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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극 ‘오펀스’] 살아있다면 누구나 고아가 된다…같은 인류의 다른 진화・규칙・슬픔

— 당연한 것을 얻지못한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통찰력…슬픔은 비고아들의 몫

(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살아 있다면 누구나 다 고아(Orphans, 孤兒)가 된다. 성인이 돼 고아가 되는 것은 특별히 동정받을 일이 아니다. 늦은 나이에 고아가 되면, 주변에서 ‘호상(好喪)’이라며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아주 어려서 고아가 되거나, 세상에 피붙이 한점 없는 ‘천애고아’의 삶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동정의 대상 같은 한가한 얘기가 아니다. 생김새나 언행이 완전히 같아도 전혀 다른 인류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의 쓰다듬는 손길과 “괜찮아”라는 격려와 위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성장의 중요한 단서라는 생각에 못미친다. 경험한 사람들도 그런 짐작을 못하는데 도저히 경험할 수 없었던 고아 형제에게는 오죽했을까. 서울 대학로 연극 <오펀스(Orphans)> 얘기다.

 

필라델피아 북부 낡고 허름한 집에 살고 있는 고아 형제 트릿과 필립은 똑같이 부모의 쓰다듬는 손길과 “괜찮아”라는 격려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으로 좀도둑질과 얼치기 강도짓으로 동생을 부양하며 부모 노릇을 하는 형 트릿은 ‘세상은 부수고, 죽이며, 태워 생존을 위한 먹이를 얻는 공간’이라는 세계관이 지배적이다. 다만 동생이 이런 처참한 생존 전쟁터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실천해 간다. 동생 필립은 어려서 경험한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집밖을 나서면 안 된다는 형의 강압적 세계관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지만, 형 몰래 책과 신문을 읽고 세상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을 쌓아간다.

 

그런 어느날 형 트릿이 만취한 중년의 사업가 헤롤드를 집으로 납치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연극인 고 추송웅 선생의 딸로, 오래전부터 아버지처럼 연극무대를 지켜온 추상미가 남성인 헤롤드 역할을 맡았다. 고아 형제 배역도 모두 여성 배우들이 연기했다.

 

헤롤드는 단지 경제적 풍요 뿐 아니라 고아 형제가 잊고 살아온 ‘인간 성장동력의 소재’를 여러 계기로 일깨워 준다.

 

연극의 극적 구성이 특별하지는 않다. 고아의 삶에 용해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과 사용자 환경(User Interface, UI)은 진부한 이야기 전개를 통해 드러난다.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 소재가 주는 결핍의 감성(pathos)이 관객들에게 전해져 자주 눈가에 손이 가게 만든다. 이 연극의 중요한 특징이다.

 

배우들은 마치 공기(air)처럼 사람들에게 너무 당연하고 너무 풍부해서 존재감도 없는 ‘부모의 쓰다듬는 손길’과 “괜찮아”라는 격려가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을 2시간30분동안 여러 장면으로 자세히 묘사한다.

 

값비싼 희생을 치러서라도 그런 것을 가져야 하는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 한가닥, 대사 한마디마다 가슴이 먹먹해 진다.

 

연극의 첫번째 키워드는 그래서 ‘진화(evolution)’다. 고아는 다른 인간과 같은듯 다르다. 생의 시작은 똑같지만 언어와 학습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벌어진다. 형체는 사람이지만, 정체성은 야수인 늑대소년처럼.

 

고아 출신으로 갱단과 함께 거친 사업을 해온 헤롤드는 충분히 가능했지만 자신을 납치한 고아 형제를 떠나지 못한다. 자신의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치고 있는 고아 형제의 일거수일투족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고아 형제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심어준 뒤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을 감행한다. 이별의 아픔은 고아 형제의 새 삶을 여는 산통이 됐다.

 

헤롤드는 우주에서 생물 개체가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처음엔 바이러스나 아메바 같은 생물로 시작했지만 수만, 수백만년이 지나면서 어떤 종은 인간이 되고 어떤 종은 여전히 아메바로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아메바가 한단계 높은 수준의 고등동물로 진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따스한 햇볕 한줌, 신선한 물 한방물, 바람 한점 등이다. 사람도 한단계 진화하기 위해 어루만짐과 격려, 위로, 함께하는 공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인간사회 속에서 고아는 어쩌면 진화하지 못한채 훌쩍 크기만 커져버린 아메바다. 위로와 격려, 식구, 쓰다듬기, 위안이라는 진화의 양분을 접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무섭게 진화해 가는 다른 종들을 물끄러미 바라봐야 하는.

 

진화의 조건을 깨닫지 못한다면, 누구나 인간 진화에 관한 한 거의 무지 상태다. 비고아들 역시 고아의 삶을 체험하지 못해 너무나 당연한 ‘진화의 양분’을 자각할 수 없다. 이런 수많은 비고아(잠재적 고아)들에게 인간 진화의 자양분을 다시 일깨워주는 게 이 연극 창작자의 의도인 것 같다.

 

무지는 분노로, 분노는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공격성으로 이어진다. 고아는 차근차근 자그마한 ‘분노를 억누르는 법’을 배워 익힐 기회가 없기 때문에,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더 급진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자제를 배워 ‘경착륙’ 한다.

 

이런 경착륙이 고아의 중요한 두번째 ‘열쇳말’이다. 아무도 이끌어주지 않고 기다려주지 않는 성장기를 거친 고아는 사회에 ‘경착륙’한다. 엄청난 생존본능이라는 대가를 받지만, 착륙 때 얻은 정신적 외상은 평생 치유하기 어렵다.

 

고아의 성장 환경에서는 곧잘 인간이 가장 존중해서 위선자들에게 곧잘 이용당하는 ‘규칙기반’이라는 삶의 방식 대신 폭력과 강압의 야수적 방식이 더 상식이다. 나중에 위선자들이 공동체의 규칙을 사익에 악용하는 점을 목도하면, ‘규칙기반’의 삶 자체가 허구라는 신념을 갖게 된다. 사실 인류는 고아의 이런 판단이 옳은 것인지 아직 자신있게 대답을 못한다.

 

세번째 열쇳말은 ‘슬픔의 진부함’이다. 고아의 슬픔 세포는 분화되지 않은채 부피만 커지는 식이다. 성장의 자양분이 주는 크고 작은 행복, 그것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인간 슬픔 세포의 원형이다. 자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성장을 얻지 못했으니 잃을 것도 없다. 당연히 발현될 슬픔은 그저 잠재력의 주머니에서 크기만 부풀고 있다.

 

슬픔은 되레 비고아(관객)의 몫이다. 고아가 미시세계의 작은 현상, 거리의 가로등이 일제히 켜지는 장면 따위를 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장면, 선배 고아인 멘토가 “태양의 일부가 가로등 속에 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고아에 대한 동정심이 아닌 전혀 다른 감동으로 눈시울이 달아오른다. 고아가 집요한 조사연구를 통해 터득한 철학적 경지를 뒤늦게 발견한 비고아들의 패배감, 열등감 섞인 눈물이다. 관객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인류 성장의 자양분’들의 전략적 중요성을 고아의 말을 통해 깨닫고 본능적 게으름을 탓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모의 죽음을 경계로 ‘고아’ 또는 ‘비고아’로 살고 있다.  모두들 인간 삶과 성장의 열쇳말인 ‘진화’와 ‘경착륙’, ‘규칙기반’을 둘러싼 풍요와 결핍을 경험한다. 부모 죽음의 시기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모두의 삶이 겹쳐 있고, 인식의 계기, 비판적 사유의 계기가 있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느슨하든, 희미하든 모두  연결돼 있다. 나보다 더 고아쪽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더 이해할 수 있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다면 , 인류는 좀 더 지속가능할 것이다.

 

이 연극을 본 날 공교롭게 기자의 한 오랜 친구가 ‘비고아’에서 ‘고아’로 처지가 바뀌었다. 좀 생뚱맞지만, ’슬픔’과 함께 한 단계 더 ‘진화’한 친구에게 인류가 진짜 진화를 통해 ‘규칙기반’의 삶으로 가고 있는지 물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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