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며칠 전, 새로 전입한 사무관들과 조용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두 가지만을 강조했다.
인사를 잘하라는 것, 그리고 돈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새로 만든 조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사무관이던 시절 같은 과에서 근무하셨던 한 선배 사무관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지만, 공직의 시간을 오래 지날수록 그 말은 점점 더 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날, 나는 그 말씀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했다.
인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는 일이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은 공직자의 판단을 흐리는 유혹과 거리를 두라는 경고였다.
공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항해이기에,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어느 순간 되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했다.
너무 경쟁하듯이 하나의 사다리만 오르려 하지 말고,
각자의 사닥다리를 각자의 속도로 차분히 오르기를 바란다고.
레드오션처럼 한 방향으로 몰려 달리다 보면,
사닥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고 병목현상 속에서 누군가는 추락할 수도 있다.
성과와 평가는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하게 버틸 수 있는 균형이다.
성실과 열정, 정직과 인내의 마음으로 자기 사닥다리를 오르다 보면,
결국 각자의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옆을 의식하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위나 아래만 바라보다 보면 현기증이 나 발을 헛디딜 수 있다.
공직이든 인생이든,
사닥다리는 결국 자기 발로 한 칸씩 오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전하고 싶었다.
개인에게 사다리가 필요하듯,
K-무역을 선도하는 우리 수출입기업에도 공정하고 안전한 사닥다리가 필요하다.
관세행정이 제공하는 그 사닥다리가 바로「관세 안심 플랜」이다.
「관세 안심 플랜」은 관세청이 운영 중인 각종 예방적 사전점검·사전심사·자율준수 지원제도를 하나로 묶은 통합 정책 브랜드다.
기업과 납세자가 관세 신고 내용을 사전에, 안심하고 점검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사닥다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사후 단속과 추징 중심의 관세행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전 예방 → 자율 시정 → 성실신고 유도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사전점검 제도의 활용을 넓혀 사후의 대규모·일시 추징으로 인한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과 재무 리스크를 줄이고, 예측 가능한 통관 환경을 조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관세청의 사전점검·사전심사 제도는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품목분류 사전심사
•과세가격 사전심사
•환급 소요량 사전심사
•원산지 사전심사
•수출입안전관리우수업체(AEO) 인증
•납세신고도움정보 제공
이 제도들이 「관세 안심 플랜」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제도를 찾고 이해하고 활용하는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예를 들어,
신속한 품목분류가 필요한 경우 심사 기간을 기존 30일에서 15일로 단축하고, 연구·기술개발 단계의 시제품도 사전심사 대상에 포함해 신산업과 신기술의 무역 활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사전심사 결과에 따라 자진 수정 신고를 하면 가산세를 면제해 주는 제도 역시, 처벌보다 예방을 선택한 행정 철학을 잘 보여준다.
특수관계자 간 과세가격 사전심사(ACVA)를 받은 기업은 해당 거래 분야에 대해 관세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어 경영의 예측 가능성과 투자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연례보고서 제출 기한 연장 등 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함께 추진 중이다.
AEO 기업의 경우, 자율점검 결과를 전문가 확인을 거쳐 제출하면 통관 적법성 심사 기간 단축, 검사 비율 축소 등 실질적이고 체감 가능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환급 소요량 사전심사를 받은 수출기업에는 사후 조사 부담을 줄이고 신속 환급을 지원함으로써 수출 자금 회전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납세신고도움정보를 통해 기업이 스스로 오류를 발견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정보를 제공하고, 세율 차이가 큰 품목에 대해서는 조기 안내와 사전 경고를 통해 고액 추징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다.
얼마 전 간담회에서 관세 납세도움정보를 처음 이용해 본 한 중소기업 대표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저희가 수출입을 하고 있지만, 저희 회사에서 산출하는 수출입 관련 통계보다 더 정확한 자료가 관세청 유니패스에 있었습니다. 사업을 20년간 하면서 이러한 자료가 있다는 사실을 작년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짧은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기업은 매일 현장에서 치열하게 뛰고 있지만, 정작 국가가 축적해 온 공적 데이터와 제도를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스스로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해 온 현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관세 행정이 단속과 규제의 영역을 넘어 기업의 경영 판단을 돕는 실질적인 정보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분명히 드러낸다.
납세도움정보는 단순한 안내 자료가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위험을 미리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예방적 행정의 한 축이다.
특히 인력과 자원이 제한된 중소기업에게는, 이런 정보 하나하나가 곧 비용 절감이자 경영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업이 알고, 쉽게 접근하고,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제도의 가치가 완성된다.
그 대표의 말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좋은 제도를 만들어 두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연 필요한 곳에 제대로 닿고 있는가”라고.
관세행정 전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성실신고 가이드북, 그리고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품목분류 가이드북도 차례로 제작·배포하고 있다.
반도체, 2차전지, 자동차부품, 케이(K)-뷰티 등 우리 기업들이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실무 중심으로 구성했다.
기업 관계자들은 사전점검 제도가 「관세 안심 플랜」으로 통합되면서 정책의 접근성·인지도·활용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사후 추징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들수록, 기업은 통관 걱정보다 제품과 시장, 기술과 혁신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기업들이 갑작스러운 추징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관세청은 단속보다 먼저 다가가고, 처벌보다 예방을 선택하는 행정을 이어가고자 한다.
우리 기업들이 「관세 안심 플랜」이라는 사닥다리를 한 계단, 한 계단 차분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각자의 비전과 목표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사닥다리가 우리 기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관세청은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공정하고 안전한 무역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관세행정이 지향해 온 4G 관세행정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
기업이 스스로 점검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성장하는 관세청(Growing Customs)의 핵심 가치이며, 사후 추징이 아닌 사전 예방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한 무역 환경을 만드는 것은 현장으로 찾아가는 관세청(Going Customs)의 실천이다.
제도와 정보의 벽을 낮추어 기업과 납세자가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국민과 기업의 신뢰 속에서 빛나는 신뢰받는 관세청(Glowing Customs)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아울러, 성실신고를 유도하고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불법과 편법이 아닌 정직한 기업이 보호받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국민과 경제를 지키는 관세청(Guarding Customs)의 본질적 책무라 할 수 있다.
「관세 안심 플랜」은 이 네 가지 가치가 현장에서 하나의 정책으로 구현된 사례다.
단속과 제재 중심의 관세행정에서 벗어나, 기업의 성실한 선택이 자연스럽게 보상받는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관세청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는 곧 K-관세행정이 지향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가 무역의 신뢰도를 키우는 관세행정, 위험은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성장은 제도로 뒷받침하는 관세행정이다.
개인에게 각자의 사닥다리가 있듯, 우리 수출입기업에도 각자의 속도와 여건에 맞는 공정하고 안전한 사닥다리가 필요하다.
'관세 안심 플랜'은 그 사닥다리를 무너뜨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도록 한 칸 한 칸 단단히 받쳐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정의 사닥다리가 있다면, 그 반대에는 사닥다리를 걷어차는 행위가 있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내가 꼽는 10선 가운데 하나다.
관세(tariff)를 축으로 세계 경제와 정치의 역사를 풀어낸 역작으로, 오늘의 국제질서를 이해하는 데 깊은 통찰을 준다.
먼저 올라섰다는 이유로 뒤따라오는 사람이나 기업이 오르지 못하도록 사닥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는 명백히 부당하다. 이는 공정을 해칠 뿐 아니라 혁신의 가능성마저 질식시킨다. 이러한 불법·부정 무역행위는 단호하고 엄정하게 차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정의 사닥다리를 더욱 굳건히 세울 수 있고, 지속 가능한 성장과 신뢰의 질서를 지켜낼 수 있다.
관세청은 앞으로도 단기 성과보다 지속 가능한 신뢰를 선택하고, 눈앞의 추징보다 미래의 안정을 먼저 생각하는 행정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관세 안심 플랜」이라는 사닥다리를 차분히 오르며 각자의 비전과 세계 시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관세청은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며 K-무역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동반자로서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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