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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조세금융신문) ◆신용보증기금 인사

<승진>
▷본부장 
Δ부산경남영업본부 홍성호 Δ호남영업본부 윤헌기

▷부서장 
Δ경영관리부 심현구 Δ업무지원부 송동석 Δ보증심사부 류재현 Δ비서실 차재성

▷영업점장 
Δ송파 황석병 Δ부산 김동완 Δ창원 조일환 Δ사상 장왕순 Δ부산중앙 박운규 Δ구미 신준식 Δ광산 서정규 Δ동대문재기지원단 김완식 Δ부산재기지원단 김영우 Δ대구재기지원단 김대복 Δ광주재기지원단 윤영선 Δ대전재기지원단 박문규

<전보>
▷본부장 
Δ특화사업영업본부 박국근 Δ서울서부영업본부 노용훈 Δ인천영업본부 한동안 Δ대구경북영업본부 성의경 Δ충청영업본부 박학양

▷부서장 
Δ신용보험부 한기정 Δ연구개발부 박용평 ΔIT전략부 전명호 ΔSOC보증부 한영찬 Δ기업지원부 오재택 Δ감사실 신황운 Δ홍보실 이태용

▷영업점장 
Δ마포지점 김진원 Δ영등포 남상종 Δ광화문 현창익 Δ가산디지털 곽성철 Δ강서 박찬기 Δ고양 유인근 Δ삼성 이봉렬 Δ안양 최익경 Δ반월 조시영 Δ안산 김중열 Δ부천 최창석 Δ인천서 조종남 Δ대구 이동열 Δ천안 김형중 Δ대전중앙 전용재 Δ제주 이성주 Δ의정부 신영목 Δ김포 이희열 Δ춘천 송을호 Δ강릉 유정렬 Δ강동 김도영 Δ원주 이정균 Δ방배 이재경 Δ속초 허진행 Δ동해 이주승 Δ수원 경성배 Δ평택 성권모 Δ오산 송종태 Δ용인 지종환 Δ경기광주 이형태 Δ화성서 송태섭 Δ인천 김귀현 Δ남동 경주호 Δ시화 최명백 Δ송도국제 권창순 Δ진주 변성대 Δ울산 박상규 Δ마산 엄주원 Δ녹산 박용효 Δ울산북 염정인 Δ김해북 류충원 Δ포항 박호식 Δ대구혁신 우창훈 Δ대구북 변희정 Δ영주 정만섭 Δ경산 이상근 Δ안동 전용찬 Δ칠곡 김일원 Δ달성 장동환 Δ목포 최강대 Δ익산 김태정 Δ순천 문윤택 Δ광주첨단 윤도하 Δ정읍 정도영 Δ대전 배창수 Δ충주 이도영 Δ서산 한기욱 Δ대덕 이판기 Δ아산 윤담 Δ제천 조남기 Δ청주서 어순만 Δ당진 라상화 Δ마포재기지원단 이병호 Δ인천재기지원단 손성욱 Δ영등포재기지원단 고석우 Δ고양재기지원단 김기현 Δ강남재기지원단 이규호 Δ수원재기지원단 정철화 Δ경남재기지원단 이태용 Δ감사반장 오건수 Δ감사반장 김창현 Δ감사반장 박성근 Δ동부신용보험센터 이병복 Δ자본시장센터 김충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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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보름달과 떡볶이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아직도 하늘보다 땅을 먼저 떠올린다. 살던 마을의 흙길, 그 흙냄새, 그리고 흙이 묻은 엄마의 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는 늘 엄마의 등이 있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로 파를 캐시던 엄마는 흙 묻은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며 “먹어라.” 하시던 그 숨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보름달 빵이 들어 있었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집 강아지에게 주며 해맑게 웃던 날들이 있었다. 누나는 자기 몫이 없다며 종종 투덜댔지만, 나는 달콤함에 빠져 그 말도 흘려들었다. 세월이 꽤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빵은 엄마가 간식으로 받은 것 중 스스로 드시지 않고 남겨두신 ‘내 몫’이었다는 사실을. 그걸 알고 난 뒤로 보름달 빵을 쉽게 먹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은 보름달을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도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면, 보름달은 늘 감사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은 뭐든지 다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