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요란스러운 변죽 대신, 설계의 품질을

2025.09.09 17:27:05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17년 만의 금융당국 조직개편을 두고 금융권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정부는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 강화를 내세우며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분리해 독립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번 개편은 단순 조직 변경을 넘어 금감원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

 

금감원 내부 반응은 격렬하다. 노조는 출근길 시위에 나섰고 “금소원 분리 철회” “공공기관 지정 반대” 등의 구호가 로비를 채웠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단순 반발을 넘어 조직의 역할과 위상, 그리고 향후 진로에 대한 불안까지 짙게 깔려 있다.

 

특히 금감원 직원들 사이에서 민원 처리 중심의 금소원 배치를 꺼리는 분위기가 현실적인 위기감으로 번지고 있다. ‘금융감독’ 고유 업무에 매력을 느껴 입사했는데, 향후 민원처리 기관으로 발령받는다면 애초 기대와는 전혀 다른 커리어 경로를 걷게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노조 입장만으로 이번 조직개편의 타당성을 단정하긴 어렵다. 이번 사안은 조직 내부 이해관계를 넘어 금융감독 체계 전반의 구조적 과제를 건드리는 문제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가 제시하는 개편안의 명분은 분명하다. 소비자 보호 기능을 독립시켜 전문성을 강화하고, 이해충돌 없이 금융사에 대한 감시를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금감원이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를 동시에 맡으면서 소비자 보호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2019년 DLF 사태 당시 금감원은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 감독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후 국회 정무위원회와 감사원도 관련 보고서를 통해 소비자 보호 전담 기능 강화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즉, 문제는 개편의 방향 그 자체보다 방식에 있다.

 

새 조직 체계는 기존 금융위원회를 해체하고 그 기능을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 금감원, 금소원으로 나누는 구조다. 이에 따라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이 분산되며 총 4개 기관이 하나의 금융사안을 나눠 맡게 된다. 정책 지침과 현장 감독, 민원 처리의 지휘 일관성이 흔들리면 위기 대응 속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2002년 카드사태 당시 부처 간 협조 부재로 신속 대응이 어려웠던 전례를 떠올리게 한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이 아무리 강해도, 권한과 책임이 복잡하게 분산되면 오히려 현장 혼란이 커질 수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 “지침을 내려주는 기관이 너무 많아졌다”며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또 하나 짚어야 할 지점은 두 기관의 공공기관 지정이다.

 

금감원과 금소원 모두 공공기관으로 편입되면 정부 통제력이 높아지고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려워진다. 금융감독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는 단순 조직 내부의 기득권 수호 논리로 치부할 수 없다. 단순 구조 개편이 아닌 금융감독의 기본 원칙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이 부분은 보다 신중하고 공개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조직 내부 혼란으로 인한 리스크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인력 유출 가능성은 물론, 신규 채용 시장에서의 매력도 하락까지 고려하면 복합적인 운영 불안이 현실화될 수 있다. 개편안이 실행되기 전 이 같은 현실적 문제에 대한 대책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개편안 강행이 아니라 설계다.

 

구조 변화가 현장에서 실행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정밀하게 진단하고 이를 선제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전략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감독의 일관성, 현장 대응의 효율성, 조직 운영의 안정성 세 축 모두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내부 반발을 고려한다면 순환보직 로드맵과 커리어 트랙을 제시해 인력 운영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도 빠르게 조직을 안정화 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결국 ‘분리냐, 통합이냐’를 가르는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금융감독 체계 전반의 실질적 기능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냉철한 논의가 당장 이뤄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재설계’란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서 금융감독 기관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답하는 과정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요란한 변죽이 아닌 실속 있는 혁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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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민경 기자 jinmk@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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