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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이슈분석] ‘빚탕감’ 논란 속 배드뱅크 출범…구조적 탈출 기대와 우려 병존

소상공인·개인 채무자 113만명 연체채권 정리 본격화
성실 상환자 역차별 논란 직면, 정교한 선별 기준이 관건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정부가 8월 중 채무조정기구(배드뱅크)를 설립하고 10월부터 본격적인 연체채권 매입을 시작한다.

 

이번 정책의 핵심 목적은 상환 능력을 상실한 소상공인과 개인 채무자 약 113만명이 안고 있는 총 16조4000억원 규모의 장기 연체채권을 정리하고 재기를 지원하는 데 있다.

 

현장에서는 배드뱅크 설립을 두고 ‘사회 안전망 강화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입장과 ‘성실 상환자만 피해를 본다’는 의견이 여전히 대립하고 있다. 도덕적 해이 논란을 비롯해 2금융권 출연금 분담,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여전한 상황이다.

 

정부 추진의 ‘배드뱅크’ 설립이 각종 논란을 딛고 순항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10월부터 본격 가동…16.4조 연체채권 정리

 

금융당국에 따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오는 10월 연체채권 매입 시작을 목표로, 8월 배드뱅크 설립을 마무리하고 9월부터 업권별 매입 협약 체결을 시작할 계획이다.

 

배드뱅크 설립은 빚을 갚지 못하고 있는 자영업자나 개인의 부채를 탕감해 주기 위한 목적이다. 정부 심사를 통해 채무자가 개인파산에 준하는 수준에 처해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부채를 모두 소각해 주고, 개인파산 수준까지는 아니고 일부 상환 능력이 있는 경우라면 원금을 최대 80%까지 감면한 후 10년간 분할 상환하게 해주는 조건이 적용된다.

 

장기 연체 상태에서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채무자에게 ‘구조적 탈출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정부 의도다.

 

배드뱅크 설립 및 운영에 필요한 재원은 총 8000억원으로 책정됐다. 이 중 절반인 4000억원은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국고에서 조달된다. 나머지 4000억원은 은행, 보험사, 카드사 등 전 금융권이 공동 분담하는 방식으로 마련된다.

 

당초 은행권 단독 출연 방식이 유력했으나 상당수 장기 연체채권이 2금융권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정부는 1금융권이 비교적 큰 비중을 부담하되,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2금융권도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일정 부분 참여하는 구조로 방향을 수정했다.

 

다만 정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로 수익성이 악화된 업권에는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연내 금융권으로부터 장기 연체채권을 매입해 채무 소각 또는 조정을 추진할 예정이지만, 모든 연체 채권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흥업(사업자등록 기준) 및 주식, 가상자산 투자 등 사행성 부채는 매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는 정책 취지를 악용한 지원 남용을 사전에 방지하고 사회적 합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외국인의 경우에도 정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될 때 한해 제한적으로 포함한다.

 

구체적으로는 주식 투자로 부채가 발생하는 금융투자업권과 사업자등록번호 확인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유흥업 영위 소상공인 등은 ‘지원 결격 사유’로 분류된다.

 

외국인의 경우 정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면 대상자로 선정되는데 앞서 2013년 국민행복기금과 2020년 코로나19 긴급재난 지원금의 경우 영주권자, 결혼이민자 등이 포함됐던 것을 고려할 때 이번에도 기준이 비슷할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정부는 심사 과정에서 일반 소득 및 재산 범위는 물론 자동차, 가상자산 보유 현황까지 꼼꼼하게 따져볼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재산과 소득이 소액이라도 발견되면 일부라도 변제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허위 서류 제출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이미 집계된 자료에 대해 하나의 기관이 아닌, 복수의 정부 부처로부터 서류를 받아 심사하는 것이므로 확률이 매우 낫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상환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취약 채무자에게 재기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동시에 엄정한 소득 및 재산 심사를 통해 사실상 파산 수준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 해 채무를 감면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신용정보법 개정을 통해 차주 동의 없이도 금융기관으로부터 소득 및 재산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 도덕적 해이·형평성 문제…“성실상환자만 피해 본다” 비판도

 

하지만 배드뱅크 도입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가장 큰 쟁점은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문제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배드뱅크 예산안 검토 보고서를 통해 “채무자의 불필요한 지출 통제 여부나 재기 노력 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 채무 조정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와 정책 남용 우려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반적인 파산면책이나 채무조정 제도는 채무자가 일정한 법적 절차를 거쳐 손실을 스스로 부담하는 구조인 반면, 배드뱅크 제도는 국민 세금을 재원으로 한 탕감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에서도 유사한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가 도덕적 해이 방지 차원에서 배드뱅크 대상을 선정할 때 주식, 가상자산, 유흥업 관련 빚을 걸러내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7년 이상 경과한 소액 신용대출의 최초 사용 목적을 추적해 내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의 경우 생활고에 따른 것인지, 도박이나 투자 실패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차주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그 사각지대와 남용 가능성을 완전히 해소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채권당 5000만원 이하’ 기준 역시 허점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한 명의 채무자가 여러 금융사에 장기 연체채권을 분산해서 보유하고 있다면 결과적으로 인당 기준으로는 5000만원을 초과한 금액이 감면될 수 있고, 결국 정책 형평성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2금융권에서는 이중 부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당초 1금융권과 2금융권의 공정한 부담 분담을 위해 전 금융권이 재원조달에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됐으나, 구체적인 분담 방식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2금융권에선 부실채권 상당 부분이 집중된 상황에서 출연금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을 두고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다. 금융당국은 대상자 선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차주 동의 없이도 소득 및 재산 심사 관련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신용정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신용정보법상 예외 조항에는 채권추심, 신용평가, 인허가 등 일정 요건에서만 정보 수집이 허용되고 배드뱅크는 이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법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이 역시 공익 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추진하기에는 개인정보보호법의 기본 원칙에 어긋날 수 있어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 명확한 기준·사회적 합의가 성공 열쇠

 

배드뱅크 정책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첨예하다.

 

반대하는 측은 개인 채무 정리에 초점을 맞춘 유사한 정책 선례가 거의 없고, 기존 해외 사례와도 다르다는 점에서 부작용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베트남, 스웨덴 등에서 운영된 배드뱅크는 대부분 금융기관의 기업 대출 부실자산 정리를 목적으로 설계됐으며, 정부가 개인의 장기 연체채권을 직접 매입하고 탕감하는 방식은 국내외적으로도 전례가 드물다.

 

반면 긍정적인 기대도 존재한다. 장기 연체로 인해 사회적 회복이 불가능했던 금융 취약 계층에게 실질적인 재기 기반을 제공하고, 추심을 중단시켜 경제활동 복귀를 유도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내수 활성화와 사회적 비용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전문가들은 배드뱅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정확한 대상자 선별 기준과 사회적 합의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장기 연체자의 재기를 돕는 공공정책으로서의 의미는 분명하지만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줄이고, 제도 악용을 막는 장치가 병행돼야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정책 전문가는 “채무조정은 사회안전망 기능을 갖지만, 지원 기준이 불명확하면 성실 상환자와의 신뢰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며 “특히 반복적인 채무불이행자나 재산 은닉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병행돼야 정책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 연구기관 관계자는 “이번 배드뱅크는 기존 파산 및 회생 제도와는 달리 공적 재원이 투입되는 만큼 정책 목적과 사회적 정당성 사이에서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며 “일괄적인 탕감이 아닌 사실상 파산 수준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한 선택적 조정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배드뱅크 제도가 단순한 채무 탕감을 넘어 금융 취약계층에 구조적 탈출구를 제공하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선순환 구조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향후 운영의 투명성과 정책 집행의 정교함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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