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최주현 기자) 이란 전쟁을 둘러싼 레오 14세 교황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바티칸의 도덕적 권위와 워싱턴의 정치·군사적 힘이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수십 년 만에 교황과 미국 대통령 사이의 가장 날 선 대립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11일(현지시간) 연합뉴스는 미국 매체 악시오스의 보도를 인용, 이란 전쟁을 기점으로 레오 14세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균열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레오 14세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 문명을 소멸시키겠다고 위협한 것에 대해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유례없는 수위로 비판했다.
레오 14세는 그러면서 "민간 인프라 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며,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증오와 파괴의 징표"라며 외교를 통한 평화를 촉구했다.
최초의 미국인 교황인 레오 13세는 그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직설적 비판에 신중했으나 이란과의 전쟁을 계기로 점점 태도가 강경해지고 있다. '현대판 십자군'으로 볼 수 있는 이란 전쟁을 계기로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10일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며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과거에 칼을 들었고 오늘날에는 폭탄을 떨어뜨리는 이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레오 14세는 11일 저녁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특별 기도회에서 "전능에 대한 망상"이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아와 돈에 대한 우상숭배는 이제 그만! 권력 과시는 이제 그만! 전쟁은 이제 그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내 가톨릭 지도자들도 교황의 입장에 힘을 싣고 있다.
블레이즈 수피치 추기경(시카고 교구)은 "실제 죽음과 고통이 따르는 전쟁을 마치 비디오 게임처럼 다루는 것은 구역질 나는 일"이라고 일갈했고, 로버트 맥엘로이 추기경(워싱턴 교구)은 이번 전쟁이 가톨릭 교리의 '정의로운 전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이번 전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성전"으로 표현하는 등 종교적 수사를 동원하고 있지만, 가톨릭 지도자들은 민간인 보호를 강조하며 전쟁의 도덕성을 묻고 있다.
미국 가톨릭 지도부는 전쟁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에 대해서도 "국가를 분열시킨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백악관은 갈등 기류를 일축했다.
애나 켈리 백악관 부대변인은 악시오스에 보낸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외교 정책은 세상을 더 안전하고 번영하게 만들었다"며 "2024년 대선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으며 바티칸과도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지표는 백악관의 설명과는 결을 달리한다고 악시오스는 지적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백인 가톨릭계의 트럼프 정책 지지율은 46%로 전년 51%보다 5%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미국 내 급성장 중인 히스패닉 가톨릭계의 지지율은 18%에 그쳤다.
지난 3월 NBC 뉴스 여론조사에서 대중의 레오 14세의 호감도는 +34를 기록해 트럼프 대통령(-12)을 크게 앞질렀다.
이번 갈등은 지난 1월 미국 국방부와 당시 교황청 주미 대사였던 크리스토프 피에르 추기경 간 회동을 둘러싼 논란과도 맞물려 있다.
당시 일부 매체는 미국 국방부가 바티칸에 향후 군사 행동 지지를 압박했다고 전했지만, 국방부는 왜곡 보도라고 반박한 바 있다.
앤드루 체스넛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교수는 "가톨릭계의 저항이 트럼프 행정부에 상당한 도덕적 압박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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