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한국 경제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
1997~2007년까지 연평균 5.0%를 기록하던 잠재성장률은 2011년~2017년 연평균 3.3%대로 내려갔다. 2018년 2.9%대로 내려간 이후 코로나19를 거치며 2021년 2.1%, 2022~23년 2.2%, 2024년 2.1%까지 내려갔다.
올초 OECD는 한국의 2025년 잠재성장률을 2.1%로 내다봤지만, 지난 5월 공개된 OECD 전망치는 1.98%로 하락했고, 가장 최근 전망은 1.9%까지 내려갔다. 7월 7일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최신 전망치다.
우울한 숫자지만, 처음 보는 숫자도 아니고, 놀라운 숫자도 아니다.
한국 예산정책처도 2025년도 한국 잠재성장률을 1.9%로 전망했다. 지난 3월 31일 발간한 ‘2025년 NABO 경제전망’ 자료를 통해서다. 작년 10월 2.1% 전망에서 무려 0.2%p 내렸다.

표면적 요인은 실적 하락
2024년 실질 GDP 실적치가 전망치(2.4%)보다 0.4%p 낮은 2.0%로 마감했고, 2025년 1분기 실질 GDP 실적치도 전망치(2.2%)보다 월등히 낮은 1.5%를 기록했다.
여기엔 일시적 요인과 구조적 요인 두 가지가 모두 영향을 미쳤다. 일시적 요인에는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경제 회복세 둔화와 미국이 자국 성장을 위해 무역전쟁을 시작하면서 수출이 많은 한국에 위기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국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대미 수출 실효관세율은 올초 1%에서 현재 16%까지 증가했다. 아직 한미 관세 협상이 남아 있지만, 앞으로도 벌어질 무역전쟁은 수출국가 한국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이 맞닥뜨린 가장 큰 위기는 구조적 요인, 저출산·고령화다.

사실 최근 설비투자 및 지식재산생산물 투자와 경제활동참가율은 늘었다. 하지만 일할 나이층은 감소하고, 투자 자본 증가율도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투입 요소별 기여도를 보면 점점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같은 돈을 투입해도 이전 같은 효과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간 한국 경제를 성장시켰던 노동력도 고령화를 맞이해 줄어들고 있다.
제한된 단기 회복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6월 3일 발간한 ‘OECD 경제전망 – 불확실성 해소, 성장 회복’ 자료에 따르면, OECD는 한국의 GDP 성장률을 2025년 1.0%에서 2026년 2.2%로 추정했다(OECD Economic Outlook - Tackling Uncertainty, Reviving Growth, 2025. 6. 3.).

OECD는 실질 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민간 소비가 회복하고, 물가가 목표치(2%)에 근접한 수준을 유지하고, 여성과 노인의 노동시장 참여가 증가하면 고용이 증가하고 실업률은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단기적인 회복세는 기저효과에 근거를 두고 있다. 2023~25년도 상황이 너무 좋지 않고, 내부 불안으로 2% 정도 성장할 수 있는 나라가 1%밖에 성장하지 못했으니, 내부 상황이 안정되면 낮아진 만큼 튀어 오르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잠재성장률 하락은 기저효과의 탄성치가 낮아졌다는 것을 추정케 한다.
국내 공공요금 인상과 환율 불안으로 인한 소비자물가지수(Headline inflation, 오른쪽 파란 선)가 오르면서 소비자 경기심리(Consumer confidence)는 바닥을 쓸었고, 기업 경기심리는 소비자 경기심리 이상 아래로 주저앉았다.

한국 경제 수요, 생산, 가격표를 보면, 최근에는 근원물가지수(Core inflation index)가 2%로 안정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총 국내 수요(Total domestic demand) 1% 회복이 쉽지 않다.
또 하나의 이상한 숫자는 가계 순저축률(Household saving ratio)이다. OECD가 집계하는 한국 가계 순저축률은 2013년 이후 평시에는 5~7%대를 오간다. 전망치이긴 하지만 한국 순저축률은 2024년 이후로 3%대로 크게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2012년 이후 처음 보는 현상이다.
저축률 하락을 해석하는 다양한 추측이 있는데, 저축률은 실질소득이 내려가거나, 소비를 늘리거나, 예금이자 수익률이 주식이나 다른 상품 수익률보다 현저히 낮거나 등의 이유다(다만, 2024년 수치의 경우 OECD는 3.5%, 한국은행은 8.0%로 차이 나는데, 한국은행 측에선 한국은행과 OECD 가계 순저축률은 개념은 같지만 측정 시점과 측정 방법이 다르다고 해명한다. 그런데도 양측 간 거리가 1% 정도 차이 나던 것이 4.5%나 차이 나는 건 쉽게 납득 가긴 어렵다).
나아지긴 하는데, 숨통이 탁 트이지 않는 상황. 이것이 저성장과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장 기본적인 징조다.
집값·환율에 막힌 통화
한국 경제를 되살릴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술혁신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개발하거나, 산업 재편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꾸는 등을 제안한다. 물론 맞는 말이며, 필요성은 높으나, 그러려면 올바른 정책을 포함해 돈이 필요하다.
돈과 관련하여 정부는 통화(금리·금융), 재정(세금) 두 개의 카드를 갖고 있다. 금리 부문에선 돈을 풀어야 한다는 권고가 나온다.
OECD는 2025년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침체한 경제를 위해 현재 2.75%인 기준금리를 2025년 말까지 2.00%로 내리는 빅스텝을 밟을 것이고, 2026년까지는 이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OECD 전망대로 향후 2% 초반의 물가가 형성된다면, 금리 인하 카드는 충분히 고려할 만한 카드이긴 하다.
하지만 정부는 OECD 권고처럼 연말까지 75bp를 내리기는커녕 25bp도 어렵다. 유례없이 집값이 치솟은 6월 사태 때문이다.
1300원대 상단에서 움직이는 원·달러 고환율도 변수다. 미국이 조만간 국채로 2조 달러를 풀겠지만,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에 연동해 신용위기를 신흥국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쉽사리 풀리지 않을 기미다. 윤석열 정부가 한국의 가장 큰 수출 고객이었던 중국에 배타적인 움직임을 취하면서 이러한 경제 위기를 더 부추겼다.

최근 미국 투자에 관심이 커지면서 일각에선 1997년 외환위기, 2001년 닷컴버블, 2008년 금융위기,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당시 위기 징조로 봤던 1400~1500원대 고환율을 지금은 뉴 노멀이라고 부르고 있다. 법정화폐는 국가 신용도를 기반으로 발행하는 무이자채권인데, 한국 돈이 약화되면 미국 투자하는 사람들은 좋겠지만, 근로자들은 점심 한 끼에 만 원이 아니라 2만 원도 부족할 수 있다.
과거 정부가 했듯 국민연금을 통해 환율 개입을 하기도 어렵다. 미국 정부가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압박하기도 했지만, 국민연금 재정을 훼손한다는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말라가는 뿌리, 재정과 잠재성장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 카드는 정부가 항상 고려할 수 있는 카드이긴 하며, 언젠가는 금리에 손을 댈 것이다. 동시에 재정도 반드시 함께 써야 한다.
통화는 물과 같아서 그냥 내버려 두면 멋대로 흐르는데, 이 흐르는 물을 마중물로 뿌려주거나, 아니면 부동산 등 과도한 수익률을 조정하는 역할은 재정(세금)이 맡는다.
그 일례로 GDP의 0.5% 정도를 민생지원금으로 뿌렸다. 금리를 풀어선 이런 식으로 중위층~저소득층 소비를 살릴 수 없다. 그 자체로는 OECD 보고서도 적절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단기 처방은 계속 쓸 수 있는 카드가 절대 아니다. 버는 돈(세금)은 제한돼 있으며, 나라를 담보로 끌어올 수 있는 미래 신용(국가채무)에도 한계가 있다.
OECD 2025년 경제전망 보고서가 한국의 단기 재정지출을 어떻게 조언하느냐면, 단기적인 재정 지원이 장기 부채로 쌓여서는 안 되며, 추가적인 재정 지원은 장기 재정 계획으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바로 이것이 OECD, IMF, 세계은행 등 경제기구들과 전 세계 재정당국들이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재정이다.
한국에서는 이 재정 지속성을 재정 건전성이란 용어로 바꾸어, 세입·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풀어내지만, 국제기구 등에서 말하는 재정 지속성의 의미는 다르다. 필요한 만큼 쓰되, 쓰는 만큼 거두라는 뜻이다.
한국처럼 잠재성장률 하락 구간(저출산·고령화·저성장)에선 더 이상 과투입 경제성장 모델을 유지할 수 없어 유럽과 주요국처럼 경제 효율을 높여 상대적 저투입에서도 버텨야 한다. 그러려면 제도 개선과 혁신을 위한 막대한 세금이 필요하다.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조세부담률이 OECD 하위 구간에 속한 나라다. 세금을 잘 걷지도 않을뿐더러 비어 있거나 이상하게 걷는 세원도 상당하다.

예를 들어 종합부동산세는 주택 가진 사람에게는 9~11억 원 정도 공제해 주지만, 초거액의 상가 주인들에게는 무려 81억 원의 공제를 준다. 그런데 임대사업자는 종부세에서 빠져 버린다. 빌라왕 등 기형적인 다주택 업자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다.
자산소득과세가 있긴 하지만, 개인유사법인 등 소득을 자산으로 축적하도록 한다. 문재인 정부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다가 슬그머니 중소기업 핑계를 대고 없애 버렸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에서 부유층에게 감세 몰아주기 정책을 쓰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가 어떻게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 전에는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을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들어와서는 줄어든 재정을 어떻게 채우겠다는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확장 재정 기조를 밝혀왔다. 그렇게 되면 재정 지속 가능성이 깎이는데, OECD 2025 경제전망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공공부채율이 매년 GDP의 1.7% 정도씩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비란 미리 준비하는 걸 말하는데, 지금은 경제활동 가능 인구가 더 많지만, 잠재성장률 하락(저출산·고령화·저성장)이 심화되는 2050년 시점에는 대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 시기의 재정 지속 가능성이 되려면,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최대한 빨리 재원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정부의 기조만으로는 부족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유권자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실 이게 말이 쉽지, 유럽 주요국들도 이 문제로 쩔쩔매고 있다. 상당한 수준의 조세부담률, 에너지 자원에 바탕을 둔 국부펀드를 가지고도 그렇다. 프랑스의 미테랑·올랑드 정권도, 바이든 정권도 재정 확충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OECD 등 국제기구들은 재정을 말할 때마다 줄창 정치적 결단, 초당적 협력을 말한다. 안 되니까 강조하는 거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나라는 점점 늙어가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0%대를 지나 마이너스로 내려가고, 고령 인구가 40%까지 올라가는 시간까지 이제 겨우 2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는 국민을 설득하고, 유권자는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갑갑할 정도로 단순하고도 어려운 명제에 명운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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