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임현철 주EU 관세관) 이번주부터는 독자분들에게 약속한 대로, 트럼프 관세 정책에 대해 EU가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조치를 마련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필자가 이글을 쓸때까지 아직 트럼프 대통령이 EU에 상호관세 서한을 보내지 않았지만, 뉴스를 비롯한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연일 EU가 미국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대응을 할 것인지 보도하고 있다.
매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보복조치’라는 쓰기도 하고 ‘대응조치’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표현으로 인한 혼란도 문제지만, EU 대응조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근거는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지 않은 채, 그저 ‘보복’ ‘대응’이란 말만 난무하다 보니, 심각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EU 통상 최전선에 근무하면서 EU 대응조치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올 때 마다, EU의 대응조치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가 비로소 글을 쓰게 되었다.
이글을 통해 EU 대응조치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이해가 높아지기를 바란다.
EU 대응조치 근거 법령
현재 EU는 관세정책을 포함한 상대방의 일방적 행위에 대해 두가지 대응방식을 보유하고 있다. 첫 번째 방식은 2014년에 발효된 국제무역규칙의 적용 및 집행에 대한 EU 권리행사규칙[Regulation (EU) No 654/2014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of 15 May 2014 concerning the exercise of the Union's rights for the application and enforcement of international trade rules and amending Council Regulation (EC) No 3286/94 laying down Community procedures in the field of the common commercial policy in order to ensure the exercise of the Community's rights under international trade rules, in particular those established under the auspices of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이하 EU 권리행사규칙]에 따른 대응이다.
또 하나의 방식은 2023년 12월에 발효된 일명 ACI(Anti Coercion Instrument)로 불리는 경제적강압보호규칙[Regulation (EU) 2023/2675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of 22 November 2023 on the protection of the Union and its Member States from economic coercion by third countries]으로. 새로운 형태의 적대적 조치인 이른바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경제적강압보호규칙은 다음주에 설명하기로 하고, 이번편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조치에 대한 EU 대응조치 근거법령인 EU 권리행사규칙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EU 권리행사규칙
2014년에 발효된 EU 권리행사규칙은 ①EU가 WTO 협정에 따라 양허 또는 기타 의무를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 해당국가에 대응조치를 집행할 경우, ②국제무역협정에 따른 무역분쟁의 판결 후, EU가 양허 또는 기타 의무를 중단하고 해당국가에 대응조치를 집행할 경우, ③WTO Safeguard 협정 제8조 또는 기타 국제무역협정에 근거한 제3국의 Safeguard에 대한 대응조치를 시행할 경우, 이에 대한 법적 근거로 사용된다.
제1기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과 2020년 연속으로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of 1962) 제232조에 따라 유럽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일방적 관세부과조치를 시행했을 때, EU 대응조치의 근거가 된 법령이 바로 EU 권리행사규칙이다.
그런데 위에서 설명한 EU 권리행사규칙의 발동 요건 세 가지를 살펴보면, 적대적 조치를 취한 제3국의 행위 및 EU의 대응조치 모두 WTO 협정을 비롯한 각종 국제협정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미국은 자신들의 조치를 Safeguard라고 인정하지 않았으나, EU는 권리행사규칙을 적용하기 위해 Safeguard로 간주하였다.[EU 권리행사규칙 서문 (2)] 2025년 3월부터 시작된 제2기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조치에 대한 EU의 대응조치도 2018년과 2020년 당시처럼 EU 권리행사규칙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대응조치의 종류
EU 권리행사규칙은 규칙에서 규정하는 각종 대응조치를 통상정책조치(Commercial Policy Measures)라고 표현하는데, 관세 양허 중단, 최혜국 수준을 넘어서는 관세 부과, 상품에 대한 추가 관세부과, 쿼터, 수출입 양적 제한, 공공 조달 분야의 상품, 서비스 또는 공급업체에 대한 양허 중단 등이 포함된다.
어떤 대응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권리행사규칙 제4조에 따라 EU 집행위원회가 제정하는 이행법령(Implementing Acts)에 의해 구체화된다. EU 권리행사규칙은 이행법령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는 집행위원회가 제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이행규칙(Implementing Regulation)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2018년 제1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Implementing Regulation (EU) 2018/886와 2020년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Implementing Regulation (EU) 2020/502다.
이 두 이행규칙에 따라, EU는 두 단계에 걸쳐 백여개가 넘는 미국산 제품에 대해 추가 관세부과라는 대응조치를 취한 바 있다. 한편, 2025년도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조치에 대해서는 (EU) 2018/886과 (EU) 2020/502을 수정 개편한 Implementing regulation (EU) 2025/778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실제로 관련 이행규칙 부속서(Annex)를 보면 대응조치 대상 물품 품목분류(HS code) 번호마다 추가 관세율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관련 기업들은 관련 이행규칙의 부속서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행규칙 제정
EU 법 체계에서 이행규칙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행규칙은 우리가 아는 EU의 2차적 법원인 규칙(Regulation), 결정(Decision), 지침(Directive)는 아니나, EU 회원국에서 EU법이 통일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매우 중요한 하위법령이다.
EU는 27개국으로 이루어져 있어, 각 회원국마다 EU 법을 다르게 집행한다면 EU 존립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EU 기능조약(TFEU)는 제291조에 EU 법의 통일적 이행을 위해 EU 집행위원회에게 이행규칙을 제정할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행규칙은 기술적 또는 행정적 성격을 띠는데, 조세, 농업, 내부 시장, 보건과 같이 EU 역내에서 통일적 법 집행이 필요한 분야에서 주로 사용된다.
EU 권리행사규칙에서 규정한 대응조치도 실제로는 이행규칙을 통해 집행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EU에서 대응조치가 차지하는 정치적, 경제적 중요성을 감안해볼 때, 27개 회원국이 대응조치를 통일적으로 집행하지 않는다면, EU는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이행규칙 제정 권한 통제
그런데 2차적 법원과 마찬가지로 모든 회원국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이행규칙을 유럽의회나 이사회의 통제 없이 집행위원회에게만 맡겨놓는다는 것도 또다른 문제를 초래할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과의 통상분쟁에서 여러 이행규칙이 만들어지고 개정되어 왔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들과 통상협상을 주도하는 기관이 EU 집행위원회이며, 이행규칙 제정도 집행위원회의 전권에 속한 상황에서 집행위원회의 이행규칙 제정 권한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너무 극단적이긴 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EU 집행위원회에서 이행규칙을 통해 EU 및 회원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EU는 집행위원회의 이행규칙 제정에 관한 회원국의 통제 메커니즘에 관한 규정 및 일반 원칙에 관한 규칙[REGULATION (EU) No 182/2011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of 16 February 2011 laying down the rules and general principles concerning mechanisms for control by Member States of the Commission’s exercise of implementing powers]을 만들어 집행위원회의 이행규칙 제정을 통제하고 있다.
즉, 집행위원회는 회원국 대표로 구성된 자문위원회(Advisory commission)의 자문과 동의를 받아야만 이행규칙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자문위원회의 동의는 일반적인 단순 과반수가 아닌 가중 다수결을 의미(27개 회원국 중 15개국이 찬성해야 하며, 찬성이 EU 전체 인구의 65% 이상을 대표해야 한다.)함으로써, 집행위원회의 일방적인 이행규칙 입법행위를 제한하고 있다.(물론 긴급한 사안의 경우, 예외적 조치가 가능하긴 하다.) 이러한 통제절차를 EU에서는 Comitology라고 부른다.
위에서 언급한 2018년 이행규칙 (EU) 2018/886와 2020년 이행규칙 Implementing Regulation (EU) 2020/502, 2025년에 추가된 이행규칙 (EU) 2025/778 모두 이러한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언론보도를 보면 EU가 대응조치를 발표하면서 즉시 시행보다는 보통 몇 개월의 시간을 두는 이유도 미국과의 협상 여지를 남기려는 의도가 가장 크겠으나, 이행규칙 제정과 관련한 EU 내부의 절차로 인해 이행규칙의 제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작용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응조치 대상
대응조치는 적대적 조치를 취한 제3국이 원산지인 상품뿐 아니라 자연인과 법인 및 자연인과 법인이 제공하는 서비스에도 부과되기 때문에 조치 시행 전 어떤 상품 또는 서비스, 서비스 공급자가 해당 제3국에 속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EU 권리행사규칙은 이를 원산지 규칙이라고 부른다. 상품의 원산지 규칙은 EU 관세법[Regulation (EU) No 952/2013]에 따른다. EU 관세법 제60조는 상품의 원산지를 결정하는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을 나열하고 있는데,
첫째 원칙은 이른바, ’완전생산기준’으로 불리며, 단일 국가 또는 영토에서 전적으로 획득된 상품은 해당 국가 또는 영토가 원산지가 된다는 의미다.(EU 관세법 제60조 제1항) 두 번째 원칙은 ‘실질적변형기준’이라 하여, 상품 생산에 둘 이상의 국가 또는 영토가 관련된 상품의 원산지는 해당 목적을 위해 장비를 갖춘 기업에서 실질적이고 경제적으로 정당한 가공 또는 작업을 거쳐 결과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제조하거나 제조의 중요단계를 수행하는 국가가 원산지가 된다는 것이다.(EU 관세법 제60조 제2항)
문제는 ‘실질적변형기준’을 이용하여 EU 권리행사규칙상 대응조치를 회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적대적 조치를 취한 A국에 위치한 B라는 기업이 자동차를 생산하여 EU에 판매하고 있다고 하자.
A국의 적대적 조치가 계속되자, EU에서도 EU 권리행사규칙에 의거, 동 자동차에 대해 대응조치를 실행하려고 준비중이다. 이를 사전에 알아낸 B 기업은 자동차 생산기지를 C국으로 옮긴 후, EU 관세법 제60조 제2항 규정을 인용해, C국 공장에서 실질적이고 경제적으로 정당한 가공 또는 작업을 거쳐 자동차가 생산되었음으로 원산지는 A국이 아니라 C국이라 주장하여 대응조치를 회피할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2018년 제1기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일방적 관세부과조치를 시행한 후, EU는 EU 권리행사규칙에 따라 미국산 모터사이클에 대한 추가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의 유명 모터사이클 제조 업체인 Harley-Davidson은 모터사이클 제조 및 생산 공장을 태국으로 변경하고, 태국에서 생산된 모터사이클을 벨기에로 수입하면서 벨기에 세관에 원산지사전심사(Binding Origin Information)를 신청, 벨기에 세관으로부터 원산지를 태국으로 인정받아, 추가관세를 회피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EU 집행위원회는 EU 관세법 위임규칙 제33조, 즉, ‘다른 국가 또는 영토에서 수행되는 모든 가공 또는 작업은 해당 작업의 목적이 관세부과조치 적용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입증되면 경제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라는 규정을 인용하면서, Harley-Davidson의 행위는 EU 권리행사규칙상 추가관세부가조치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벨기에 세관에게 원산지사전심사 결정을 철회하도록 요구하였다. 집행위원회 요구에 따라 벨기에 세관이 원산지사전심사결정을 철회하자, Harley-Davidson이 유럽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유럽사법재판소는 Harley-Davidson의 공장 이전이 추가관세부가조치를 회피하기 위한 유일한 목적(Sole Purpose)은 아닐 수 있지만, 지배적인 목적(Dominant Purpose)이 추가관세부가조치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경제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것이며, 따라서 벨기에 세관의 원산지사전심사 철회는 정당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한편, 서비스 공급자의 경우, 자연인과 법인으로 나누어 자연인인 서비스 공급자는 국적과 영주권으로 판단한다.
앞으로 미국과 EU와의 통상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미지수지만, 만일 미국 정부의 관세 조치에 대해 EU가 대응조치를 언론에 발표한다면 그 대응조치란 EU가 EU권리행사규칙에 따라 제정한 이행 규칙에 규정된 것이며 더 나아가 자세한 대응조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행 규칙 부속서를 살펴보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음 편에서는 EU권리행사규칙과 결은 다르지만, 상대국의 적대적 행위에 대한 또 다른 대응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경제적 강압 보호 규칙에 대해 알아보자.

[프로필] 임현철 관세관
•법학박사(국제법, 서울시립대)
•제47회 행정고시
•외교통상부 2등 서기관
•관세청 국제협력과장
•국경감시과장
•김포공항세관장
•(현) EU 대표부 관세관
• 저서 : '관세를 알면 EU 시장이 보인다'(박영사)
• 논문 : EU PNR 제도 연구(박사학위 논문)
• 논문 : EU 국경제도(쉥겐 협정)의 두기둥: 통합국경관리와 프론텍스
• 논문 : EU 국경관리 제도 운용을 위한 EU의 입법적 역할 연구
• 논문 : EU 관세법 위반행위에 대한 패널티 규정 부조화(Non-Harmonisation)와 EU의 대응
• 논문 : 트럼프 행정부 관세정책에 대한 EU 대응조치 연구 - EU 권리행사규칙과 경제적강압보호규칙(ACI)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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