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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낭만적인 중세의 도시, 피 / 렌 / 체

 

1크기변환_[하나투어]이탈리아 피렌체_피렌체 시내(2).jpg
낭만적인 중세의 도시, 피 / 렌 / 체

피렌체의 기원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59년 아르노 강에 식민지를 세울 때, "꽃피는 마을"이란 뜻으로 플로렌티아라고 임명할 때이다. 기원후 1000년까지만 해도 작고 중요하지 않은 도시였지만 자치제가 생기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900년에는 인구가 5,000명이 되었다가 1200년에는 30,000명으로 늘었다.

후에 양모 제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피렌체의 은행업자들이 성공하면서 도시에 수많은 재산을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14세기에는 여러 미술이 시작되면서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되었고, 다음 300년 동안, 피렌체는 역사상 예술의 중심지로 발전한다.

15세기 초반에는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통치하게 되어, 강한 자치 국가로 성장하면서 학문과 예술의 꽃을 활짝 피우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예술의 천재들, 단테를 비롯하여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등 대문호들이 이 도시에서 태어나거나 활약했다.

   

5크기변환_[하나투어]이탈리아 피렌체_지오토의 종탑 (1).jpg

건축가와 예술기의 고향

46만의 인구를 지닌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지인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피렌체 역사지구 전체가 198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피렌체는 로마와 더불어 이탈리아 관광의 중심지라고 불리울 정도로 역사와 문화적으로 중요한 도시다. 상업과 금융업이 발달하면서 이탈리아 각지에서 뛰어난 재주를 지닌 예술가와 인문학자, 사상가들이 피렌체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계 예술 유산의 많은 부분을 이탈리아가 간직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피렌체는 로마와 함께 엄청난 유산을 보유한 도시다.

피렌체 시의 중심지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예술작품과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하나의 박물관을 보는 듯하다. 이것들은 대부분 11세기~16세기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들로, 두오모 광장을 중심으로 꽃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산지오바니 세례당 그리고 지오또의 종탑이 있고, 이곳을 중심으로 걸어서 단테의 생가와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과 베키오 다

, 그리고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모두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2크기변환_[하나투어]이탈리아 피렌체_피렌체 두오모 외관.jpg
피렌체가 한눈에 보이는 미켈란젤로 광장

미켈란젤로 광장은 도시의 동남쪽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피렌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절호의 지역이다. 피렌체처럼 도시 전체가 유적지로 지정되어 있는 곳을 둘러보고 나면 무엇을 보았는지 헷갈리게 된다. 특히 크고 작은 건축물이나 명화들이 많은 곳을 본 경우 먼저 전체적인 것을 둘러본 뒤 하나하나 자세히 보는 것이 효과적인데, 알맞은 장소가 바로 미켈란젤로 광장이다. 이곳에서 촬영한 사진이 주로 피렌체 관광 사진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거리의 중심을 향하면 눈앞의 거대한 건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능한한 장엄하게, 더욱더 화려하게라는 말처럼 175, 엄청난 세월을 거쳐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 두오모는 피렌체 시내 어떤 외진 곳에서도 두오모의 아치형 돔의 일부분이 보일 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하다.

두오모 성당은 1292년에 착공되어 1436년에 완공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이다. 깜비오가 설계를 하였고, 106m의 높이를 자랑하는 돔은 브루넬레스키 작으로 1420년 착공 후 14년간 이 건축 공사에 종사했으며 사후 1461년에 완성을 보았다.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의 벽체는 장관을 연출하며, 내부는 전성기 고딕 아치형 천정이 아치들로 받쳐져 있다.

관광객들이 직접 돔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것이 가능하다. 두오모의 주변에는 볼 것이 굉장히 많다. 두오모 부속미술관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등 대성당에 관련된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4크기변환_[하나투어]이탈리아 피렌체_시뇨리아 광장.jpg
도시의 구심점, 시뇨리아 광장

두오모 지역에서 화려하고 세련된 상점가를 남쪽으로 걷다 보면 넓은 시뇨리아 광장을 만날 수 있다. 중세 이래로 피렌체의 중심인 시뇨리아 광장은 오늘날까지도 피렌체 사람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모으는 정치적인 연설과 시위의 장소로 남아있다. 광장에는 복제품을 비롯한 많은 예술작품들이 즐비해 있어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곳곳에서 거리의 판토마임

이 열리고 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다.

 

7크기변환_[하나투어]이탈리아 피렌체_베키오 다리(2).jpg
영화 속 장소, 베키오 다리

영화냉정과 열정사이에 등장해 피렌체를 찾는 연인들의 필수 코스인 베키오 다리는 아르노강에 세워진 피렌체의 최고로 오래된 다리로 1345년에 건설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아르노 강의 많은 다리가 파괴되었지만 베키오 다리는 지금도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다리라고 해도 여느 다리와는 달리 금속 공예품과 액세서리를 파는 수십 곳의 상점이

모여 있는데, 르네상스 이후 금속 공예품을 만들었던 장인들의 공방이자 생활공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르노 강과 어우러진 베키오 다리의 풍경은 해가 질 무렵에 최고조를 이루며, 맞은편에 있는 폰테 알레 그라치에 에서 보는 베키오 다리의 야경 또한 일품이다. 베키오 다리의 상점에서 파는 귀금속류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린다. 저렴하고 질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중국제에 바가지를 씌운다는 사람도 있으니 유의하도록 하자. 꼭 뭔가를 산다는 것보다 노을이 진 다리를 보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방문해 볼 가치가 있다.

 

 

자료제공 : 하나투어(www.hanatour.com / 1577-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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