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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워커홀릭‘ 조종호 26대 동안양세무서장, 8일 세무사 새출발

국세청 입사부터 남달랐던 조종호, "업무에 핵심을 보는 안목" 탁월

(조세금융신문=김영기 기자) '국세청 워커홀릭' 조종호 제26대 동안양세무서장이 지난 6월말 37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세무사로서 새출발을 한다.

 

사무실 오픈은 오는 8일, 안양시 동안구 시민대로 273, 효성인텔리안 215호에서 국세청 안팎의 동료 후배, 지인들을 모시고 개업소연을 갖는다.

 

조종호 이음세무컨설팅 대표세무사는 개업인사장에서 정들었던 국세청에서 동안양세무서장으로 명예퇴직하고 새출발을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공직에서 동료직원들과 함께 다양한 현장에서 납세자의 숨소리를 들으며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했던 조종호 대표세무사는 납세자의 권익보호에 앞장설 방침이다.

 

이를위해 납세자와 국세청을 잇고 모두 함께 미래로 이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러한 ‘잇다’는 ‘이음 세무컨설팅’으로 태어났다.

 

조종호 세무사는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제천고등학교와 국립세무대학(6기)을 졸업한 뒤 1988년 청운의 꿈을 품고 국세청에 입사했다.

 

첫 임용지는 1988년 3월1일 고향인 제천세무서에서 법인세 업무를 담당했다. 초임 신입직원 같지 않게 관리자들은 전입 직원처럼 그를 대해 주었다. 법인업무를 담당하면서

 

그당시, 세무대학 5기졸업생 까지는 수도권 우선 배치였고, 6기부터는 지방우선 배치였다. 그래서 6기들은 우수게 소리로 ‘지방1기’ 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 세무사는 현직시절 세무서장 취임사에서 줄곧 “처음 입사했을 때가 중요하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조사업무에 대해 핵심을 보는 안목을 길러졌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설파하곤 했다.

 

1997년 초토세(초지초과이득세)가 도입되던 시기에 이른바 ‘토초세 1번지’ 파주세무서 재산세과‘에 근무했다. 그 당시 파주세무서는 현재 고양세무서, 동고양세무서를 포함한 광범위한 관할 구역이었으며, 근무를 희망하는 직원들의 경쟁이 높았으나, 그는 이곳에 배치될 정도로 신망을 받았다.

 

그는 비록 사무관 승진은 6기 동기들보다 1년 정도 늦었다. 그래서 세무서 차석을 오랫동안 했던 관계로 실무업무에 밝다. 국세청에서 근무하면서 세무조사업무 25년, 재산세 업무 5년, 법인세 업무 등을 섭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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