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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보는 국세청 50년…국세수입 50년만에 2974배↑

(조세금융신문=나홍선 기자) 국세청이 개청 50주년을 맞이해 국세행정의 발자취를 돌이켜 볼 수 있는 통계자료를 정리·공개했다.


국세청은 국세행정 및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국세청 50년 역사를 통계로 정리해 공개했다고 7일 밝혔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한 통계자료에는 개청 당시 7백억원에 불과했지만 50년 만에 최초로 200조원을 달성한 국세수입 통계를 비롯해 국세청 조직·인원, 세목별·업종별 납세자, 전자세정, 현금영수증, 근로장려금 등과 관련한 12개 주요 통계가 시계열 그래프 및 간단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세수입의 경우 1966년 국세청 개청 당시 700억원에 불과했던 국세수입(국세청 소관 세수)이 2015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돌파, 1966년 대비 2,974배 증가한 208조2천억원을 달성했다.

세목별로도 국세수입은 크게 증가했는데, 1966년에는 소득세, 법인세, 물품세 순이던 것이 2015년에는 소득세, 부가가치세, 법인세 순으로 변화했다.


가장 많이 증가한 세목은 법인세로 1966년 109억원에서 2015년 45조원으로 4131배 증가했다.


또, 소득세는 1966년 203억원에서 2015년 60조7천억원으로 2,991배 증가했으며, 부가가치세는 시행 첫해인 1977년 2,416억원에서 2015년 54조2천억원으로 224배 증가했다.

이처럼 국세수입이 대폭 증가했음에도 징세비용은 1966년 2.19원에서 2015년 0.71원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됐다.

이같은 징세비용 0.71원은 일본(1.74원), 독일(1.35원), 프랑스(1.11원), 호주(0.93원) 등  OECD 주요 국가에 비해 낮은 편이라는 게 국세청의 설명.

국세청 조직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확대됐다.

국세청 산하 지방국세청의 수는 4개(서울·대전·광주·부산)에서 6개(서울·중부·대전·광주·대구·부산)로 증가했으며, 세무서의 수 또한 1966년 개청 당시 77개였던 것이 현재는 117개로 1.5배 증가했다.


또한 국세청에 종사하는 공무원 수도 개청 당시 5,500명이었으나 2015년에는 1만9,998명으로 3.6배 증가했다.
  
하지만 국세청 공무원 1인당 국민 수는 2013년 기준으로 2,665명으로 일본(2265명), 독일(743명), 프랑스(979명), 호주(1323명) 등 OECD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여전히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주요 세목의 납세자 수를 보면, 법인사업자수가 1966년 6600개에서 2014년 62만3400개로 94.5배 증가했다.


종합소득세 신고자수도 1976년 40만2천명에서 505만3천명으로 12.6배 늘었으며, 부가가치세 사업자수는 1977년 82만4천명에서 571만4천명으로 6.9배 증가했다.

업종별 납세자 수도 크게 증가했는데, 제조업, 도‧소매업, 서비스업, 음식·숙박업 등 주요 업종 중에는 도매업이 1977년 3만5,746명에서 2014년 51만7,647명으로 14.5배가 증가해 가장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제조업이 7만3,284명에서 51만9,495명으로 7.1배, 서비스업이 10만3,616명에서 70만2,756명으로 6.8배, 음식·숙박업이 12만5,661명에서 76만1,945명으로 6.1배, 소매업이 44만43명에서 76만129명으로 1.7배 증가했다. 

여성의 사회적 경제활동은 계속 증가해 2006년 164만명이었던 여성 개인사업자가 2014년에는 222만4천명으로 35.6% 증가했다.


또, 전체 개인사업자 중 여성 개인사업자의 비중도 2006년 36.7%에서 2014년 39.6%로 2.9%p가 증가했다.

이는 동일 기간의 전체 개인사업자는 25.8% 증가했으며, 이 중 남성 개인사업자는 20.0% 증가한 것과 비교할 때 여성 개인사업자의 증가세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 근로자도 꾸준히 증가해 2009년 522만9천명 수준에서 2014년에는 665만5천명으로 27.3%나 증가했다.

이 또한 동일 기간의 전체 근로자의 증가율 16.6%, 남성 근로자의 증가율 10.4%와 비교할 때 여성 근로자의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법인(국내지점)의 숫자도 1966년 38개였던 것이 2014년 1,770개로서 약 50년 사이에 46.6배 증가했다.


국가별로는 미국과 일본이 2014년 각각 404개로 가장 많이 진출했고, 가장 크게 증가한 국가는 중국으로 1992년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급증, 1995년 11개에 그쳤던 국내 진출 법인(지점) 숫자가 2014년에는 107개로 9.7배 증가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의해 국세청에 외국인 투자법인으로 등록된 법인도 1990년대초 외국인 투자 자유화 등으로 급증, 1988년 1,376개였던 외국인투자법인은 2014년에는 8,095개로 5.9배 증가했다.


외투법인의 경우 일본이 2014년 2,187개(1995년 1,079개)로 가장 많이 진출한 국가였으며, 가장 크게 증가한 국가는 싱가폴로 1995년 26개에서 2014년 369개로 14.2배나 증가했다.


또, 본사는 외국에 있고 국내에는 수익 영업활동이 아닌 단순 보조적인 활동만을 수행하는 외국법인 연락사무소도 1988년 657개에서 2014년 1,598개로 2.4배 증가했다.


* 물품세=물품을 반출 시 과세하는 소비세로 1961년 최초 시행 후 1977년 시행된 부가가치세에 흡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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