관세당국이 원산지 증명 능력이 있다고 인증한 수출자에게 원산지증명서 발급 절차 또는 첨부서류 제출을 간소화하는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FTA 체결 국가가 증가함에 따라 원산지증명서 발급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하여 도입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한-EU FTA 발효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법적 근거는 「자유무역협정의 이행을 위한 관세법의 특례에 관한 법률」(이하 FTA특례법) 제12조 및 동법 시행령 제7조, 시행규칙 제17조 및 제18조에 명시되어 있으며, 관세청 고시인 「자유무역협정 원산지인증수출자 운영에 관한 고시」가 세부 운영 사항을 규율하고 있다. 현재 인증기관은 서울·부산·인천·대구·광주 본부세관 및 평택 직할세관이며, 인증 유효기간은 5년이다.

 

업체별과 품목별, 두 갈래의 인증수출자

 

원산지인증수출자는 업체별과 품목별로 이원화되어 있다. 업체별 원산지인증수출자는 협정상대국별 원산지증명 능력 및 법규 준수도, 원산지관리전담자 지정·운영 여부 등 엄격한 심사 요건을 갖추어야 하며, 인증 취득 시 전체 협정·전체 품목에 걸쳐 원산지증명서 발급 간소화 혜택을 받는다.

 

반면, 품목별 원산지인증수출자는 특정 FTA 협정 및 HS 6단위 품목에 대해 원산지결정기준의 충족 여부만 확인받으면 되어 진입 요건이 상대적으로 낮으나, 혜택 역시 인증받은 협정과 해당 품목에 한정된다.

 

업체별 인증은 기업 전반의 원산지 관리 시스템과 전담 인력 구비를 전제로 하는 만큼 중소기업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고, 품목별 인증은 그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실질적인 특혜를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인증수출자 제도가 필요한 협정과 그렇지 않은 협정

 

인증수출자 제도의 실질적 필요성과 효과는 협정의 원산지증명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한-EU, 한-영, 한-EFTA, 한-캄보디아, 한-이스라엘, 한-인도네시아 협정은 수출자가 스스로 원산지증명서를 작성·발급하는 ‘자율발급’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 중 한-EU 및 한-영 FTA의 경우 6,000유로를 초과하는 물품은 반드시 인증수출자만이 원산지신고서를 발급할 수 있어 인증수출자 자격이 사실상 의무적이다. RCEP은 기관발급과 인증수출자 자율발급을 모두 허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한-아세안, 한-싱가포르, 한-인도, 한-필리핀 협정은 ‘기관발급’ 방식을 원칙으로 하며, 인증수출자는 기관발급 신청 시 첨부서류 제출을 생략하는 혜택을 받는다. APTA, GSP, GSTP, TNDC 등은 ‘FTA’가 아닌 특혜 무역협정으로 분류되어 있어 당초 인증수출자 제도의 적용 범주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APTA란 무엇인가

 

APTA(Asia-Pacific Trade Agreement, 아시아·태평양 무역협정)는 한국, 중국, 인도, 스리랑카, 라오스, 방글라데시 등 6개국이 참여하는 지역 특혜 무역협정이다.

 

1975년 방콕협정(Bangkok Agreement)에서 출발하여 2006년 9월 1일부로 현재의 명칭으로 개편·확대되었으며, 참가국 간 교역 활성화와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한다. APTA는 WTO 협정 제24조에 기반한 FTA와는 법적 성격이 다르며,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UN ESCAP)의 지원 아래 체결된 개발도상국 간 특혜 무역협정의 성격을 갖는다.

 

원산지결정기준은 완전생산기준(A), 부가가치기준(B: FOB 가격의 55% 이하의 비원산지 재료 사용), 역내 누적 가치(C: 60% 이상), 세번변경기준(E: 4단위) 등이 있으며, 원산지증명서 유효기간은 1년이다. 한국의 주요 교역국인 중국, 인도와의 무역에서 APTA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면 FTA를 보완하여 관세 절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업체별 인증수출자에게만 허용된 APTA 등 혜택

 

2017년 5월, 관세청은 APTA, GSP, TNDC, GSTP 등 비(非)FTA 특혜 협정에 대해서도 업체별 원산지인증수출자에 한하여 원산지증명서 발급 시 첨부서류 제출 간소화를 허용하는 조치를 시행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관련 고시 개정을 통해 이를 제도적으로 공식화하였다.

 

이에 따라 업체별 인증수출자는 APTA 원산지증명서 발급 신청 시 원산지소명서 및 그 증빙서류의 제출을 생략할 수 있게 되었으며, 현지 확인 면제 등의 추가 혜택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해당 조치는 수출기업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무역 원활화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실제로 업체별 원산지인증수출자 1회 인증으로 APTA를 포함한 모든 특혜 협정·모든 수출 품목에 대해 발급 절차 간소화가 가능하다.

 

품목별 인증수출자, APTA의 사각지대

 

그러나 품목별 원산지인증수출자는 이 혜택에서 제외되어 있다. 현행 제도상 품목별 인증수출자의 혜택은 ‘인증 심사를 받은 FTA 협정’과 ‘인증받은 HS 6단위 품목’에 한정되며, FTA가 아닌 APTA는 품목별 인증수출자의 적용 협정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불균형은 APTA 활용도가 높은 한국 수출기업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제도적 단절이다.

 

업체별 인증수출자는 엄격한 요건으로 인해 대기업·중견기업에 편중되어 있고,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품목별 인증수출자는 APTA 활용 시 여전히 원산지소명서 등 각종 첨부서류를 구비해 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같은 원산지인증수출자이면서도 인증 유형에 따라 APTA 활용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는 것은 제도의 형평성과 실효성 측면에서 재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공백은 APTA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GSP, TNDC, GSTP 등 여타 비FTA 특혜 협정에서도 품목별 인증수출자는 동일하게 건건이 원산지결정기준사실신고서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하여 심사받아야 하므로, 이들 협정 전반에 걸쳐 품목별 인증수출자의 제도적 처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도 보완의 필요성과 방향

 

원산지인증수출자 제도의 궁극적 목적은 원산지증명 능력이 검증된 기업에게 행정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무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데 있다. 품목별 인증수출자는 비록 협정별·품목별로 제한적인 심사를 받지만, 해당 품목의 원산지 요건 충족 능력을 관세당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주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인증받은 특정 품목에 대해 APTA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할 때도 첨부서류 간소화 혜택을 부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목할 점은, 원산지인증수출자 제도가 반드시 협정에 명시된 경우에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아세안 협정처럼 협정문에 인증수출자 제도에 관한 별도 규정이 없음에도, 우리나라는 FTA특례법 및 관련 고시 등 국내법령을 근거로 독자적으로 인증수출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APTA 역시 협정 자체에 인증수출자 제도를 두고 있지 않지만, 이미 업체별 인증수출자에게는 국내법 고시 개정만으로 발급 간소화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같은 방식으로 FTA특례법 시행규칙 및 「특혜관세 적용 및 원산지증명 제도 운영에 관한 고시」를 개정하여 품목별 인증 가능 협정 목록에 APTA를 추가하고, 이를 희망하는 기업이 신청을 통해 원산지관리 능력을 심사받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입법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과제다.

 

이러한 문제는 관세행정의 현재 지향점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관세청은 2026년 현재 ‘디지털 관세행정 2.0’을 추진하며 전 통관 절차의 전자화·무서류화를 핵심 과제로 삼고 있으며, ‘종이 없는 연계 통관’ 체계 구축을 통해 수출입 기업의 행정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APTA에서만 원산지 능력을 이미 공인받은 품목별 인증수출자에게 아날로그식 서류 제출을 여전히 요구하는 것은, 관세행정 스스로가 표방하는 디지털 전환의 흐름과 모순되는 자기부정이다. 혁신적 행정을 선언하면서도 특정 제도의 사각지대에서는 구시대적 절차를 고수하는 것은 정책 일관성의 관점에서도 설득력이 없다.

 

디지털 관세행정의 완성은 첨단 시스템의 구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사각지대를 꼼꼼히 메우는 작업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무역 환경이 복잡해지고 다변화하는 시대에, 수출 기업의 경쟁력은 관세 혜택의 실질적 향유 여부에서도 갈린다. 품목별 원산지인증수출자들이 APTA의 문턱 앞에서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반복하지 않도록, 정밀하고 신속한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경기TP, 인천TP 등 기관 전문위원

• (전)월드클래스 300, NCS워킹그룹 심의위원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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