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장수의 비밀

2026.04.06 15:20:27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요즘 환절기라 장례식장을 찾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장례식장에서는 고인의 연세를 묻는 것에서 시작해 돌아가신 사유를 나누며, 서로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얼마 전 한 장례식장에서 “선친께서는 92세까지 사시다 집에서 주무시듯 평온히 돌아가셨다”고 말씀드렸더니, "장수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분이 계셨다.

 

그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어떻게 살아야 오래 그리고 바르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처럼 느껴졌다.

 

 

 

첫째는 걷기였다. 아버지는 75세 무렵 아들에게 농사를 물려주신 뒤, 시내 노인정에 다니셨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왕복 8km 남짓한 길을 걸어서 오가셨다. 항상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갓을 쓰셨으며, 마을버스가 있었음에도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걸음을 고수하셨다.

 

그 꾸준함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삶의 태도였고,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몸의 건강을 지키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대화였다. 노인정에서 또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셨고, 때로는 한턱을 내시며 총무와 회장 역할도 맡으셨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은 마음을 단단하게 하고 삶의 온기를 유지하게 한다. 결국 건강이란 몸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함께 만들어지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셋째는 소식(小食)이었다. 식사는 언제나 적당량을 지키셨고, 농사일 중간에 먹는 중참 외에는 야식이나 과식을 하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 밥상에는 김이 따로 올랐고, 우리는 아버지가 남기신 김을 나중에 먹곤 했다. 지금은 ‘트러플 김’까지 등장할 만큼 흔해졌지만, 그 시절 김은 참으로 귀한 음식이었다. 절제된 식습관은 몸을 가볍게 할 뿐 아니라 삶 전체의 균형을 지키는 힘이 된다.

 

넷째는 외우기였다. 아버지는 무학이셨지만 한자를 독학하셔서 책을 끊임없이 외우고 필기하셨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그 덕분인지 치매 증상 없이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셨고, 이는 평생 이어온 학습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다섯째는 건강기능식품이었다. 자식들과 사위들이 챙겨드린 비타민과 홍삼 등 각종 건강식품을 빠짐없이 드셨고, 작은 가방에 넣어 늘 휴대하셨다. 이러한 모습은 건강도 스스로 관리해야 할 책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어떤 것이든 과유불급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섭취와 균형이 중요하다는 점 역시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나 역시 건강기능식품을 꾸준히 섭취하려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건강의 정석》 기본 편을 간략히 정리하면 ‘아마비와유’이다.

 

아스피린(100mg), 마그네슘·칼슘, 비타민(B·C·D), 오메가3, 유산균을 의미한다. 여기에 우르소데옥시콜산(UDCA)와 홍삼, 타우린은 중급, 아르기닌과 멜라토닌은 고급에 해당한다. 다만 과다 복용은 간과 신장에 부담이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여섯째는 수면이었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주무실 정도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셨다. 바쁜 삶 속에서도 쉬어야 할 때를 아는 지혜, 그것이 오히려 더 오래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었을 것이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시 세우는 재정비의 시간이다.

 

일곱째는 게임이었다. 어느 날 마작을 배우셨다며 나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놀이를 통해 머리를 쓰고 전략을 세우는 과정은 뇌를 활발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삶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태도 역시 장수의 중요한 조건임을 보여준다.

 

여덟째는 성품이었다. 아버지는 화를 잘 내지 않으셨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허, 허, 참”하시며 넘기셨고, 큰 소리를 내시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술은 거의 드시지 않으셨고, 담배는 약 40년간 피우셨지만 70세 이후에는 끊으셨다. 절제된 삶과 온화한 성품은 주변 사람들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주었고, 그것이 곧 삶의 품격으로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아홉째는 필요할 때의 관리였다. 아버지는 분기마다 한 번씩 수액 치료를 받으셨다. 몸의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보완을 하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무조건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자신을 돌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가끔 EBS ‘장수의 비밀’을 보며 아버지의 생활 방식과 닮아 있다는 점에 놀라곤 한다.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오랜 시간 몸에 밴 습관이 결국 삶의 결과를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단일종 식물 가운데 가장 오래 생존해 온 존재로 흔히 은행나무가 거론된다. 나는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관세청을 떠올린다. 수백 년을 버티며 자리를 지키는 은행 나무처럼, 관세청 역시 국민을 지키고 경제를 떠받치는 기관으로서 흔들림 없이 서 있어야 한다.

 

장례식장에서 떠올린 아버지의 장수 비결은 단순한 개인의 건강 습관을 넘어, 조직과 행정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다시 묻게 한다.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한 원리는 결국 공동체를 지탱하는 원리와 다르지 않다. 특히 경제 국경을 책임지는 관세행정에 있어 이러한 통찰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첫째, 걷기는 현장성이다. 행정은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항만과 공항, 특송물류센터와 같은 국경 현장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현장을 직접 보고, 흐름을 읽고, 위험을 체감할 때 정책은 비로소 현실과 맞닿는다.

 

AI와 데이터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현장을 대신할 수는 없다. 현장과 괴리된 행정은 방향을 잃지만, 현장을 딛고 선 행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둘째, 대화는 신뢰다. 관세행정은 법과 규정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기업, 국민, 그리고 유관 기관과의 소통 속에서 완성된다.

 

일방적 통제는 저항을 낳지만, 충분한 설명과 공감은 자발적 준수를 이끈다. 결국 행정의 수준은 강제력의 크기가 아니라 신뢰의 깊이로 평가된다.

 

셋째, 소식(小食)은 균형이다. 과도한 규제는 시장의 활력을 저해하고, 지나친 완화는 질서를 무너뜨린다.

 

관세행정의 본질은 규제와 지원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데 있다. 이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흐름과 위험 요소를 동시에 읽어내는 정교한 판단의 영역이다.

 

넷째, 외우기는 전문성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무역 환경 속에서 전문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특히 AI 기반 행정으로 전환되는 시대에는 데이터 이해력과 정책 해석 능력이 결합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배우고 축적하는 조직만이 새로운 위험을 식별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다섯째, 보완은 시스템이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그러나 지속적인 보완을 통해 더욱 정교한 시스템은 만들어질 수 있다.

 

제도 위에 기술을 얹고, 기술 위에 협력을 더할 때 행정은 비로소 입체적으로 작동한다. 관세행정 역시 AI, 빅데이터, 유관기관 협업을 통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진화시켜야 한다.

 

여섯째, 수면은 지속가능성이다. 조직도 쉼이 필요하다. 과도한 긴장과 반복되는 위기 대응 속에서 균형을 잃으면 판단력도 흐려진다.

 

적절한 재정비와 회복을 통해 조직은 더 큰 위기를 대비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행정은 결국 사람과 조직의 리듬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곱째, 게임은 전략이다. 국제무역 환경은 단순하지 않다. 각국의 정책, 환율, 공급망, 기술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관세행정은 단편적 대응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를 요구받는다.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판단,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하는 유연함이 곧 경쟁력이다.

 

여덟째, 온화함은 품격이다. 원칙을 지키되,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는 행정의 품격을 결정한다. 엄격한 규정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공정하고 일관된 집행에서 비롯된 신뢰다.

 

흔들림 없는 기준 위에 온화한 태도가 더해질 때, 행정은 권위가 아닌 신뢰로 자리 잡는다.

 

이처럼 한 개인의 삶에 담긴 지혜는 그대로 행정의 원리로 확장된다. 꾸준함은 현장을 만들고, 소통은 신뢰를 쌓으며, 절제는 균형을 이루고, 학습은 전문성을 키운다.

 

보완은 시스템을 정교하게 하고, 회복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며, 전략은 미래를 대비하게 하고, 품격은 신뢰를 완성한다.

 

결국 관세행정이 지향해야 할 모습은 분명하다. 단순한 단속기관을 넘어, 보이지 않는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경제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경제국경의 수호자’가 되는 것이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명구 관세청장 tf@tfnews.co.kr



82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회사명 : 주식회사 조세금융신문 사업자 등록번호 : 107-88-12727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로17길 43-1 (신사동 171-57) 제이제이한성B/D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1713 등록일자 : 2011. 07. 25 제호 : 조세금융신문 발행인:김종상 편집인:양학섭 발행일자 : 2014. 04. 20 TEL : 02-783-3636 FAX : 02-3775-4461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