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연구회 이사장) 조선 정부에서 목인덕(穆麟德), 또는 목 참판으로 불린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f)는 1847년 2월 17일 독일 북부 옛 마르크 브란덴브르크 지방의 한 귀족 가문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1865년 할레(Halle) 대학에서 법학과 언어학, 동양학을 공부하였고, 법학 박사학위(Dr. Jur)를 받았다. 그는 능통한 중국어 실력자이며 탁월한 히브리어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고, 키가 아주 크고 몸이 억센 학생이었다.
8개 외국어에 능통하였으며. 대학 졸업 후 1869년 북독일 연방총리실 영사관 근무를 신청하였는데 친척으로부터 중국 해관에서 독일인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22세 때인 1869년 청으로 건너왔다.
그 당시 독일에서 중국으로의 여행경로를 보면, 1869년 8월 19일 귀를리츠를 출발, 베를린 – 할레- 드레스덴 - 프라하 – 브륀 – 비엔나 – 트리에스트 – 크레타 - 알렉산드리아 – 수에즈 – 아덴 (이상 4주 소요)- 갈 – 칼카타 – 실론- 페낭 - 싱가포르 – 홍콩 – 상해로 2달이 걸렸다.
중국 상해에 도착하여 1869년 10월 27일 상해 해관에 서류를 제출하고 하천국의 업무에 배정되었다.
그 후 양자강 강변 한구, 구강 등으로 전전하다가 1874년 5월 해관 총세무사에게 사직원 제출한 후, 1876년 정식 통역관으로 천진 주재 독일영사관을 거쳐 상해 독일영사관에서 3년을 더 근무하다가(*1877년 여름 결혼 시에는 6개월 간의 휴가) 1879년 천진 영사관 부영사가 되었으나 정식 외교관 자격을 갖추지 못해 능통한 중국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1879년 8월 천진의 대리 영사로 있을 적에 직예 총독 이홍장을 만나게 되고, 청의 실력자 북양대신 이홍장의 막하 인물인 마건충, 주복 등과 친교를 맺은 것을 계기로 1882년 5월 상해 부영사직을 사임하고 9월에는 이홍장의 비서로 근무하게 된다.
이 때 불칸사의 독일 군함을 최초로 청이 구입하는 계약을 성사하는 등 묄렌도르프의 능력을 눈여겨 본 이홍장은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1882년 당시 조선은 1876년 2월 27일 일본과 강화도조약으로 개항은 했지만, 관세를 징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조일수호조규 부록에 수입 상품에 대해서 수년간 면세하도록 합의), 조선 정부는 서양 각국과의 조약 체결 논의 과정에서, 점차 관세에 대한 인식도 넓어지면서 해관을 설치하고 관세를 징수하려는 움직임이 생긴다.
조선 정부는 그때까지 경험이 없었던 통상과 해관 업무에 능한 인재를 시급히 구해야 될 필요성이 대두되자 이 업무를 담당할 인물의 고빙 의사를 청에 전달했다.
이에 이홍장은 “일본은 조선이 아직 서양의 언어 문자와 세무에 관한 일에 밝지 않은 것을 꿰뚫어 보고 있으니, 세무를 관장하는 사람을 (일본이) 스스로 천거하여 충원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므로 잠정적으로 세무에 밝은 서양인을 고용하라”고 조언하였다.
조미 수호조약 체결 직후인 1882년 4월 12일 천진에 간 영선사 김윤식이 천진해관 도대(* 도의 장관격임) 주복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자, 주복은 “귀국이 조약을 의정할 일이 앞으로 적지 않을 것이니, 서양 언어를 아는 자를 고용하지 않으면 서양 언어를 해득하는 일을 처리할 수 없다.
또한 그는 반드시 한문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일체의 교섭과 학도를 교습하는 일, 세무와 해관에 대한 규정을 정하는 일은 모두 이 사람에 의지해야 할 것”이라고 서양인 고용을 권하였다.
애초 조선이 원하는 인재는 서구 유학을 다녀온 청인이었다. 서양 사정을 잘 아는 서건인(*청나라 과학자, 외교관)에게도 부탁했지만 그도 서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은 많으나 심술이 부정하여 쓸만한 사람이 없으니 차라리 서양인을 고용하는 것이 낫다며 청국인보다 서양인이 더 공정하게 통상ㆍ해관 업무를 처리할 것이라고 권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1882년 6월 22일에 김윤식은 다시 주복과의 회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무에 익숙하지 않아 손해를 입는 바가 많다. 서양인이라도 무방하다”라고 하여 서양인을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였다.
당시는 임오군란으로 일본 공사관이 불타고 사상자 발생으로 피해 보상 등 일본과의 사후 처리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었다.
이때 김윤식은 배상 협상에서 조선이 외무에 밝지 않아 대응하는 일이 심히 어렵다고 토로하였다. 결국 임오군란의 사후 처리와 관련하여 일본의 배상 요구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물이라면 서양인도 상관이 없다는 입장의 변화를 보였다.
9월에는 고종이 임오군란 당시 청병의 도움에 사의를 표하기 위해 보낸 진주사 조영하(*고종의 사촌)를 통해서 다시 이홍장에게 자문을 보내어 각국과 조약을 앞두고 일체의 교섭상무사건을 처리할 현명하고 유능한 인사를 대신 고빙해 주도록 정식으로 요청하였다.
이에 이홍장은 외교와 해관 업무에 능하고 한문ㆍ영어를 잘 아는 묄렌도르프를 1882년 12월 정식으로 천거하였다. 당시 묄렌도르프의 나이 35세이었다.
중국의 해관은 이미 1854년 이래로 거의 30년간 외국인 고용 서양인들에 의해 운영중이었고, 중국으로서는 이것이 비록 서구의 침탈로 인한 관세자주권의 상실을 의미하나, 한편으로는 종전에 없던 서양 해관직원들의 청렴성, 사무 능률과 공정 처리 및 밀수를 근절하고 해관세 수입의 증대를 가져오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따라서 조선이 유능한 서양인 해관직원을 고빙하고 이들과 협력하여 해관세 수세 업무를 잘 관리하기를 바란 것은 중국으로서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선의의 조언으로 보인다.
이홍장으로서는 중국인을 보내서 조선 해관을 돕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청 자신도 해관을 서양인에게 맡겨 운영하고 있었고, 청과 조선 간에는 아직 근대적 관계에 입각한 조약이 없어 관원을 주재시킬 명분이 없었다. 또한 이제까지의 조·청관계 속에서도 조선에 상주하는 청의 관리를 파견한 예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을 파견할 경우 조선에 진출하려는 열강의 의심과 반발을 살 우려가 있었으며, 당시 청은 조선에서의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려 했다.
따라서 일본이 조선 해관 창설이나 운영에 간여하는 일을 막는 최선책은 일본이 상대하기 어려운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고용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이홍장은 김윤식에게 “일본인이 독일인을 가장 무서워하니 임오군란 후의 제물포조약에서도 묄렌도르프와 같은 인물이 있었더라면 피해가 크지 않았을 것”이라 하여 그의 또 다른 목적이 일본의 견제에 있음을 분명히 나타냈다.
그러나 당시의 열강들은 묄렌도르프의 조선 해관 총세무사 임명을 모두 반대하고 있었다. 19세기 말 해관은 대외통상 기구로 한 국가의 외교와 재정을 통제할 수 있는 중요 기관이었고, 열강들은 조선 진출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 해관 지배를 둘러싸고 각축하고 있는 상황하에서, 이홍장이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조선해관 총세무사에 추천하는 것은 그들에게 달갑지 않았다.
우선 주청 독일 전권대사 브란트(Max von Brandt)가 반대하였다. 독일 외무부에서 일할 때부터 묄렌도르프와 불편한 관계였던 그는 묄렌도르프가 독일 정부와의 계약기간이 종료되지 않은 것을 빌미로 반대했다.
청의 총세무사 영국인 하트(Robert Hart)도 반대했다. 로버트 하트는 목인덕(묄렌도르프)이 이홍장의 추천을 받아 조선에 가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영국인인 하트가 보기엔 독일인인 묄렌도르프가 조선에 가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영국 국익과 경쟁 관계가 되기 때문이었다. 1863년 28세에 청의 총세무사에 임명된 하트는 1908년 73세에 영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무려 45년간 청국 해관에서 황제로 군림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조선에 대한 독일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여 자신이 보낼 인물을 이미 선발해 놓은 상태였다. 북경주재 미국 공사 영(Russel Young)도 반대했다. 그는 이 자리에 미국인을 보내기를 원하였다.
이홍장은 이런 반대와 압력을 물리치고 자신의 결정을 고수했다.

[프로필 ] 이대복 한국세관역사연구회 회장
• 경영학 박사
• 2021.1. 15 ∼ 관세법판례연구회 고문
• 2010.06~2011.07 관세청 차장
• 2008.09~2010.05 인천공항 본부세관장
• 2006.~2007. 미국 관세청(CBP) 파견근무
• 2002.~2003. 미국 관세/무역전문 로펌(Sandler, Travis &Rosenberg, P.A.) 고문
• 2005년 홍조근정훈장 수상
• 1994년 세계관세기구(WCO) 사무총장상 수상
• 저서 : ‘한국세관의 역사(2009년,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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