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3 (화)

  • 맑음동두천 4.0℃
  • 맑음강릉 8.5℃
  • 맑음서울 5.1℃
  • 구름조금대전 6.3℃
  • 맑음대구 8.0℃
  • 맑음울산 8.8℃
  • 맑음광주 6.8℃
  • 구름조금부산 8.5℃
  • 맑음고창 4.9℃
  • 구름많음제주 8.7℃
  • 맑음강화 2.4℃
  • 맑음보은 4.4℃
  • 맑음금산 5.4℃
  • 구름조금강진군 7.2℃
  • 맑음경주시 7.7℃
  • 맑음거제 5.7℃
기상청 제공

사회

어느 여름날의 스케치

염천의 개 혓바닥처럼 축 늘어진 앞집 옥상의 빨래가 갑자기 무녀(舞女)의 치맛자락처럼 펄럭이기 시작한다. 찌는 듯 하던 여름밤의 무더위가 슬그머니 뒷 문을 박차고 꽁무니를 뺀다.

혁명군인 양 치달아온 바람이 고요 한 누리에 파문을 일군다. 뜨락의 나무들은 바람의 위세에 눌려 저마다 아부의 깃발을 흔든다. 키다리 백목련은 무당춤을 추어대고, 분기(分器)에 발을 담근 대나무는 나긋나긋 승무(僧舞)를 춘다.

수줍음을 타던 백합은 사근사근 어깨춤을 추어대고, 대추나무·은행나무·모과나무·사 과나무·감나무·백일홍은 디스코를 춘다. 어느덧 우리 집의 손바 닥만한 뜨락은 무도장(舞道場)이 되고 만다. 바람이 한눈을 팔 면 몸놀림이 느슨해지다가 바람이 다시 눈을 부릅뜨면 어느새 춤동작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바람에 놀아나는 나무들의 작태다.

우스개 같은 어느 직장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탁구를 좋아하는 실권자가 부임을 했더란다. 그러자, 틈만 나면 직원들은 탁구 장으로 몰려들었다. 얼마의 세월이 흐르자 그 실권자는 테니스 코트를 드나들었다.

또, 세월이 흐른 뒤 새로운 실권자가 부임했 고, 그 새로운 실권자는 축구를 즐기는 분이었다. 직원들은 탁구나 테니스는 외면하고 축구장을 찾기에 바빴다. 월급이 적다는 불평은 접어둔 채 그 박봉을 털어 유니폼을 맞추어 입고 뻔질나게 운동장을 찾았다. 자리가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실권자의 기호에 따라 몰려다녔다.

마침내는 퇴근시간을 앞당기면서까지 축구장을 찾는 게 예사롭게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오래지 않아 그 회사는 문을 닫게 되었다. 바람에 놀아난 나무와 무엇이 다르랴.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쏟아지는 속도가 금세 중중머리를 건너뛰어 휘몰이쯤에 이른다.

바 람의 눈치를 살피며 춤을 추던 나무들이 이번에는 관현악을 연 주하기 시작한다. 나뭇잎의 넓고 좁음, 두껍고 얇음에 따라 빗방울 부딪는 음향이 실로 다르다. 뿐만 아니라 내리는 속도나 빗 방울의 크기에 따라 음색도 달라진다. 어둠을 뚫고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지붕에도, 장독에도, 돌멩이에도, 인도블록에도 비가 내린다. 빗방울은 그 자신이 부딪치는 대상에 따라 다른 음색을 낸다.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에 따라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연주되듯이. 다양한 소리들이 어울려 대자연의 합주를 이룬다. 오선지에 기록 조차 할 수 없으니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생음악인 셈이다. 지금 우리 집 뜨락에서는 빗방울이 연주하는 경음악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빗방울의 연주솜씨가 새삼 놀랍다. 시침(時針)이 자정의 고개를 엉금엉금 기어오르고 있는데도 비는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수구로 빠지는 마당가의 물줄기가 도랑이 되어 흐른다. 우르릉 쾅쾅! 천둥과 번개가 고즈넉 하던 밤의 적막을 깨트린다. 빗방울의 연주가 절정에 다다른 모양이다. 순간, 오싹하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누에의 뽕잎 갉아먹 는 소리 같던 빗방울의 연주가 갑자기 총탄(銃彈)이 작렬(炸裂) 하는 전쟁터의 소음으로 엇바뀐 탓일 게다. 해님의 법통을 이어받은 달님마저 그를 따르던 궁녀들인 별 무리를 이끌고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채 기세가 당당하던 비가 다시 성깔을 누그러뜨린다. 더불어 나는 두려움의 사슬에서 풀려난다. 언뜻 시계를 보니 시침은 새벽을향해 질주하고 있다.

비가 멎는다. 비가 멎었다. 배음(背音)인 양 들려오는 간헐적 인 차량의 발자국 소리만 없다면, 산사(山寺)의 적막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나무들의 모습이 한결 더 푸르고 싱싱해 보인다. 목 욕탕에서 갓 나온 열아홉 살 처녀의 자태처럼 풋풋하다. 자르르 윤기가 흐른다.

바람과 빗방울이 철수한 뜨락엔 또다시 평화가 샘물같이 솟아오르고 있다. 흘금흘금 눈치를 살피며 춤을 추지 않아도 되 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음악을 연주하지 않아도 된다. 나무들은 원래의 자유를 되찾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좁은 뜨락의 나무들에게서 나는 힘 있는 자에게 우롱당해 온 민초(民草)들의 슬픈 역사를 읽는다.


김학_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공정의 사닥다리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며칠 전, 새로 전입한 사무관들과 조용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두 가지만을 강조했다. 인사를 잘하라는 것, 그리고 돈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새로 만든 조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사무관이던 시절 같은 과에서 근무하셨던 한 선배 사무관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지만, 공직의 시간을 오래 지날수록 그 말은 점점 더 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날, 나는 그 말씀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했다. 인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는 일이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은 공직자의 판단을 흐리는 유혹과 거리를 두라는 경고였다. 공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항해이기에,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어느 순간 되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했다. 너무 경쟁하듯이 하나의 사다리만 오르려 하지 말고, 각자의 사닥다리를 각자의 속도로 차분히 오르기를 바란다고. 레드오션처럼 한 방향으로 몰려 달리다 보면, 사닥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고 병목현상 속에서 누군가는 추락할 수도 있다. 성과와 평가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