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백제 문화의 진수, 목탑과 석탑

2023.05.14 13:47:59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백제는 한강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서 융합문화를 형성했다.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탑으로 초기에 나무를 이용하여 목탑을 세웠고, 후에 석재를 이용하여 석탑을 조각했다.

 

목탑은 재질의 특성상 수명이 짧기 때문에 오래 전에 제작된 건축물은 찾기 어렵다. 목탑의 건축뿐만 아니라 목조건축물의 지붕 비례를 적용하여 석탑을 세웠다. 백제의 석탑은 각 층의 지붕 돌(옥개석)이 몸 돌보다 상대적으로 깊고 넓게 만들어졌다. 백제 석탑은 미륵사지 석탑, 정림사지 오층석탑, 그리고 왕궁리 석탑을 원형으로 하고 있다.

 

백제의 목탑, 호류지오중탑과 능사지 오층탑

 

목탑은 중심 기둥의 심초석을 중심으로 각 층간 비례를 만들어서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백제 목탑의 원형은 높이 35미터의 호류지 오중탑으로 1층 내부 심주(心法)의 둘레에 사천주(四天柱)를 세우고, 그 내부에 수미산을 쌓은 후 소조상(塑造像)을 사면에 장식했다. 부여 정림사지에서도 소조상 파편이 발견되어 초기에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익산 미륵사지는 중앙의 목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석탑을 배치하는 3탑 3금당식의 가람을 구성했다.

 


백제는 신라의 황룡사 구층 목탑과 일본 최초의 아스카지 목탑, 시텐노지 목탑, 호류지 목탑을 세웠다. 신라 자장율사가 선덕여왕에게 황룡사에 목탑의 조성을 건의하면서 장인인 ‘아비지’의 파견을 요청했다. 의자왕은 신라에서 보낸 예물의 수용과 건축가의 파견요청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643년). 아비지가 신라에 파견되었고, 짧은 시간에 황룡사 구층목탑을 건립했다(삼국유사).

 

목탑 1층 내부는 부처의 일생을 담은 소조상이나 팔상도를 배치한다. 소조상이나 팔상도는 동면에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문답 장면, 서면에 부처가 사리를 나누는 모습, 남면에 미륵보살의 설법 장면, 그리고 북면에 부처의 열반 장면 등을 담는다. 가장 오래된 목탑인 일본 호류지 오중탑은 소조상을 배치하고 있으며,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에 팔상도가 걸려 있다.

 

 

백제문화재현단지에 복원된 능사 오층탑은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호류지 오중탑을 참조했다. 재질의 특성상 오래된 목탑은 남아 있지 않으며 조선 후기에 건축된 법주사 팔상전, 쌍봉사 대웅전이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금산사 미륵전, 봉암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무량사 미륵전과 봉암사 미륵전 등이 목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동국산업이 경주 보문단지에 철골로 황룡사 구층목탑을 재현하였다(2016년).

 

 

백제의 석탑,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미륵사지 석탑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지대석의 넓이가 14척(고려척)에 높이 8.33미터로 층계 간 체감 비례와 옥개석과 탑신에 황금비례를 적용했다. 목탑처럼 몸 돌보다 지붕 돌의 폭을 넓게 하여 목조 건물처럼 늘씬해 보이도록 했다. 오층석탑은 1층 탑신에 대당평제국비명(大唐平濟國碑銘)의 글자로 대당평제탑 혹은 평제탑으로 불렸다.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 7일 동안 밤낮으로 불타서 사라지는 동안에도 소정방의 공적을 알리는 글을 적었기 때문에 온전할 수 있었다.

 

 

미륵사지 석탑은 여러 개의 석재를 목조건물처럼 끼워서 맞춘 목조건축 양식이다. 동탑은 완전히 무너졌다가 기존 노반석과 지붕 돌, 서탑의 비례를 바탕으로 복원했다(1992년). 서탑은 중앙부에 십자(十)형 통로를 만들었고, 2층부터 탑신과 옥개석으로 누각식(樓閣式) 목탑을 재현했다. 일제 강점기에 6층까지 시멘트로 보수했고(1915년), 그 후에 다시 해체하여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보수했다(2019년).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은 백제시대 또는 그 이후의 건축양식으로 8각의 기단에 주춧돌과 판석을 맞물려서 목조탑을 재현했다. 미륵사지석탑의 사리호와 왕궁리탑의 금제사리함의 양식이 동일한 양식으로 무왕 때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왕궁리석탑의 계열로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無量寺 五層石塔)은 층마다 각 면의 모서리와 기둥을 세워서 왕궁리 오층석탑과 유사하게 만들었다.

 

 

고려시대에 옛백제 땅에 백제 양식의 건축물과 탑이 다시 등장했다. 백제석탑처럼 마감하는 석재의 각과 기단부를 낮추어서 지붕을 더 길게 하면서 처마를 약간 들리게 제작했다. 옥개석의 받침부는 별석으로 분리하여 목조 가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백제는 목탑과 석탑을 동시에 제작하여 두 가지 유형의 문화유산을 남기고 있다. 그렇지만, 백제의 목탑기법을 전수받은 일본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목탑 양식만 제작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목탑을 남기고 있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전)동부증권 자산관리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전)(주)선우 결혼문화연구소장
•덕수상고, 경희대 경영학사 및 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리버풀대 MBA, 경희대 의과학박사수료,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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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동 신구대 교수 eservi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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