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국토교통부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시장 신뢰 회복’을 국토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집값 띄우기’ 등 불법 거래 단속부터 주택가격 통계의 신뢰성, 건설안전과 산업재해, 공공기관 이전과 지역균형 발전까지 현안이 이어졌고, 그 중심에는 ‘공급보다 안정’, ‘규제보다 신뢰’라는 공통 메시지가 관통했다.
◇ 집값 띄우기, 무주택자 기회 빼앗아…단속 전면화
13일 오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첫 질의에 나선 이연희 의원(국민의힘)은 “서초·강남·용산·송파 등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최고가로 신고한 뒤 계약을 해제하는 ‘가격 띄우기’ 행위가 급증하고 있다”며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빼앗는 시장 교란”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심각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며 “국세청·경찰과 공조 체계를 구축해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1차관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과 직접 만나 신속히 진행하겠다”며, 단순한 실태조사 수준이 아닌 합동조사·수사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정부는 최근 서울 주요 지역에서 ‘허위 최고가 거래 후 취소’ 방식으로 시세를 왜곡하는 행위를 시장 교란으로 규정하고 전수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특히 김 장관이 “국세청·경찰과 공조”를 직접 언급한 것은 국감 현장에서 사법적 개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시사한 첫 발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국토부가 9·7 공급대책 이후 단순한 공급 확대를 넘어 시장 질서 복원 중심의 정책 기조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 주간 주택가격 통계, “시장 혼란 부추겨”…신뢰성 재검토 착수
이 의원은 이어 “전 세계에서 주간 단위로 주택가격을 발표하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며 “거래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중개업소 호가를 반영하는 통계는 시장 혼란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연구용역을 이미 진행 중이며, 실무 조정 후 빠른 시일 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가 2024년부터 도입한 ‘주간 단위 주택가격지수’는 시장의 체감 변화를 신속히 반영한다는 취지였지만, 실거래가 부족한 시기에는 오히려 왜곡된 신호를 주는 부작용이 지적돼 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간 통계 산출 방식을 재검토하고 월 단위 실거래 중심 통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통계의 빈도가 아니라 신뢰가 문제”라며, 통계 체계 개편이 시장 안정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 건설사 살얼음판…산재 엄벌 기조에 업계 위축 우려
이종욱 의원(국민의힘)은 “한국은행이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경제 저성장의 원인으로 건설산업 부진을 지목했다”며 “대통령이 산재기업 엄벌을 강조하면서 현장은 살얼음판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김 장관은 “채찍만으로는 안 된다”며 “건설업계 간담회를 통해 업계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산재 예방 의지가 경기 위축으로 번지지 않도록 병행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안전 규제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과잉 처벌로 인한 현장 위축과 투자 지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정부는 이달 말 열리는 건설산업 간담회에서 공공공사 낙찰제 완화, 공사비 현실화, 산재 예방 인센티브 제도 등 업계 요구안을 중심으로 보완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 세종시 행정확장·공공기관 2차 이전 ‘재점화’
전용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대법원 신청사를 서초 대신 세종에 지을 수 있느냐”고 질의했다.
김 장관은 “법 개정만 된다면 추진 의사가 있다”며 “국회와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면 적극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도 “세종에는 청사 부지 잔여지와 유보지가 있으며, 관련 용역 결과도 확보돼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최근 착수한 공공기관 2차 이전 전수조사와 맞물려 행정수도 완성·균형발전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낼 가능성을 예고한다.
특히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과 맞물려, 사법·행정 기능의 세종 이전 확대론이 현실 테이블에 오른 첫 장면으로 평가된다.
◇ 지역 SOC·ITS 의혹·항공안전까지…현장 중심 질의 잇따라
윤재옥 의원(국민의힘)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TF 구성 지연 문제를 지적하며 “이 사업은 단순한 공항 건설이 아니라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핵심 국가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대통령실에 광주와 함께 TF 구성을 재차 제안하겠다”며 “기재부 등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실질적 추진력을 확보하겠다”고 답했다.
정준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ITS(지능형 교통체계) 강릉 총회 공사 지연과 설계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사업자 선정과 설계 변경 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질의했다.
김 장관은 “국토부가 관여할 수 있는 법적 범위 내에서 조사해 사실관계를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제주항공 참사 관련 질의에서는 사고조사보고서 공개 시기 조정 문제가 언급됐다.
김 장관은 “유가족과 협의해 공개 일정을 조정하겠다”며 “중간 발표회 시점을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유가족 요구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사고 조사 절차의 투명성 제고를 약속한 의미로 해석된다.
◇ 6·27·9·7 대책 부분적 성과…시장 안정엔 여전히 ‘과제’
마지막 질의에서 김종양 의원(국민의힘)은 “6·27과 9·7 대책의 효과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 장관은 “부분적 성과는 있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인정했다.
그는 “6·27은 수요 억제, 9·7은 공급 확대 중심의 보완 정책으로, 부동산 자금 쏠림을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김 장관의 이 발언은 정부 내부 인식이 공급보다 시장 신뢰 회복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이번 국감은 집값 띄우기 단속, 통계 신뢰성 개선, 건설안전과 산업 균형 등 주요 현안이 ‘시장 신뢰’라는 공통 축으로 수렴한 자리였다.
공급보다 안정, 속도보다 신뢰를 강조한 김윤덕 장관의 답변은 국토부 정책 방향이 단순한 공급 확장이 아니라 시장 질서 복원과 체감형 정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기조는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매년 되풀이되는 단골 논제이기도 하다.
집값 안정, 전세사기 근절, 통계 신뢰성 제고, 건설 안전 강화 등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재확인되는 과제다.
다만 올해는 단순히 ‘공급 확대’를 내세우기보다, 정책의 무게 중심을 ‘시장 신뢰 회복’과 ‘실질적 체감’으로 옮겼다는 점이 차별점을 이룬다.
국감 이후 국토부가 말뿐인 안정 기조를 넘어, 시장 참여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신뢰 회복형 주택정책으로 이를 구체화할지가 향후 정책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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