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물품 운반의 기본단위, 컨테이너 경제학

2018.06.23 07:46:08

 

(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해외직구’라는 말은 대중에게 일상화된 지 오래다. 바보 같은 질문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흔한 우리의 일상적 소비행태로 자리한 ‘해외직구’는 왜 하고 있는가?

 

주변 가게에서 물건을 직접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사면 더 빠르고 안전한데, 불명확한 판매자가 판매하는 보지도 않은 물건을 번잡스러운 절차와 수령하기까지 꽤 긴 시간의 인내가 필요한 구매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이다. 많은 해외직구족들은 ‘당연히 싸니까!’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이는 구매자의 합리적 소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은 물건이지만 기업은 마케팅의 극대화를 위해 또는 그들만의 또 다른 목적으로 국가별로 가격 차별화 정책을 도입할 수 있다. 이외에도 무역의 특징인 환율이 개입하여 기업이 동일한 가격을 책정했더라도 자국의 환으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가격이 나올 수 있다.

 

이러한 기업 정책적 이유 또는 환율의 문제 등으로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수입되어 매장에서 판매되는 물품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 판매되는 물건의 가격과 다른 경우가 많다. 이때 물품가격이 싼 경우야 상관없겠지만 반대로 비쌀 때가 문제가 된다.



영특한 한국 소비자들은 잘 발달된 IT 환경을 이용하여 다른 어느 나라가 이 물건을 싸게 파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이를 바로 사들인다. 그야말로 개인 소비의 글로벌화이며 기업들에게는 예전의 멍청한(?) 소비자로 생각하고 기업 활동을 한다면 망신당하기 딱 좋은 시대인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합리적 소비를 ‘소비자가 소비 행위를 할 때 가격과 품질을 고려하여 소비에 따른 기회비용과 만족감을 고려하여 가장 편익이 많은 소비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소비를 가장 현명하게 하는 여러 요소 중 으뜸은 아마도 ‘가격’일 것이다.

 

해외직구의 동력은 컨테이너?
해외직구의 동력인 ‘낮은 가격’은 위에 얘기한 바와 같이 기업의 경영 정책이나 환율 등의 차이에 그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더욱더 이러한 트렌드를 가능하게끔 만들어 준 것이 있다.

 

바로 ‘컨테이너’이다. 도로 위를 달리거나 혹은 종종 집이나 창고, 공장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컨테이너는 인류의 100대 발명품 중의 하나다. 옛날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지게를 지고 배에 물건을 일일이 싣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상해 보라.


모양이 제각각인 물건들을 또한 모양도 제각각인 선박에 사람들이 하나하나 실어 나르는 모습은 가히 대표적인 노동집약의 상징과 같이 보이지 않는가. 과거의 해운산업이라는 것은 이렇듯 항구 노동자 수백 명이 달라붙어 며칠에서 몇 주까지 이르는 기간 동안 내내 화물을 옮겨 싣고 내리는 노동집약적 산업이었다. 더욱이 물건을 운반하는 과정 중에는 짐이 훼손되거나 멸실, 도난되는 사례도 빈번했다.

 

이러한 번거롭고 힘든 선·하적 과정을 매번 겪어야 하는 무역에서는 당연히 고가의 운송비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국제간 교역을 방해하는 이유로 작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공산품을 자급자족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으며, 특산품이나 원자재 정도의 어쩔 수 없는 품목에 대해서만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실정이었다.

 

컨테이너 시초, 군수물자 보급에서
이러한 비효율적인 국제물류에 일대 개혁을 일으킨 사건은 다름 아닌 베트남 전쟁이었다.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원활히 보급하기에는 1960년대 베트남의 항구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이로 인해 미군은 베트남에서 군수품을 하나하나 하역, 정리하고 보급하는데 골머리를 썩었다.


미국의 해운 사업가 말콤맥린1)(Malcom McLean)은 이점을 노렸다. 맥린은 일단 화물을 컨테이너채로 배에서 내리고 육지에 있는 병참기지에서 뒷정리를 하는 방식을 시험해 보도록 제안하며 미군 수뇌부들을 설득했다.

 

1) 맬컴 매클레인(Malcom McLean, 1913년 11월 14일 ~ 2001년 5월 25일)은 미국의 운송사업가. 컨테이너의 보급 확대에 큰 기여를 했으며, 컨테이너리제이션의 아버지로 불린다. 1956년 금속 컨테이너를 개발하여 운송업에 혁신을 일으켰다.(출처:위키백과)


미군은 이러한 컨테이너를 이용한 수송의 편리성을 직접 경험하고 이를 다른 해운사에도 말콤맥린의 시랜드社2)와 같은 규격의 컨테이너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로서 순식간에 미국 전역에 맥린의 표준화된컨테이너가 도입되게 되었다.

 

2) 바다와 육지를 포괄하여 운송한다는 뜻의 이름으로 Sea-Land라고 회사 이름을 명명하였다.

나아가 당시 동아시아의 경제가 때맞춰 부흥하게 된 것도 이 사건과 무관치 않다.
맥린은 베트남에 군수물자를 나르고 되돌아오는 빈 컨테이너를 활용하고자 일본을 경유하여 일본 전자제품을 실어 들어오도록 하였다. 이때 일제 전자제품이 미국으로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일본의 경제가 최대 활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사례와 같이 새로운 표준 규격을 만들어 이를 모두에게 적용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효율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것이어도 기업의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정부이고 국가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저변에 널리 퍼지게 된 컨테이너 박스 덕분에 육상 및 해상 운송비가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다.
 

비규격화된 짐을 배에 싣고 나르던 수많은 항만 노동자에게 지급되던 인건비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고, 규격화된 컨테이너로 선사는 한번 운송할 때 배가 견딜 수 있는 최대의 양을 최적의 조건으로 실어 나를 수 있게 된 결과였다.
 

반면 컨테이너의 도입으로 대형 크레인이 항만 노동자를 대체하게 됨으로 대량 실직사태로 이어지는 비극을 낳기도 했다.
 

해운산업의 효율화는 국제간 빠르고 안전한 물품의 이동, 그리고 값싼 물류비용을 이끌었고 이로써 비즈니스의 글로벌화를 촉진시켰다.
 

글로벌 기업 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유로운 물자와 자본의 이동을 통한 생산의 효율화이다.
각각의 생산과정을 가장 입지 경쟁력 있는 국가와 지역에 배치하고 이들을 빈틈 없는 물적 이동을 통하여 연결함으로써 생산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해운산업의 효율화가 없었다면 ‘글로벌화’는 물론이고 ‘서플라이체인3)’과 같은 기업 경영 시스템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Supply Chain(서플라이체인, 공급망)은 공급업체에서 고객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동시키는 조직, 사람, 활동, 정보 및 자원을 의미한다. 공급망 활동에는 천연자원, 원자재 및 구성 요소가 완제품으로 변형되어 최종 고객에게 전달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스마트폰 한 대에 한국산 반도체, 중국산 디스플레이, 대만산 카메라, 말레이지아산 케이스가 조립되어질 수 있는 것은 각 부품을 최종 조립 생산하는 국가로 운송하는데 드는 비용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실질적으로 현실화하는데 가장 큰 공은 이 컨테이너박스의 발명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듯싶다.


평범하다 못해 유아들이 갖고 노는 네모난 큐브같이 단순해 보이는 철제 박스가 사람들에게 혁신은 그렇게 복잡한 과학적 특징이 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주고 있다.


컨테이너가 물적 자원 교류의 기본 단위가 되면서 조선업은 발전하게 되었고 새로 생겨난 직업과 업종도 무척 많아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기존에 비해 무역의 절대적 양은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고 경제 규모는 이에 따라 함께 커졌다.


인간 삶의 질을 한 단계 상승시켜 준 컨테이너 박스, 한번쯤 고마운 생각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프로필] 고 태 진
•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관세청 공익 관세사

• 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원산지실무사」 교재집필 및 출제위원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졸업

• 서울시립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telekebi@hanmail.net



관련기사






PC버전으로 보기

회사명 : 주식회사 조세금융신문 사업자 등록번호 : 107-88-12727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로17길 43-1 (신사동 171-57) 제이제이한성B/D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1713 등록일자 : 2011. 07. 25 제호 : 조세금융신문 발행인:김종상 편집인:양학섭 발행일자 : 2014. 04. 20 TEL : 02-783-3636 FAX : 02-3775-4461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