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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윤석열 국방부의 자유시 의혹…우원식, 전두환 정부에서도 부정했다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국방부가 최근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 연루 주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역대 정부 국방부에서는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관계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국방부와 전쟁기념사업회 등을 통해 입수한 역대 정부의 자유시 참변에 대한 기술을 발표했다.

 

1987년 보훈처는 ‘독립유공자공훈록’을 작성하며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참변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못박았다.

 

독립유공자공훈록 제4권에서는 ‘노령 지역으로 이동한 독립군단은 자유시를 근거로 삼고 소련군과 긴밀한 접촉을 하였다. 그러나 1921년 6월 소련 공산당의 배반으로 독립군은 무장이 해제되고 포로가 되는 등 소위 ‘자유시 참변’을 겪게 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1994년 설립된 전쟁기념사업회는 전쟁기념관에 홍범도 장군 흉상을 세우며, 앞선 1993년 자유시 참변과 홍범도 장군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재차 확인했다.

 

당시 국방부로부터 전쟁기념사업회에 전달된 ‘전쟁 유공 추모 대상자 공훈카드’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의병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10년 이후에는 대한독립군사령관으로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시킴.’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활동하다가 소련군의 배신으로 자유시 참변을 겪었다.’

 

‘1921년 11월 조선 항일군의 대표로 모스크바에서 레닌을 만나 독립전쟁에 소요될 무기를 원조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1997년 6월 전쟁기념관이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선정 기안 문서에는 ‘선정 근거는 봉오동 전투이며, 1921년 6월, 자유시참변을 겪고 무장해제를 당함’이라고 기술돼 있다.

 

우원식 의원은 “과거의 ‘군 내외 자료’에서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의 희생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모스크바 방문 역시 ‘독립전쟁’을 위한 것이라고까지 되어있는데, 도대체 무슨 자료를 토대로 입장을 정리한 것입니까?”라며 “국방부가 한 입으로 두말하며 스스로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흉상 철거 계획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이자 국군과 독립군, 광복군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윤석열 정부의 反헌법적 발상으로 독립전쟁의 역사를 훼손하려는 만행의 진상을 밝히고,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범도 장군은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당시 명목상 대통령은 윤보선 대통령이었으나, 실질적인 통치기구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당시 홍범도 장군의 건국공로훈장 수여와 관련된 공적 기술은 다음과 같다.

 

 

홍범도(洪範圖).

평북 자성 사람으로 신산에 이주하였다. 체격이 크고 장대하여 의협심이 많았다.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았다. 1907년에 동지들과 함께 일어나 함경도 북청에서 일본군 중대를 섬멸하였으나, 힘이 부족하여 북만주으로 이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운동 때 만주 노령에 1920년 일본보병19사단 니이미 지로(新美二郞)가 지휘하는 남양군 수비대 약 1개 연대로 침투하는 적군을 유격 전멸하였다(봉오동 전투). 그 후 방랑생활을 하다가 만주 노령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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