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금융당국이 대우조선 등 대형 회계조작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했던 회계개혁제도들을 후퇴시키는 제도안을 발표했다.
자산 2조원 미만 상장회사는 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을 5년간 유예하고, 감사인 직권 지정 사유도 완화한다.
금융위원회는 11일 이러한 내용의 ‘주요 회계제도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내부회계관리제도는 회사 재무 장부를 조작 또는 오작성을 막기 위해 전사적인 통제 제도를 말한다.
예전에는 재무담당자가 작성하면 그만이었던 재무제표를 업무 관련자들이 붙어 돌다리도 두드리고 나가듯 꼼꼼하게 확인하고 평가한다. 내부에서 회사 자금을 감시하는 눈이 많아진 셈이다.
2022년 1월 발생했던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사건의 경우 내부회계관리제도를 강화했으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이 사건은 회장이 특별히 자금관리를 위해 부른 재무담당자에게 재무회계 관련된 업무와 권한을 밀어주면서 감시의 눈이 줄었고, 이러한 비호하에 재무담당자는 자기돈 쓰듯 회삿돈을 횡령한 사건이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2년 3월 발간한 자본시장포커스 ‘최근 상장사 대규모 횡령 사태와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시사점’에 따르면, 자금집행에 대한 엄격한 검토과정과 횡령배임죄에 대한 실형이 충분히 주어질 것과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잘 갖춘 회사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내부회계관리제도 강화를 제언했다.
일각에선 오스템임플란트 사건에 대해 내부회계관리제도 무용지물이라고 평가했으나, 자본시장연구원은 오스템임플란트가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부실 운영한 것을 문제로 삼아 부실 운영하지 못하도록 강제력과 외부유인을 강화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내부회계관리제도는 회삿돈을 횡령하고 싶은 회사 대표이사나 재무담당자를 대단히 거북하게 만드는 제도이지만, 현 금융당국은 2조원 미만 상장사에 한해 현 정부 동안은 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치를 내렸다. 유예기간은 2029년까지다.
금융위는 유예의 근거로 한국회계학회 연구 결과를 내밀었지만,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뒤집는데 충분한 근거라도 단정지을 요소라고 확언하기는 어렵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그대로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가 도입되지만, 유예요청을 할 경우 2년간 유예할 수 있도록 하고, 연결 내부회계 감사의견 공시기업에 대해서는 별도 내부회계 감사의견 공시의무를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향후 2년간은 금융당국이 지적이 아니라 계도 위주로 감리한다고 밝혔다. 이미 내부회계관리제도 자체는 2018년부터 법개정을 통해 시행 준비를 해왔다.
금융위는 정부 직권 감사인 지정 제도도 완화했다.
2017년 직권 지정 사유를 11개에서 27개로 촘촘히 구성했는데 지정 사유 16개를 폐지·완화했다.
대우조선 회계조작 사건으로 발생한 회계개혁을 물리고, 그 이전 체제로 되돌리겠다는 뜻이다.
재무기준 미달과 투자주의환기종목 지정 사유는 지정 사유에서 폐지되며 단순 경미한 감사 절차 위반은 과태료 등으로 전환된다.
금융위는 오히려 지정 감사인을 징계하는 방안을 만들었다.
감사인들이 회계장부 조작을 하는 건 회사 고위임원들과의 유착 또는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를 끊기 위해 회계위험이 발생한 회사의 경우 정부가 감사인을 직권으로 지정한다.
금융위는 한국거래소 내 중소기업회계지원센터를 분쟁조정기구로 만들고 감사인 권한남용행위 적발 시 정부에 지정취소·관계자 징계를 건의할 수 있도록 했다.
상장사 지정감사 시 산업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감사팀을 구성한 회계법인에 대해 불이익 조치를 부과하기로 했다.
표준감사 시간도 축소할 수 있도록 열어뒀다.
회사가 단가후려치기로 회계감사를 오래 못하도록 할 수 있는데 이걸 막기 위해 표준감사 시간을 두고 적정 시간을 유지하도록 했다. 회사들은 감사비용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외부감사인이 회사 장부를 충분히 살펴보는 것이 거북했던 측면도 있다.
금융위는 한공회 회칙과 행동강령상 표준감사 시간이 강행규범으로 판단될 수 있는 조항을 폐지. 사실상 표준감사 시간을 참고사항으로 넣어 회계개혁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또한 감사인이 감사시간 산출내역 등 세부 사항을 기업과 합의한 후 이 내용을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도록 했다. 즉, 회사의 요구대로 들어주지 않는 감사인이 누군지 금감원이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금융위는 연내 하위 규정 개정을 마무리하고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의 경우 입법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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