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부 안 씨ㅡ이철
잡부 안 씨가 웃고 있다
몸 따로 말 따로인 그가
밥 반 술 반으로
삼십 년을 사는 동안
오늘은 강변 이 편한 세상에서
깔세로 남았다
십장은 집으로 전화해도
아무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시멘트 가루로 화장한
비닐 지갑 속
유서처럼 가족사진이 한 장
처음 웃는 듯
비로소 웃는 듯
아내의 어깨를 짚으며
편안한
잡부 안 씨(安氏)가 죽었다
[詩 감상] 양현근 시인
비로소 완성된 마지막 웃음, 안 씨라는 이름의 풍경
이철 시집, 『단풍 콩잎 가족』을 읽다가, 「잡부 안씨」에서 쿵하고 가슴이 무너집니다. 어둑한 생의 한 편에서 끄집어 낸 기억이 시가 된다는 것은 그 만큼 울림이 깊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철의 시에서 잡부 안 씨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짊어지고 간 세월의 축소판입니다. 몸 따로 말 따로인 채로 삼십 년을 밥 반 술 반으로 버텨왔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가 감당해 온 고단한 노동의 궤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가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장소를 ‘강변이편한세상’이라 명명합니다. 이는 그가 평생 짓고 쌓아 올렸으나 정작 자신은 머물지 못했던 화려한 아파트의 이름입니다. 세상은 이 편한 세상이라 부르지만, 그에게 그곳은 삶의 끝자락에서 임시로 머물다 사라지는 깔세 같은 공간이었을 뿐입니다. 십장의 전화조차 받지 않는 고요는 그가 이 거대한 도시의 틈새에서 얼마나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는지를 아프게 증명합니다.
시멘트 가루로 화장한 비닐 지갑 속 가족사진은 이 시의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장치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발견된 유서 같은 그 사진 속에서, 그는 평생 처음으로 비로소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아내의 어깨를 짚은 손끝에는 그가 평생 놓지 못했던 가족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시멘트 가루는 그에게 씌워진 마지막 수의였지만, 정작 그 가루 아래에서 그는 평생의 노동을 내려놓고 비로소 편안해진 표정을 짓습니다.
마지막 행, “잡부 안 씨(安氏)가 죽었다”는 선언은 건조하지만 묵직합니다. ‘안(安)’이라는 성씨는 평안을 뜻하지만, 그의 생은 평안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 이름 속에 담긴 염원과 현실의 간극이 이 시의 가장 깊은 아이러니입니다. 결국 그는 죽음 이후에야 ‘안’이라는 이름에 가까워졌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잡부 안 씨」는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이름 없이 사라지는 수많은 ‘안 씨’들의 생을 다시 불러 세우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웃음이 늦게라도 기억되기를 바라는, 조용하지만 깊은 애도의 기록입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