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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이완용, 을사조약 찬성 이유…"부강해지면 다시 되찾으면 돼"

 

(조세금융신문=고은선 기자)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변절자 이완용이 화제다.

 

12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방송되면서 역사상 최악의 매국노로 꼽히는 이완용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 이완용 붓글씨가 공개된 까닭이었다.

 

1858년에 태어난 이완용은 본래 대표적인 친일파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처세술에 능했으며 친청, 친미, 친러 등 자신의 세력을 여러 차례 갈아탄 변절자다.

 

이완용은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 7조약, 기유각서, 한일병탄조약 체결을 주도하는 등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1926년 죽었는데 이완용이 죽은 지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친일파 매국노라고 비판받고 있다.

 

특히 을사조약 체결의 가장 주된 인물이기도 한 이완용은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 1905년 12월 8일 고종에게 상소를 올린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이완용은 "새 조약의 주된 취지에 대해 말하자면, 독립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묘사직은 안녕하고 황실도 존엄한다"며 "다만 외교상의 한 가지 문제만 잠시 이웃나라에 맡긴 것인데, 우리가 부강해지면 되찾을 날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완용의 주장과 달리 당시 몸담고 있던 대한제국을 되찾지 못했으며 이후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는 등 부귀영화를 누렸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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