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오는 8월 1일 미국의 관세 부과 유예 시한이 4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미 관세 협상이 막바지 셈법에 들어갔다.
우리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호를 차용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수십조 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 구상을 미국에 제안하며 관세 폭탄을 막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동시에 1000억 달러(약 138조원)이상의 대미 투자 제안까지 테이블에 오르면서, 미국의 강력한 농축산물 시장 개방 압박에 대한 '농업 희생론'이 국회 안팎에서도 격론화되고 있다.
'MAGA' 넘어 'MASGA'로…K-조선, 美 재건의 '열쇠' 되나
28일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뉴욕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의 자택에서 진행된 협상에서 'MASGA 프로젝트'를 핵심으로 한 한미 조선 산업 협력 구상을 직접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 정치 구호에 '조선업'을 더한 이 프로젝트는 한국 민간 조선사들의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와 이를 뒷받침할 한국 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공적 금융 기관들의 금융 지원을 포괄하는 패키지로 구성됐다.
쇠락한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해 한국 조선사들의 대규모 현지 투자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에 착안, 이를 정부 주도의 공적 금융 지원으로 체계적으로 뒷받침해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건조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진 한국 조선업은 자국 내 조선 산업 재건을 간절히 원하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만의 강력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김정관 장관의 제안에 러트닉 미 상무 장관도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협상 진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138조원 대미 투자 제안…日·EU와 비교, '규모' 간극은?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수백억 달러, 한화로 수십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투자 의향을 바탕으로 '1000억 달러(약 138조원)+α' 규모의 대미 직접 투자를 제안했다는 것.
이는 미국이 일본, 유럽연합(EU)과 맺은 합의를 고려한 전략이다. 앞서 일본은 지분 투자, 대출, 보증을 합쳐 총 5500억 달러 규모(한화 약 760조원)의 대형 투자 패키지를 약속해 상호 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각각 15%로 내리는 데 성공했으며, EU도 6000억 달러 규모(한화 약 830조7천억원) 투자 약속을 바탕으로 미국과 무역 합의를 이뤄냈다.
하지만 일본의 5500억달러 투자가 직접 투자보다는 대출 및 대출 보증의 비중이 높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제안한 1000억 달러 이상 대미 직접 투자의 성격과 대비된다. 경제 규모가 EU나 일본보다 작은 한국으로서는 이들 국가와 유사한 규모의 투자 약속을 하는 데 따르는 부담이 큰 것이 현실이다.
막대한 재원 조달과 투자 실패 시 국내 기업에 미칠 경제적 부담 또한 정부가 신중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농업 희생론' 격화…국회 농해수위 "국민 먹거리 제물 삼지 말라" 강력 반발
정부가 또한 디지털 환경 규제, 자동차 환경 규제 등 미국이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하는 분야에서 일정한 양보를 시사하고 있지만, 이번 협상의 가장 큰 '뇌관'은 단연 농축산물 시장 개방이다.
대통령실이 지난 25일 한미 관세 협상 안에 농산물이 포함되어 있다고 공식화하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즉각적인 유감을 표하며 '농업 희생론'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농해수위 위원들은 지난 26일 공동 성명서를 통해 "쌀을 포함한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 검역 완화, 수입 규제 축소 등 국민 먹거리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가 협상의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식량과 검역 주권은 일시적인 외교 성과나 수출 확대의 수단으로 거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지난 30여년간 국제통상 협상의 부담을 홀로 감내해 온 농업·농촌의 상처와 피해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실제로 쌀 시장 개방과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검역 폐지 등이 협상 카드로 오르내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에도 "우리의 훌륭한 소고기를 거부한 나라들에 경고한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민의힘 농해수위 간사인 정희용 의원도 한미 관세 협상에 따른 농축산업 피해 방지 결의안을 대표 발의하며, "농축산물 시장 개방은 단순한 무역 이슈가 아니라 식량 안보와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정부의 신중한 결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농업 희생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만큼, 정부가 농축산물 시장 개방 압박에 어떻게 대응하며 국익을 수호할지 주목된다.
'K-조선 카드' 성공 가능성과 넘어야 할 경제적 산
'K-조선 카드'가 순조롭게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경제적 셈법이 교차한다. 미국의 조선업 부활 니즈와 정책적 지원, 그리고 한국 조선업의 압도적인 기술력과 생산성은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한미 간 경제 안보 동맹을 강화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부여될 수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분명하다. 조선업 협력이 미국의 강력한 농축산물 시장 개방 요구를 완전히 상쇄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며, 이는 국내 농업 분야의 구조적 변화와 충격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미국 내 투자 및 기술 이전에 따른 핵심 기술 유출 우려와 한국 조선업이 미국의 하청 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우리 기업의 경영권 보호 및 독자적인 기술력 유지를 위한 철저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며, 이는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협상 시한의 압박과 최종 합의의 불확실성 또한 큰 과제이다.
정부는 'MASGA 프로젝트'를 '막판 조커'로 활용해 최대한의 국익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단순한 '타협의 도구'가 아닌, 한국 조선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동시에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는 전략적인 '카드'가 되도록 신중한 접근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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