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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영웅’인 듯 ‘영웅’아닌 나폴레옹을 향한…

symphony No.3 in E-flat Major, Op 55 "Eroica"

(조세금융신문=김지연 음악전문기자) “베토벤,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다네!” “그 녀석도 역시 속물이었군. 그 녀석도 역시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그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이 되겠지!” 친구 페르디낭의 급보를 전해들은 베토벤은 비통한 심정에 빠졌다.


베토벤이 생존하던 시기의 유럽은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일대 변혁기였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 일어나 절대주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제가 실시된 시기였는데, 이후 나폴레옹 전쟁(1799~1814) 와중에 빈도 프랑스군의 점령으로 왕족과 귀족이 헝가리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베토벤은 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베르나 도트와 친해지며 나폴레옹에 대해  듣게 되고 그를 지지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가 신봉해 마지않던 나폴레옹은 일개 포병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반란군을 평정하고 최고사령관의 자리에까지 오르 게 된 희대의 영웅이었다.


전제군주의 폐해에 깊이 공감하고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하며, 민중의 편에 서서 자유의 정신을 간직한 나폴레옹. 그를 너무나 신봉하던 베토벤이었기에 나폴레옹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작품을 통해 찬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1803에 작곡을 시작해 1804년 봄까지 1년의 기간을 거쳐 작곡을 마친 후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에 보내려고 할 무렵,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다는 소식이 빈 거리에 퍼지자 대곡을 그대로 찢어 내팽개치고 말았다.


베토벤은 프랑스 초대 집정관이었던 나폴레옹을 경외하며 이 ‘보나파르트(Bonaparte)’라는 이름 밑에 ‘루드비히 반 베토벤’으로 서명한 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었지만 그도 권력욕에 가득찬 한 정치꾼임을 보고 혼신을 다해 작곡한 이 곡을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던 것이다. (후에 친구 ‘페르디낭’ 에 의해 유일한 복사본을 건졌기에 지금까지도 이런 명곡을 우리가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베토벤은 장군의 위치에서 인권과 자유주의를 가져다 줄 ‘자유의 구세주’ 나폴레옹을 기대하던 것이지 권력과 결부시켜 한자리 차지할 야욕꾼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를 써놓은 것이 나폴레옹의 황제즉위 2년 전인 1802년임을 볼 때, 베토벤은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을 보며 예술혼을 불태 우고 자살의 유혹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베토벤의 ‘살아야겠다’는 불굴의 의지력 형성에 나폴레옹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때, 적어도 베토벤 개인에게만큼은 ‘영웅’임이 확실하다.


유달리 병약했던 그는 청각상실이라는 악조건을 견디면서도 프랑스 혁명을 진압하고 국가를 일어서게 하는 나폴레옹에게서 창작의 에너지를 받았던 것 같다. 실제로, 유서의 내용 을 보면 “예술만이 자신의 죽음을 막을 수 있고, 내 안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낼 때까지는 세상을 떠날 수 없다” 는 내용도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내적인 동기와 베토벤의 독창적이며 자유로웠던 음악성이 결부되어 ‘영웅’이라는 최고의 작품이 탄생되었다.


이 곡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웅’이란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제2악장은 ‘장송 행진곡’으로 지어져 있다. 베토벤은 이 곡이 작곡된 이후 그는 나폴레옹에 대해 잊고 사는 듯 했으나 17년 후 그가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되고 쓸쓸 히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나는 이런 날이 올 것을 알고 미리 결말에 적절한 음악을 써 두었다”라고 했다.
 
시국이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지금, 이 상황을 말끔하 게 정리해 줄 우리시대의 ‘영웅’이라 불릴만한 지도자가 나올까? 결국 나폴레옹에게 헌정되지 못하고 ‘한 사람의 영웅에 대한 추억을 기리기 위하여’란 부제로 초연에 성공한 ‘영웅’ 교향 곡을 감상하며, 어디엔가 있을지 모를 대한민국의 영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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