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우크라이나-러시아 사태로 본 식량안보의 묘오(妙悟)

2022.05.13 06:32:12

 

 

(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루한시크 주와 도네츠크 주 일대로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광공업(鑛工業) 지대다. 이곳에서 2014년 친러파들이 시위를 일으켰고 돈바스 분리주의 반정부 단체가 만들어졌다. 정부군과 반정부 단체간 내전이 잇따르며 불안정한 지역으로 8년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돈바스 지역에서 벌어지는 친 러시아 분리주의자들과의 싸움을 끝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NATO에의 가입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국가안보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는 급기야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된다.

 

거기에 친러 세력이 러시아군에 합류해 전쟁이 확대되었다. 압도적 군사적 우위의 러시아는 손쉽게 승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으로 초기 예상과 달리 장기화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모양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거리가 있는 지역에서의 전쟁이지만 우리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러시아와 우리의 경제교류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2021년 수출입무역액 기준 미화 273억 달러가 넘는 규모로, 전체 10위에 해당한다.

 

 


이는 곧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함을 뜻하기도 한다. 서방이 주도하는 세계 각국의 러시아 제재로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금속과 곡물 등 다른 원자재 가격도 덩달아 급등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간 생명의 근원인 곡물 생산과 공급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수출 제한 조치에 따른 리스크 확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국토가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만큼 세계의 곡창이라고 부를 정도로 농토가 넓게 분포된 나라들이다. 쌀과 더불어 대표적 주식인 밀의 경우 2021년 기준 세계 밀 생산 순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각각 4위와 7위다. 전 세계 밀 수출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탄산칼슘, 암모니아, 요소 등 비료 원료의 주요 수출국이다. 암모니아는 천연가스와 공기로 만들어지고, 요소는 암모니아와 이산화탄소를 결합해 만드는데, 전쟁으로 핵심 성분인 천연가스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요소수 사태를 떠올리면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침공 국가인 러시아는 자기의 편에 서지 않은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유럽연합 소속 국가, 일본, 뉴질랜드와 한국 등 45개국을 ‘비(非) 우호국’으로 지정하였다. 러시아는 비우호국의 자국 제재에 맞서 밀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내렸다.

 

즉 러시아는 밀, 옥수수, 해바라기씨유, 닭고기 등을 수출할 때에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수출 허가제를 전격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고기, 메밀, 설탕, 소금 등의 수출은 전면 금지했다. 게다가 세계 곡창지대가 위치한 흑해가 봉쇄되고 시베리아 철도가 끊기며 물류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계의 곡창인 우크라이나는 침공의 영향으로 밀 파종 시기인 봄임에도 파종을 포기했다. 옥수수 등 다른 곡물도 마찬가지다. 결국 양국 간 무력 충돌은 세계 곡물 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밀 가격은 평균보다 2.5배, 옥수수 가격은 2배, 이의 여파로 다른 곡물 가격도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의 식량안보지수 ‘최저’ 수준

 

우리나라 상황을 살펴보자. 한국의 곡물 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019년 21%이며, 식량자급률은 2019년 45.8%로 OECD 38개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그것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이 있다. ‘식량안보지수’가 그것이다.

 

전쟁, 인구 증가, 천재적 재난 등을 고려해 국가가 일정량의 식량을 확보하는 지수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은 72.1점으로 OECD 가입국 중 하위권(29위)에 머물렀다. 문제는 최근 4년간 우리나라 식량안보지수 점수와 순위가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 26위(73.2점)에서 2018년 27위(72.5점), 2019년 28위(72.8점), 2020년 29위(72.1점)로 하락세다.

 

특히 세부항목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수입농산물 관세와 식량 안보·접근 정책에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0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라는 상존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충격적이다.

 

식량안보와 접근 정책 평가는 ▲식품안보 전략(food security strategy)의 수립 ▲대국민홍보 등 접근성 제고 ▲식품안보 관련 부서·기관(food security agency)의 존재 등을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일본 농림수산성의 ‘식량정책안보실’과 같은 식량안보 전담 부서가 없고, 일반 국민이 접근 가능한 식량안보 정책이 수립돼 있지 않은 점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즉, 우리나라는 식량문제를 국가의 안보와 주권의 문제로 보고 있지 않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발 ‘식량위기’ 현실로

 

한국의 밀 자급률은 2021년 기준 0.8%, 옥수수 자급률은 0.7%로 1%도 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이다. 즉 99% 이상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그중 우크라이나, 러시아에서의 수입은 19%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전 세계 가뭄과 냉해 등 이상 기후, 끝나지 않은 코로나 19 감염병까지 악재가 겹치며 식량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1년 농사라는 말이 있듯이 작물은 파종부터 1년 동안 보살피며 키워야 그 수확의 결실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세계의 곡창 우크라이나에서 파종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식량 위기가 올해로 끝나지 않음을 얘기하는 것이기에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식량 확보가 안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요인으로 공급망이 흔들리게 되면 한국 농식품 산업은 큰 충격과 함께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곡물 등 가격이 오르면 그 이후에 생산되는 빵과 사료 등 각종의 연관 산업 물가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사람의 생물학적 기본 욕구인 먹을거리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 것이다.

 

상기한 연유로 한국은 국제 곡물의 수급 상황이 예상 범위 밖으로 급격히 변동될 경우 외부적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생명유지는 기본적인 인간의 본능으로 이의 해결 없이는 그밖에 여하한의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문화, 예술은 한낱 사치에 불과해지고 만다.

 

정부는 일본과 같은 ‘식량안보 전담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 식량을 국가의 안보와 주권의 핵심임을 깨달아 전략물자로서 체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곧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새판을 짜야 하는 지금이 적시다. 전쟁의 여파가 우리 실 먹을거리 문화와 생활에 영향을 미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해야 할 때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무역학과 겸임교수
• (현)관세청 공익관세사
• (현)「원산지관리사」및「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전)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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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telekeb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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