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국내 제과업체 오리온의 러시아 법인(Orion International Euro LLC)이 수입 원재료에 대한 ‘로열티 관세’ 부과 문제로 현지 세관과 수년째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 분쟁은 2023년 러시아 비보르크 세관이 오리온에 135,515,364루블(약 24억원)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심부터 상고심까지 네 차례의 재판을 거치며 판결이 번복됐고, 현재 다섯 번째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리온 내부의 구체적인 로열티 요율(기술 2%, 상표 0.5%), 은행 기록상 실제 지급액, 공급망 계약(OIE/KR-2022), 지배구조 등의 정보가 일부 공개되기도 했다.
◆ 러-우 전쟁 이후 바뀐 공급망…세관, ‘로열티 가산’ 통보
오리온 러시아는 2020년부터 2022년 11월까지 Cargill, AAK, Olam, Fonterra, Weishardt, Fazer 등 여러 공급사로부터 원재료를 수입해 현지 공장에서 초코파이 등 과자 완제품을 생산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부 서방 공급사가 러시아로의 직접 공급을 중단하자 오리온 러시아는 본사와의 계약(OIE/KR-2022)을 통해 젤라틴, 코코아 파우더, 특수 첨가물 등 3개 품목을 한국 본사를 통해 조달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세관은 이 계약을 근거로 “현지 러시아 법인이 임의로 공급처를 선택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보고, 오리온 러시아가 본사와 맺은 라이선스 계약상의 로열티 비용을 수입 원가에 추가해야 한다고 문제 삼았다. 세관은 공급처가 오리온 본사의 통제를 받는 구조라면 현지 법인이 원재료 값을 스스로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 거래가격이 낮게 신고됐다고 본 것이다.
2023년 4월 비보르크 세관은 2020~2022년 기간의 총 286건에 이르는 모든 수입신고 가격을 일괄 정정하고, 로열티 가산을 통해 관세 과세가격을 상향 조정했다. 그 결과 부과된 추가 관세액은 본세 118,620,021루블(약 21억원)과 가산세 16,895,342루블(약 3억원) 등 총 135,515,364루블(약 24억 원)에 달했다.
오리온 러시아 법인은 이러한 세관 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주 중재법원에 제기했다.
◆ 판결 번복 거듭…5번째 재판 예정
1심 법원은 오리온 러시아 측 청구를 전부 인용해 문제가 된 286건의 세관 처분을 모두 취소했다. 그러나 2024년 6월 3일 제13중재항소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항소심은 “오리온이 젤라틴·카카오 파우더 등 일부 품목을 본사 경유로만 조달하면서 사실상 ‘자유로운 공급처 선택’이 제한됐다”고 봤다. 나아가 수입 원재료는 본사 기술로 제조되는 완제품의 ‘구성요소’이므로 관련 로열티가 수입과 연동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를 근거로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오리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오리온 측은 상고했고, 2024년 10월 러시아 연방 북서부 순회 중재법원(3심에 해당)이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다. 상고심 재판부는 “수입분과 내수분을 구분·안분해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1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즉, 로열티 관세 부과는 가능하되 ‘수입과 직접 관련된 몫’만 포함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환송 후 열린 재심 1심은 2025년 8월 15일에 선고됐다. 이번에는 오리온이 일부 승소했다. 재판부는 비보르크 세관이 부과한 추가 관세 총액 135,515,364루블 가운데 103,452,178루블(약 18억 원)은 환급하도록 명령했다. 반면 남은 약 32,063,186루블(약 6억 원)은 수입과 직접 관련된 로열티로 보아 과세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오리온과 세관 양측 모두 이러한 결과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오는 11월 19일 제13항소법원에서 다섯 번째 재판이 열린다.
◆ 기술사용료 2%, 상표사용료 0.5%…판결로 드러난 계약 구조
법원 판결문에는 오리온 러시아 법인의 로열티 계약 구조도 상세히 담겼다. 오리온 러시아는 한국 본사와 두 종류의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다.
먼저 제조 기술 라이선스 사용료는 당초 매출의 1.5%였으나 2022년 1월 1일부로 2%로 소급 인상됐다. 상표 라이선스 사용료는 원래 월매출의 1%였지만 2019년 4월 5일 합의를 통해 0.5%로 인하됐고, 그 권리자도 오리온에서 지주사인 오리온홀딩스로 변경됐다.
이 로열티 수수료는 분기별 매출액에 연동돼 미화 달러로 정산·송금된다. 러시아 라이파이젠은행의 외환관리 대장에는 이러한 상표 로열티 지급액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브랜드별 로열티 적용 구분도 쟁점이었다. 예컨대 ‘초코보이 사파리(Chocoboy Safari)’는 오리온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브랜드·레시피 제품이어서 기술 로열티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고, 실제로 추가 과세 대상에서도 빠졌다. 이 제품의 경우 상표권 사용료(0.5%)만 지급하고 별도의 제조 기술료는 부담하지 않는다. 반면 초코파이, 초코칩쿠키 등 본사의 기술과 상표를 사용하는 제품 매출에는 기술 사용료 2%와 상표 사용료 0.5%가 각각 적용된다.
이번 판결문을 통해 오리온 러시아 법인의 지배구조도 확인됐다. 오리온 러시아의 지분 구성은 오리온(한국 본사) 73.27%, PAN 오리온(홍콩) 26.73%로 밝혀졌다.
◆ 세관의 과도한 계산…'5천 루블→4644만 루블' 9128배 오류도
이번 사건에서 주목된 부분은 러시아 세관의 극단적인 과세 산정 오류다. 환송심 판결문에 따르면 비보르크 세관은 한 분기의 전체 로열티 금액을 특정 수입신고 한 건에 통째로 가산하는 방식으로 과세가격을 계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스타드 케이크’다. 이 제품의 실제 판매액은 1,017,511루블로, 여기에 상표 로열티율 0.5%를 적용하면 약 5,000루블(약 9만 원)의 사용료면 충분했다. 그러나 세관은 이 품목 하나에 46,441,304루블(약 8억 원)을 추가 과세했다. 약 5천 루블에 불과한 사용료가 약 4,644만 루블의 세금으로 둔갑한 셈이다.
비슷한 오류는 다른 수입 과자 두 건에서도 반복됐다. 세관은 이들에 대해서도 총 18,657,344루블(약 3억 원)을 추가로 매겼지만, 실제 정당한 로열티 금액은 합계 1,035루블(약 2만 원)에 불과했다. 한 분기의 전체 로열티를 한두 개 품목에 몰아넣은 탓에 해당 수입신고 품목들의 신고가격이 많게는 64배까지 폭등하는 왜곡이 발생했다. 법원은 이를 “비논리적 산출에 따른 과세의 위법”이라고 지적하며 과다 부과된 금액 상당 부분을 환급 대상으로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환급액만 놓고 보면 사실상 오리온이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32,063,186루블(약 6억 원)이 쟁점으로 남아 있다. 법원은 이 금액을 ‘수입 원료와 직접 연관된 로열티’로 판단했지만 오리온 측은 이에 대한 과세도 전면 취소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달 19일 열릴 5번째 재판에서는 ‘수입과 직접 관련된 로열티’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가 최종 쟁점이 될 전망이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