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필주 기자)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참사’로 규정하고 국가 주도의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을 24일 확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과 같은 사례가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기존 기업 단독 부담에서 기업·국가의 공동 부담 방식로 변경하는 등 국가의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날 김민석 국무총리는 “피해자의 학업, 사회 진출, 일상 회복까지 생애 전 주기에 걸친 맞춤형 지원에 나서겠다”며 “피해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중심으로 전 부처가 함께 힘을 합쳐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정부가 주도적 역할에 나서기로 결정하자 일각에서는 1차적 책임이 있는 기업을 상대로 한 제재·보상 방안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과거 피해구제 조정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옥시·애경산업 등 기업들의 행태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 옥시·애경산업 반대로 2022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구제 조정안 합의 불발
앞서 지난 2021년 10월 출범한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는 참사와 관련된 옥시 등 9개 기업 및 피해자 단체 등과 협의를 진행했다.
이어 이듬해인 2022년 3월 사망자 연령에 따라 유족 지원금 2억원에서 4억원을 지급하고 증상이 가장 심각한 초고도 피해자에게는 연령별로 8392만원(84세)부터 5억3522만원(1세)을 차등 지급하는 내용이 담긴 조정안을 도출했다. 조정안에 따르면 옥시 등 9개 기업이 마련해야 할 피해구제금 재원은 총 9230억원 가량이다.
하지만 2022년 4월초 옥시와 애경산업은 조정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조정위에 전달했다. 반면 SK케미칼·SK이노베이션·LG생활건강·GS리테일·롯데쇼핑·이마트·홈플러스 등 7개 업체는 조건부로 조정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당시 옥시·애경산업은 조정안 거부 사유로 ▲불공평한 분담비율 ▲배상 이후에도 발생할 추가 피해자 및 별개 소송 등 사라지지 않는 리스크 ▲배상금 지급시 심각한 재무적 부담 등 ▲정부 당국의 관리부실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이중 애경산업은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공급한 SK케미칼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옥시·애경산업이 차지하는 피해구제금 분담비율은 전체 금액 대비 60%에 육박했다. 따라서 두 기업이 조정안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 조정은 무산됐고 결국 이후 피해자별 민사소송으로 이어졌다.
이밖에 2024년 10월 등급 외 피해자 2명은 옥시가 OECD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며 이의 신청을 제기했다. 이의신청 과정에서 피해자 2명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 ‘등급 외’ 판정을 받은 다수 피해자들도 추가적이고 실질적인 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총 3회에 걸쳐 OECD 다국적기업 기업책임경영 한국연락사무소(NCP) 위원회를 열고 조정에 나섰지만 옥시는 ‘직접적인 추가 보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일 제4차 NCP 위원회를 열고 사건을 종결처리했다.
◇ 재무적 부담 이유 조정안 거부 애경산업, 오너일가 고액배당 논란
옥시와 함께 2022년 4월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구제금 조정안을 거부한 애경산업은 조정안 거부 직후 오너일가에 대한 고액배당으로 논란이 됐다. 피해구제금 지급시 심각한 재무적 부담에 처할 수 있다고 피력한 것과 달리 미처분 이익잉여금을 쌓아놓고 오너일가에게는 고액배당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같은해 4월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윤미향 의원은 “애경산업이 2021년 1617억7400만원의 미처분 이익잉여금을 쌓아놓고 52억4200만원을 이익배당하면서도 11년만에 도출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안을 거부한 것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미향 의원에 따르면 애경산업은 2024년 2월 24일 이사회에서 2021년 당기순이익 151억9000만원에서 52억4200만원(배당성향 34.5%)을 이익배당하고 미처분 이익잉여금 1617억 7400만원을 이월하기로 의결했다.
당시 애경산업은 지분 45.08% 보유한 AK홀딩스가 최대주주에 속했다. AK홀딩스는 오너일가 2세인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이사, 이들의 모친인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채은정 애경산업 부사장, 3세인 채문선·채수연·채정균·채문경·안리나·안세미 등 오너일가와 애경자산관리가 총 65.15%의 지분을 소유했다.
이 가운데 애경자산관리는 AK홀딩스 지분 10.37%와 애경산업 지분 18.05%를 각각 보유한 곳으로 오너일가가 지분 100%를 갖고 있어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윤미향 의원이 공개한 애경산업 이사회 자료에 따르면 회사는 2019년 118억5600만원(배당성향 29.1%), 2020년 52억4200만원(배당성향 44.6%), 2021년 52억4200만원(배당성향 34.5%)씩 각각 배당했다. 따라서 애경산업은 그간 오너일가의 주머니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왔다.
이에 반해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을 위한 조정위원회’ 조정안에 의하면 옥시 등 9개 기업의 분담금 총 9230억원 가량 중 애경산업의 분담금은 7.4%인 689억4800여만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올 9월말 기준 AK홀딩스는 채형석 총괄부회장 등 오너일가가 지분 46.28%를, 애경자산관리가 18.91%를 지분을 각각 보유 중이다. 애경산업은 AK홀딩스가 45.08%, 애경자산관리가 18.05%의 지분을 각각 소유하고 있어 2022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없다. 애경산업은 올해 4월 배당금 총 149억685만원을 지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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