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2025년 도시정비사업 시장은 공급 지연, 공사비 부담, 고금리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건설 빅5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입지 경쟁’에 뛰어들며 성과의 온도차가 뚜렷해진 한 해였다. 강남·한강벨트 같은 최상위 입지에서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압구정·개포 등 대형 사업을 연속 확보하며 양강 체제를 굳혔고, 대우건설·DL이앤씨·GS건설도 각자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핵심 구역에서 실질적 성과를 쌓았다.
조합의 요구가 설계·공사관리·금융까지 세분화되면서, 올해 성과는 단순 물량이 아니라 ‘어떤 입지를 택했고 그 입지에 어떤 조건을 입혔는가’에 따라 갈렸다. 2026년 압구정3·4,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초대형 사업이 본게임에 돌입하면, 올해 드러난 전략 차이는 내년 정비사업 판도를 다시 뒤흔들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 현대건설 – 강남 메가프로젝트 집중…‘질적 수주’로 10조 돌파
현대건설은 2025년 도시정비사업에서 10조5105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첫 1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성과의 핵심은 ‘얼마나 많이 따냈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따냈느냐’였다. 현대건설이 확보한 11개 사업지 가운데 압구정2구역, 구리 수택동 재개발, 개포주공 6·7단지, 장위15구역 등 4개 초대형 프로젝트에서만 약 7조7000억원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연간 실적 구조를 사실상 완성했다.
특히 압구정2구역은 올해 정비시장 전체에서도 가장 주목받은 사업지다. 2조7000억원대 규모에다 강남 재건축 중에서도 난도가 가장 높은 구역으로 꼽히는 곳을 따냈다는 점은 현대건설이 강남권에서 구축한 브랜드 신뢰와 사업관리 역량을 그대로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강남 조합이 최근 공사비 상승과 금융 부담을 이유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공사’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압구정2구역 확보는 단순한 대형 수주 이상의 의미로 해석된다.
구리 수택동 재개발 역시 2조원 가까운 공사비가 걸린 수도권 최대급 프로젝트다. 복잡한 사업 구조와 대규모 기반시설 계획이 맞물린 구역이지만, 현대건설은 공정 계획의 현실성과 자금 조달 안정성을 무게 중심에 둔 제안으로 조합 표심을 잡았다. 개포주공 6·7단지와 장위15구역도 각각 1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사업장으로, 공사 설계·안전·교통 영향 등 난도가 높은 구역이다. 이들 세 곳을 연달아 확보한 점만 보더라도 현대건설이 올해 대형 프로젝트 중심 전략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철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현대건설의 2025년 실적은 ‘물량 확대’가 아니라 ‘질적 집중’의 결과다. 올해 확보한 사업지 수는 많지 않았지만, 압구정·개포·반포 등 강남권과 수도권 메가 프로젝트라는 최상위 난도 구역이 실적 대부분을 만들어냈다. 브랜드 파워, 사업관리 역량, 금융 안정성이 모두 요구된 정비사업 환경에서 강남·수도권 대형 조합들이 리스크 회피 관점에서 선택한 시공사가 현대건설이었다는 점이 올해 수주 구조에 그대로 반영됐다.
◇ 삼성물산 - 핵심지 ‘역전 수주’ 연속…조건 재설계 전략의 정점
삼성물산은 2025년 도시정비사업에서 9조2388억원을 기록하며 강남·도심·공공을 아우르는 핵심 구역에서 존재감을 극대화했다. 올해 수주 구조를 보면 ‘오랫동안 특정 건설사가 유력했던 구역을 최종 단계에서 뒤집는’ 역전 수주가 유독 많았다.
대표적으로 개포우성7차, 삼호가든5차, 장위8구역, 문래4구역, 증산4구역 등이 모두 초기에는 다른 시공사가 우세하다는 분석이 많았던 곳들이다. 삼성물산은 이들 사업에서 공사기간·공사비·금융조건을 조합 요구에 맞게 재설계해 제시함으로써 최종 총회에서 표심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개포우성7차의 경우 대우건설이 오랫동안 접촉해온 사업지였지만, 삼성물산은 공사기간 단축, 조합 예정가 이하 공사비, 사업비 책임 조달 조건을 제시하며 총회에서 54.3%를 확보해 최종 수주를 가져왔다. 삼호가든5차 역시 경쟁 구도 속에서 강남권 브랜드 신뢰와 조건 조율 능력을 앞세워 시공권을 확보한 사례다.
올해 삼성물산의 특징은 강남권·서울 핵심지를 넘어 리모델링(광나루현대), 공공재개발(장위8), 도심공공복합(증산4) 등 난도가 높은 영역까지 실적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확보한 사업장 수는 많지 않지만, 대부분 7000억~1조원대 이상의 중대형 프로젝트여서 실적 밀도는 그 어느 해보다 높았다.
삼성물산의 올해 행보는 브랜드 중심 선별 수주에서 가격·공기·금융을 전면 재설계하는 ‘조건 중심 수주 전략’으로 확실히 전환한 첫 해이자, 그 결과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시기였다. 강남권 핵심지 수주력 회복, 도심·공공부문 확장, 역전 수주의 반복은 내년 여의도·성수·압구정 등 대형 구역 수주전에 삼성물산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요인으로 평가된다.
◇ GS건설 – 잠실우성으로 체급 키우고, 부산·창원에서 존재감 강화
GS건설은 2025년 도시정비사업에서 5조4183억원을 확보하며 뚜렷한 반등 흐름을 만들었다. 전체 수주 건수는 많지 않았지만, 확보한 구역 대부분이 중·대형 고부가 사업장이어서 실적의 ‘밀도’가 높았다.
핵심은 단연 잠실우성 재건축(1조6427억원)이다. 강남권 초대형 사업에서 브랜드·설계·커뮤니티 경쟁력을 무기로 시공권을 확보해, GS건설이 강남권 대형 시장에서 다시 경쟁력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GS건설의 또 다른 특징은 부산·창원 중심의 지방 강세다. 연산5구역(7656억원), 사직5구역(3567억원), 창원 용호2구역(2743억원) 등 주요 재개발 사업에서 연속 수주하며 지방 실적 비중이 크게 늘었다.
다만 서울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강남권은 현대건설·삼성물산 양강 체제가 굳어졌고, 강북·여의도·성동권에서는 대우건설·DL이앤씨·포스코이앤씨 등이 경쟁력을 넓히면서 GS건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2025년 GS건설의 흐름은 ▲잠실우성이라는 초대형 실적 ▲부산·창원에 대한 강한 지역 집중 ▲선택과 집중 전략의 유지로 요약된다. GS건설이 내년 서울 핵심지에서 어떤 방식으로 경쟁력을 회복할지가 향후 정비사업 판도의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 대우건설 - 신흥3구역이 만든 반등 축…도심 중형에서 확실한 보폭
대우건설은 2025년 도시정비사업에서 3조7727억원을 확보하며 최근 2년간의 부진에서 벗어나 반등 흐름을 만들었다.
반등의 결정적 요인은 성남 신흥3구역(1조2687억원)이었다. 경기권 정비사업 중에서도 규모·난이도·기반시설 부담이 큰 구역으로, 브랜드·설계·공사관리 역량이 모두 요구되는 곳이다. 이 한 건의 수주가 대우건설의 실적 체급을 크게 끌어올렸다.
서울에서도 의미 있는 흐름이 이어졌다. 청파1구역, 유원제일2차, 문래4구역(공동 시공) 등 강북·도심권에서 연속 수주가 나왔고, 마포와 영등포 일대의 중형 사업장까지 확보하며 도심권 경쟁력이 강화됐다.
하지만 대우건설의 수주 구조는 명확한 편중이 있다. 수도권(서울·성남)에 실적이 집중됐고, 지방에서는 부산 광안동 가로주택 외에 뚜렷한 실적이 없다. 전국적으로 정비사업 수요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지역 편중은 향후 사업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리스크 요인이다.
또 하나 확인해야 할 점은 ‘반등의 깊이’다. 2022년 5조2759억원 → 2023년 1조6858억원 → 2024년 2조9823억원 → 2025년 3조7727억원으로 흐름을 보면 반등은 분명하지만 아직 과거 최고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올해는 ‘완전 회복’이라기보다 회복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해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결국 대우건설의 전략은 ▲신흥3구역 중심의 체급 상승 ▲수도권 경쟁력 강화 ▲지방 실적 부재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구조다. 내년에는 확보한 수도권 대형 프로젝트의 사업 속도가 대우건설 신뢰도 회복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 DL이앤씨 - 소수 정예 수주로 체급 키운 한 해
DL이앤씨는 2025년 도시정비사업에서 3조6848억원을 기록했다. 수주 건수는 많지 않았지만, 한남5구역과 증산4구역 두 개의 1조원대 프로젝트가 실적을 사실상 결정지었다.
이 가운데 핵심은 한남5구역(1조7584억원)이다. 한남권 재개발은 서울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사업군 중 하나로, DL이앤씨는 설계·공정·안전성·주민 대응까지 안정적인 전략을 유지하며 시공권을 확보했다. 한남4구역을 삼성물산이 가져간 상황에서 한남5구역 수주는 DL이앤씨의 체급을 다시 시장에 증명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증산4구역 도심공공복합(1조18억원) 역시 의미가 크다. 도심공공복합사업 특성상 계획 변경과 이해관계 변수가 많아 시공사 진입 자체가 쉽지 않은데, DL이앤씨는 삼성물산과 JV를 구성하며 실질적 시공 참여를 확보했다. 이는 단순 수주보다 ‘도심복합 영역 진입’이라는 구조적 확장 의미가 있다.
초반 확보한 연희2구역(3993억원), 장위9구역(5253억원)은 공공재개발 사업지로, LH와 조합의 요구 조건이 복잡한 구역들이다. DL이앤씨는 공공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기반으로 ‘안정성 중심 제안’으로 수주에 성공했다.
DL이앤씨는 올해 ‘소수지만 굵직한 사업지’라는 전략을 명확히 드러냈다. 중소형 사업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규모가 크거나 ▲사업성이 명확하거나 ▲도심복합·공공재개발처럼 회사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구역에만 선별 진입하는 방식이다.
다만 모든 수주가 서울에만 집중되며 지방 사업 확장은 올해도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 중심 전략은 브랜드·기술 측면에서는 이점이 있지만, 중장기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는 다소 좁아 보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종합하면 DL이앤씨의 2025년은 ▲한남5·증산4라는 초대형 구역 ▲공공·도심복합 영역 진입 ▲소수 정예 전략의 완성이라는 세 가지 구조가 맞물린 해였다.
◇ 2026년, 초대형 구역이 판을 다시 짠다
2025년 정비사업 시장은 강남·한강벨트 같은 최상위 입지를 누가 확보했는지가 승부를 갈랐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양강 구도’를 더욱 공고히 했고, 이는 압구정·개포 등 최상위 사업지에서 조합의 선택을 사실상 독점한 결과였다. 반면 GS건설·대우건설·DL이앤씨는 각자의 강점이 통하는 권역에서 전략적 성과를 만들었다.
2026년은 압구정3·4,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초대형 사업이 본격화되는 만큼 경쟁의 외연이 올해보다 훨씬 넓어질 전망이다. 현대·삼성의 양강 체제가 이어질지, 아니면 다른 대형사들이 판도를 흔들 새 흐름을 만들지는 내년 정비사업 시장의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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