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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 유통 · 의료

[유통노믹스] 종량세 6년의 배신…‘4캔 1만원’에 갇힌 수제맥주

정부 기대 빗나간 종량세…품질 대신 ‘유통 마진’만 키워
OEM 완화에 ‘무늬만 수제맥주’ 난립
1세대 수제맥주 기업 줄도산

 

(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서울 시내 편의점 주류 매대. 형형색색의 캔맥주가 냉장고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곰표, 말표부터 웹툰 캐릭터가 그려진 맥주까지, 언뜻 보면 정부가 그토록 외쳤던 ‘맥주 르네상스’가 도래한 듯하다. 통계치도 화려하다. 2019년 81개에 불과했던 국내 맥주 브랜드는 2023년 318개로 4배 가까이 폭증했다.

 

그러나 화려한 라벨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르다. 수백 개의 브랜드가 난립하지만, 정작 이를 생산하는 공장은 소수다. 맛은 평준화됐고 ‘다양성’은 포장지에만 남았다. 2020년 정부가 “세금 체계를 바꾸면 고품질의 다양한 맥주가 나올 것”이라며 52년 만에 단행한 주세 개편이, 시장에 ‘품질의 고급화’가 아닌 ‘유통의 획일화’만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 원가보다 비싼 세금…‘종가세’ 굴레 벗었지만

 

시계를 6년 전으로 돌려보자. 2020년 이전, 국산 맥주는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체계였다. 제조원가에 이윤을 합친 금액이 과세표준이 되다 보니, 좋은 원료를 써 원가가 오르면 세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였다. 반면 수입 맥주는 ‘수입 신고가’만 낮추면 세금을 줄일 수 있었고, 이를 무기로 ‘4캔 1만 원’ 공세를 퍼부으며 안방 시장을 잠식했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술의 가격이 아닌 용량(리터)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당시 정부는 “세금 부담이 줄어들면 국산 맥주업계가 품질 향상과 다품종 생산에 투자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의 기대와 정반대로 움직였다. 규제 완화로 확보된 세금 여력은 ‘품질’이 아닌 ‘마케팅’과 ‘단가 후려치기’ 경쟁으로 흘러들어갔다.

 

 

◆ 통계는 ‘성장’ 가리키는데…실질 점유율은 하락

 

제도 시행 6년, 시장의 변화는 엇갈린다. 외형적인 성장은 뚜렷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월 발표한 ‘맥주시장 효과분석’에 따르면, 국내 맥주 제조사 수는 2019년 33개에서 2023년 81개로, 편의점 취급 캔맥주 종류는 26종에서 154종으로 급증했다. 공정위는 이를 근거로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되고 후생이 증대됐다”고 자평했다.

 

문제는 ‘질적 성장’의 부재다. 편의점 내 수제맥주 점유율(판매량 기준)은 2022년 5.3%로 정점을 찍은 뒤, 2023년 3.5%로 하락 반전했다. 종류는 100종 넘게 늘었으나, 정작 소비자의 재구매는 줄어든 것이다. 업계에선 “소비자들이 다양한 라벨에 호기심을 가졌지만, 맛의 차별화를 체감하지 못해 이탈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 세금 감면 혜택, 제조사 아닌 ‘유통사’가 삼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경제학의 ‘조세 귀착(Tax Incidence)’ 실패로 진단한다. 세금 감면의 혜택이 제조사의 품질 투자나 소비자의 효용으로 가지 않고, 시장 지배력이 강한 유통 채널로 흡수됐다는 것이다.

 

편의점과 대형마트의 진입 장벽인 ‘4캔 1만 원’ 묶음 할인이 대표적이다. 제조사들은 종량세 도입으로 생긴 여력을 품질 향상에 쓰는 대신, 유통사가 요구하는 납품 단가를 맞추는 데 소진했다. 세금 감면분이 유통사의 가격 정책을 방어하는 ‘완충재’ 역할에 그친 것이다.

 

여기에 2021년 허용된 주류 위탁제조(OEM)는 ‘양날의 검’이 됐다. 공장 없는 사업자도 맥주를 출시할 수 있게 되면서 브랜드는 우후죽순 늘어났지만, 납기 준수와 단가 절감을 위해 대규모 공장에서 ‘표준 레시피’로 찍어내는 방식이 주류가 됐다.

 

결국 시장엔 포장지만 다른 비슷한 맛의 맥주가 넘쳐나게 됐고, 정작 다양성의 뿌리인 지역 기반 양조장들은 유통망에서 소외된 채 고사 위기에 처했다. 설상가상으로 ‘노재팬’ 이후 귀환한 일본 맥주와 하이볼 등 대체 주류가 매대를 장악하며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 1세대 기업 줄도산…2027년 ‘생맥주 세금 폭탄’ 예고

 

‘풍요 속의 빈곤’은 업계 주요 기업들의 실적 위기로 증명된다. ‘수제맥주 1호 상장사’ 제주맥주는 적자 끝에 경영권이 매각됐다. ‘곰표맥주’로 유명한 세븐브로이와 성수동의 대표 주자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역시 지난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법원 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업계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실패로 치부하기엔 시장 구조가 기형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통망 진입을 위해 외형 경쟁을 벌이다 기초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경기 침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2026년 말 예정된 ‘생맥주 주세 경감’ 일몰은 또 다른 뇌관이다. 현행법상 8리터 이상 생맥주에 적용되는 20% 세금 감면 혜택이 종료되면, 2027년부터 리터당 세금은 약 885.7원(기본세율)으로 환원된다. 500mL 한 잔당 세금이 약 116원(부가가치세 미포함) 오른다. 캔맥주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업계가, 최후의 보루인 생맥주 시장에서마저 세금 인상이라는 악재를 만난 것이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구조에선 다양성이 설 자리가 없다”며 “단순한 가격 경쟁을 넘어 품질 경쟁이 가능한 제도 보완이 없다면 수제맥주 시장의 공멸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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