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삼성물산의 2025년 실적표에는 숫자만큼이나 뚜렷한 흐름이 있다. ‘속도 조절’이다. 영업이익은 늘었지만 건설 매출이 크게 줄었고, 2026년 수주 목표도 7.7조원으로 낮춰 잡았다. 4분기 실적이 개선됐음에도 회사는 이를 구조적 회복으로 단정하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특히 2026년 건설부문 수주 목표를 낮춘 점은 전략 변화의 신호로 읽힌다. 이번 실적은 숫자보다 삼성물산의 선택이 더 분명히 드러난 성적표라는 평가가 나온다.
◇ 전사 이익은 늘었지만, 구조는 달랐다
삼성물산은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40조7420억원, 영업이익 3조293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조3610억원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3100억원 증가했다. 표면적으로는 수익성 개선이 두드러진 실적이다.
하지만 실적의 내용을 뜯어보면 전사 이익 개선의 중심은 건설이 아니었다. 상사·바이오 부문이 실적 방어 역할을 하며 전체 수익성을 떠받쳤다. 특히 바이오 부문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가동률 상승과 환율 효과가 맞물리며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반면 건설부문은 전사 실적에서 명확한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건설 매출 감소 폭만 4조원을 넘으며 전체 매출 감소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사 실적이 유지된 것은 포트폴리오 효과 덕분이었다.
이 구조는 이번 실적이 ‘건설 회복’이 아니라 다각화 전략의 방어력 시험에 가까웠음을 보여준다. 숫자는 반등처럼 보이지만, 본업의 회복과는 결이 다르다.
이 지점에서 삼성물산의 실적은 성적표이자 경영 전략 보고서처럼 읽힌다.
◇ 건설 매출 4조 감소, 숫자 뒤에 숨은 공백
건설부문 매출은 2024년 18조6550억원에서 2025년 14조1480억원으로 급감했다. 단순한 실적 부진으로 보기엔 감소 폭이 크다.
이 감소는 수주 부진보다는 매출 인식 구조 변화의 영향이 컸다. 삼성물산은 최근 몇 년간 하이테크·대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매출을 확대해 왔는데, 이들 프로젝트가 2024년까지 집중 준공되며 2025년에는 자연스러운 공백 구간이 발생했다.
실제로 2025년 건설 수주 자체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신규 수주 물량의 매출 인식 시점이 뒤로 밀리면서 실적 공백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는 건설업 특유의 시차 구조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회사 내부에서도 이 구간을 구조적 하락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연간 기준으로 건설 실적이 크게 나빠졌다는 인식은 공유되고 있다.
관건은 이 공백 이후의 회복 속도다. 신규 프로젝트 매출 인식이 2026년 상반기 이후로 밀릴 경우, 실적 회복은 한 분기 이상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4분기 반등, 회사도 말을 아낀 이유
2025년 4분기 건설 실적은 분명 개선됐다. 매출은 전 분기 대비 9540억원 늘었고, 영업이익도 소폭 증가했다. 해외 플랜트와 하이테크 프로젝트 준공 효과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이 반등을 구조적 회복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회사 측은 “4분기 실적 개선은 준공 매출 반영에 따른 효과”라며 “이 흐름이 2026년까지 이어질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 같은 신중한 태도는 이례적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분기 반등을 회복 신호로 해석하는 것과 달리, 삼성물산은 말을 아꼈다. 이는 실적 가시성에 대한 내부 판단이 아직 높지 않다는 의미로 읽힌다.
특히 하이테크·플랜트 프로젝트는 매출 변동성이 크고, 수주와 매출 인식 사이의 시차가 길다. 단일 분기 개선으로 흐름을 단정하기 어려운 구조다.
시장에서는 삼성물산의 이런 태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건설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무리한 외형 확대보다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전략이 장기적으로는 수익성 안정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다만 매출 인식이 지연될 경우 단기 실적 공백이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 수주 목표 7.7조, 보수 전략의 신호
삼성물산의 2026년 수주 전략은 이번 실적의 해석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회사는 건설부문 시공 수주 목표를 7.7조원으로 설정했다. 최근 수년간과 비교하면 확연히 보수적인 수치다.
이 목표는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라 전략 전환의 신호다. 삼성물산은 물량 확대보다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
실제로 회사는 성수·여의도·목동 등 사업성과 입지가 검증된 핵심 지역 중심의 선별 수주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공격적 경쟁보다는 실패 확률이 낮은 프로젝트를 고르는 방식이다.
이는 최근 건설업계 전반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공사비 상승과 원가 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에서 무리한 외형 성장은 오히려 실적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삼성물산의 보수 전략은 위축이 아니라 위험 관리에 기반한 속도 조절에 가깝다.
삼성물산은 2026년 매출 44조5000억원을 전망하고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톤은 전반적으로 신중하다. 사업 전략 역시 하이테크·플랜트·바이오 등 고부가 분야 중심의 선별 성장에 맞춰져 있다.
이는 2026년을 확장 국면이 아닌 안정화 국면으로 설정하고, 건설 부문 변동성보다 포트폴리오 균형을 우선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건설 부문은 수주보다 매출 인식이 더 중요한 시점에 들어섰다. 수주가 실적으로 전환되는 시점이 곧 방향성을 결정한다.
시장에서는 삼성물산의 2026년을 ‘회복의 해’라기보다 ‘관리의 해’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상반기 실적 흐름이 하반기 전략을 가를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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