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금융감독원이 전임 원장의 업무추진비 세부 내역 공개를 둘러싼 법적 공방에서 사실상 물러섰다. 항소심 패소 이후 상고를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그간 유지돼 온 ‘비공개 관행’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감원이 ‘이복현 전 금감원장 업무추진비 세부 내역 공개’ 소송을 지휘하는 법무부 측에 상고 포기 의견을 전달했다. 상고를 진행하지 않으면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고 금감원은 전임 원장의 업무추진비 사용 일시, 집행처, 주소, 인원, 금액 등 세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금감원의 이번 판단은 단순한 소송 대응을 넘어, 금감원의 정보공개 기준 자체를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 금감원은 업무추진비를 연 1회 공시하면서도 간담회와 업무협의, 경조사비 등 항목별 건수와 총액만 공개해왔다. 구체적인 사용처나 집행 방식은 외부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반면 상위 기관인 금융위원회의 경우 매 분기 위원장과 부위원장, 고위 공무원의 업무추진비 집행 일시, 장소, 목적, 금액 등을 공개하고 있어 두 기관 간 공개 수준 격차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판결 확정은 이 같은 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제도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 공개 원칙에 무게 실은 법원
앞서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에서 정보공개 필요성을 명확히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금감원의 항소를 기각하며, 고위 공직자의 업무추진비는 공공성에 비춰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맞서 금감원은 소송 과정에서 세부 내역 공개 시 감독 현안이 노출되거나, 특정 업소에 집회 및 시위 등 영업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만으로 비공개 필요성이 인정되긴 어렵다고 봤다. 이미 집행이 종료된 비용이라는 점에서 업무 수행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판결이 확정되면 공개 대상은 이 전 원장 재임 기간인 2022년 6월부터 2024년 4월까지의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 전반이다. 단순 금액이 아닌 집행 맥락까지 드러나는 만큼 향후 외부 평가와 감시 강도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내부 기준 변화 신호탄…투명성 확대 압력
이번 결정은 이찬진 현 금감원장의 방침과도 맞물린다. 이 원장은 앞서 “소송 결과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 제 개인적인 것들은 다 공개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업무추진비 투명성 확대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실제 금감원은 이달 말 현 원장의 업무추진비 세부 내역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판단은 단순 전임 원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금감원 전체의 정보공개 기준을 끌어올리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외부 통제와 신뢰 확보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감독당국 스스로의 투명성 확보가 정책 신뢰와 직결된다는 점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은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업무추진비 공개 수준이 낮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며 “이번 판결 확정은 내부 기준을 바꾸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세부 내역 공개가 실제로 어떤 범위와 방식으로 이뤄질지에 따라 후폭풍의 크기는 달라질 전망이다. 집행처와 참석 인원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경우, 감독당국의 업무 방식이나 대외 접촉 구조가 예상보다 더 투명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